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사용국 164개국 넘었다, 한국 밖에서 더 유명한 한국 앱

글로벌 화상 대화 서비스 ‘에피소든’ 양현모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글로벌 화상 대화 서비스 ‘에피소든’ 양현모 대표. /더비비드

영어 공부는 평생의 숙제다. 온라인으로 영어 회화를 연습할 수 있는 서비스가 다양해졌다. 다만 높아지는 교육비가 큰 부담이다. 2021년 무료로 전 세계인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 ‘에피소든’이 등장했다. 2024년 현재 164개국의 사람들이 영어 회화를 매개로 에피소든에 모여 대화를 나눈다.

글로벌 화상 대화 서비스를 개발한 양현모 에피소든 대표는 연쇄창업가다. 토론 동아리에서 출발해 진로 컨설팅회사, 드론 관련 매거진 ‘드론 스타팅’, 중등생 대상 토론 교육 회사 등을 연달아 설립했다. 들쭉날쭉해보이는 이력을 관통하는 단어는 ‘소통’이다. 양 대표는 에피소든이 영어를 배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고 자부한다. 그 비결 역시 ‘소통’이다. 양 대표를 만나 그가 믿는 소통의 힘에 대해 들었다.

◇갈팡질팡하며 보낸 7년

서울대 스피치 동아리 ‘다담’ 활동 모습. /양 대표 제공

서울대 국사학과 04학번으로 입학했다. “1학년 때 ‘말하기’란 수업을 정말 재미있게 들었어요. 함께 수업을 듣던 형과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동아리 ‘다담’을 만들었습니다. 동아리 회원들과 토론대회에도 나갔어요. 처음엔 버벅거리다가 예선에서 탈락했는데요. 같은 대회를 7번 나간 끝에 결국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기자란 꿈이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어요. 제대로 취업 준비를 하기 전에 군대에서 모은 돈으로 미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애틀란틱 시티의 한 공원에서 의자에 붙은 글씨가 눈에 띄었어요. 공원을 만들 때 기부했던 사람들이 남기고 싶은 이름이나 문구를 새긴 거였죠. 그 순간 꿈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시설물이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죠.”

미국 애틀란틱 시티의 공원의 의자에 이름·문구 등이 새겨져 있다. /양 대표 제공

귀국 후 여러 공공시설 관련 기관에 다짜고짜 메일을 보냈다. “미국의 사례를 설명하며 우리나라에도 도입하자고 제안했지만 답을 받을 수 없었어요.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린 끝에 현충원 관계자를 만났더니 ‘법적으로 국가 귀속물에 글자를 새길 때는 장관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더군요. 헛물켰다 싶었지만 배운 것도 있었어요. 철저한 사전 조사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후 창업에 뛰어들었다. “하루 방문자 수 700명이던 사이트를 인수해 3~4개월 만에 1만2000명까지 끌어올렸어요. IT 사업에 자신감을 얻고 ‘리얼 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했습니다. 네이버·구글에 없는 정보를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방식이죠. 개발자 없이 외주를 맡겨 서비스를 만들다가 억대의 빚을 졌어요.”

리얼바른길 창업 멤버들과 함께 서 있는 양 대표. /양 대표 제공

돈을 벌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에 주목했다. “서울대 친구들과 함께 진로 컨설팅회사를 만들었어요. 서울대입구역의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해 대치동에 학원을 낼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마지막엔 영어 교육 전문학원에 인수됐어요. 그 뒤로도 드론 관련 매거진 ‘드론 스타팅’, 중등생 대상 토론 교육 회사, 심리 상담센터 ‘밝은 희망’ 등을 연달아 창업했습니다.”

◇영어 못하는 영어 앱 개발자

동료들과 함께 에피소든을 개발하는 모습. /양 대표 제공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7~8년을 보냈다. 2019년은 방황의 마침표를 찍는 해였다. “웹 RTC 기술을 가진 개발사에서 토론 앱을 만들고 싶다며 찾아왔어요. RTC는 웹브라우저상에서 오디오·비디오·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교환할 수 있는 기술인데요.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영어 회화를 떠올렸습니다.”

영어 회화 교육 사업이 아닌 소셜 네트워크 사업으로 접근했다. “일단 저부터도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영어를 한 번도 공부해 본 적이 없었어요. 영어로 대화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서비스의 방향성을 잡아나갔습니다. 영어 회화 모임장이 입을 모아 말하길 ‘참여자들 간 영어 실력을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고 하더군요. 초기 회원을 모으기 위해 줌으로 영어 회화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도 했어요.”

2021년 에피소든 초기 버전 캡처 화면. /양 대표 제공

2021년 6월 글로벌 화상 영어 회화 서비스 ‘에피소든’을 출범했다. “살아가면서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게 하는 서비스라는 뜻이에요. 영어 실력에 따라 나누기 위해 상대를 평가하는 기능을 넣었습니다. 7분간 대화를 나누고 난 뒤 상대의 태도와 영어 실력을 평가할 수 있어요. 주관적일 것 같지만 데이터가 쌓일수록 객관적인 자료가 됩니다.”

에피소든은 글로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지향한다. 제각각인 인터넷 환경은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다.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미얀마·필리핀 등 지역에서 접속하는 사용자는 비가 올 때마다 접속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10번에 4~5번씩 끊기니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죠. 갤럭시, 아이폰이 아닌 어떤 스마트폰으로 접속해도 끊기지 않도록 안정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많이 쏟았습니다.”

에피소든을 통해 만난 사용자들이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난 모습. /양 대표 제공

에피소든에 처음 가입하면 실명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다. 실명제라는 방침은 사용자에게 책임감을 부여한다. “화면이 너무 흔들리거나 소음이 심한 경우,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경우에는 경고창을 띄웁니다. 규칙(룰)이 많으면 성장이 느릴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아요. 건전한 사용 환경을 조성하면 재방문이 늘고 주변 사람에게도 추천하면서 사용자가 빠르게 늘 수 있습니다.”

현재 164개국에서 월 200만분간 에피소든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더비비드

실제로 에피소든의 사용 국가, 사용 시간 모두 빠르게 늘고 있다. 현재 164개국에서 월 200만분간 대화를 나눈다. 사용자의 하루 평균 사용 시간은 56분이다. “유튜브가 48분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의미있는 숫자입니다. 무엇보다도 에피소든이 ‘소통의 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70대 일본인 여성은 2년간 1300시간 사용했어요. 영어로 소통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정말 많습니다. 에피소든 사용자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어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

손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는 양 대표. /더비비드

3년간 웹 서비스만 고수하던 에피소든은 지난 3월 앱도 출시했다. 현재 안드로이드에서만 가입이 가능하며 여전히 모든 서비스는 무료다. 앱 출시와 함께 새로운 가입 절차를 도입했다. “일종의 ‘레벨 테스트’를 받는 단계가 추가됐어요. 브라질·에콰도르·필리핀·터키 등 4개국에서 인터뷰를 담당하는 직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불순한 의도로 가입한 사용자를 걸러내고 영어 실력을 대략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절차죠.”

에피소든은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인 4월 디데이에서 우승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AI)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에피소든만의 매력은 ‘사람과 대화한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 영어 사용자 90% 이상이 비영어권 국가입니다. 게임 이용자를 모아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게 한 ‘디스코드’처럼 영어 회화를 매개로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에피소든의 목표입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