뮤지컬에 90년대 여고시절 감성 담았더니 '짱'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2026. 3. 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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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대학로서 보기 드문 여성 4인극
한재은 작가·박현숙 작곡가 콤비
청춘 성장담에 추리극 요소 녹여
뮤지컬 'A 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의 한 장면. 4명의 고등학생들의 성장기를 담았다. 홍컴퍼니

1993년 겨울, 여고 반지하 도서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낯선 남자의 발목과 다음 날 흔적 없이 사라진 문학 선생. 도서부장 명경이 반복해서 꾸는 예지몽은 현실과 서서히 겹치기 시작한다. 실종된 사서를 찾는 추리극으로 출발하는 창작 뮤지컬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은 결국 두려움을 마주하고 용기를 선택하는 청춘들의 성장담으로 확장된다.

명경은 예지몽을 꾸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다가올 일과 미래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미래를 안다는 사실이 오히려 행동을 가로막는다. 그런 명경의 세계에 밝고 명랑한 지수가 나타나 균열을 일으킨다. 지수는 닫힌 마음에 끊임없이 다가가고, 환희와 수영을 도서부로 이끈다. 네 명의 여고생은 친밀과 질투, 오해를 오가며 관계를 쌓아간다. 실종된 문학 선생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고받는다.

작품의 출발점에는 한재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자리한다. 그는 "제가 예지몽을 좀 꾸는 편"이라고 말했다. 극 중 인물 지수에는 세상을 떠난 친구의 기억이 일부 담겼다. 작가는 "저는 꿈을 꾸지만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 아이들은 무언가를 바꿔보는 경험을 하게 하고 싶었다"며 "뭔가는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와 용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박현숙 작곡가는 "관객들이 극장을 나선 뒤 다시 현실을 헤쳐나가야 할 텐데, 그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10주년을 맞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대표 레퍼토리 '팬레터'를 함께 만든 콤비다. 이번에는 책과 쪽지 등 아날로그 감성이 배어 있는 1993년 도서부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이번 작품은 남성 배우 중심의 2~3인 극이 많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보기 드문 여성 4인 서사다. 창작진은 여성 배우들에게 더 많은 무대를 열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네 인물은 누구 하나 주변으로 밀려나지 않은 채 각자의 감정과 선택으로 극을 이끈다. 1993년 공기를 복원하는 과정 역시 세밀했다. 한 작가는 "'대박' 대신 어떤 말을 썼을지 고민했다. '짱'이나 '캡숑'을 떠올렸다"고 했다. 언어 하나에도 시대의 결을 되살리려는 고민이 담겼다.

이 뮤지컬은 개인적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특정 세대의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 자극적인 소재와 빠른 서사에 지쳐 있다면, 1993년 속도에 맞춰 느리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순수한 마음과 청춘의 용기를 되돌아볼 만하다. 공연은 4월 26일부터 링크아트센터 드림 2관에서 이어진다.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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