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왜안해요? 특이점 온 버스정류장

이 사진을 보라.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한 버스정류장 이름인데, 한 번에 읽기에는 숨이 찰 뿐 아니라 언뜻 보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겠다.

버스 탑승객들이 읽기 좋게 우리나라V최대V왕릉군인V동구릉으로 띄어쓰기를 해 주면 안 되는 걸까. 유튜브 댓글로 “버스정류장 이름은 왜 띄어쓰기를 안 하는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이미 긴 버스정류장 이름은 화젯거리다. 각 지역별로 긴 버스정류장 이름을 서로 경쟁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이렇게 무려 20자가 넘어가는 버스정류장 이름도 한 둘이 아닌 게 신기할 지경. 중간에 마침표를 찍긴 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숨이 막힌다. 왱구님들 집 주변에도 특이한 버스정류장 이름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데.

취재를 해 보니까, 버스정류장 이름을 띄어쓰기하지 않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첫째, 버스정류장 이름은 고유명사이고, 이 때문에 국립국어원이 규정하는 띄어쓰기 예외 규정에 포함된다.

[국립국어원 관계자]

그렇다면은 그 자체를 그냥 고유한 이름으로 본 거거든요. 그래서 붙여 쓰는 걸 허용을 하는데, 이제 허용 규정에 따라서 그냥 일괄적으로 붙였겠죠. 정류장 명이 다 모두 다 붙어 있다면.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국립국어원이 제정한 한국어 어문 규범을 찾아봤다. 제5장 띄어쓰기, 제4절 고유명사 및 전문용어에서 49장을 살펴보니, 성명 이외의 고유 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지만 단위별로 띄어 쓸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버스정류장처럼 예외 규정이 적용되는 일상 속 사례는 더 있다. 먼저 대학교 과목명. 국립국어원은 원칙상 띄어쓰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과목명은 고유한 이름으로 볼 수 있으므로 전체를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의학 용어나 전문 용어도 마찬가지로 붙여쓰기를 허용한다.

띄어쓰기를 아예 법적으로 금지한 경우도 있다. 바로 도로 표지판. 운전자가 표지판을 더 간결하게 인식하도록 하고, 제한된 공간에 많은 정보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다만 의미 전달이 어려운 경우 띄어쓰기를 할 수 있도록 2016년 예외 규정이 신설됐는데, 바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표지판 때문.

둘째, 버스정류소 명칭 관련 글자 수 지침의 영향도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버스정류소 명칭의 글자 수를 제한하고 있다.

버스 관련 시스템 및 표기 영역을 고려한 조치라는 설명. 모든 정류장에 띄어쓰기 원칙이 적용되면 표기 공간 부족 등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시 관계자]

저희가 지침에 15자 이내로 해야 되는데 그 사유가 이제 이상부터 초과되는 글자들이 표기가 안 되거든요. 아마 그래서 최대한 이제 압축돼서 보여주느라 이제 띄어쓰기를 안 하는 것 같은데.

다만 글자 수 관련 지침은 각 지자체별로 다르다고. 가령 서울시는 15자로 제한을 뒀지만, 경기도는 이보다 더 많은 글자 수를 허용할 수도 있는 셈. 그래서 유독 경기도에 긴 버스정류장 이름이 많은 게 아닌가 싶다.

취재하다가 알게 된 건데, 버스정류장 명칭을 정할 때도 우선순위가 다 정해져 있다고. 기본 원칙은 공공시설의 이름이 민간시설의 이름보다 무조건 우선순위여야 한다는 거다.

출처 서울시 버스정류장 설치지

서울시 지침을 한번 살펴보자. 먼저 고유지명, 공공시설, 문화·관광지 등 지역의 대표성을 갖는 명칭을 우선 사용하는 게 원칙. 그다음에 아파트, 상가, 교회, 회사 등 민간 시설 명칭의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주민 의견 수렴을 통해 정류소 이름을 정한다고.

근데 진짜 특이한 정류장 이름도 많다. 정류장 근처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경우, 일반명사로 이름을 짓기 때문이다.

경기도 포천의 ‘욕쟁이할머니’ 정류장과 일산의 ‘우리동네’ 정류장, 남양주의 ‘곰탕집앞’ 정류장은 인근에 있는 식당 이름을 따서 지어진 케이스다.

왱구님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강원도 태백의 ‘권춘섭집앞’ 정류장은 권춘섭 씨의 아버지 권상철 씨의 민원으로 생겨났다가 아들 이름까지 대물림된 정류장인데, 여긴 주변에 권씨 집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럼 전국에서 가장 긴 버스정류장 이름은 뭘까? 정답은 바로 ‘죽전역.수지레스피아.죽전2동행정복지센터.신세계사우스시티’로, 무려 27자에 달한다. 정류장 주변에 있는 지하철역부터 공공기관, 백화점 이름까지 모두 다 한꺼번에 담으려니 이렇게까지 길어지게 된 거다.

사실 어떻게 해서든 정류장 이름에 포함되고 싶은 각 기관들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인 건데, 시민들 입장에선 너무 복잡하고, 혼란만 증폭되는 양상이다.

그러니 앞으로 신규 버스정류장 이름을 지을 때는 탑승객 편의도 좀 고려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