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억 횡령 사건의 시작, 허점을 노린 경리의 두 얼굴
2018년, 김포에 위치한 기계 제조·도매업체에서 경리로 근무하던 한 여성은 회사의 자금 흐름에서 이상한 빈틈을 발견한다. 그녀는 회계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마치 대표이사나 거래처에 돈을 보낸 것처럼 꾸며 회사 자금을 서서히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기 시작한다. 경리 업무와 전산 처리를 총괄하는 권한을 악용하여, 5년에 걸쳐 96차례에 걸쳐 총 25억8,000여만 원을 횡령하게 된다. 빼돌린 돈은 생활비는 물론, 집을 사고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감춰진 범죄의 드러남, 내부감사와 수상한 거래 추적
몇 년이 흐른 뒤 진행된 회사 내부감사 과정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된다. 감사팀은 경리가 거래한 적 없는 회사에 거액을 송금한 내역을 확인하고, 자금이 의심스러운 경로를 통해 빠져나간 사실을 밝혀낸다. 결국 회사는 경리를 고소하고, 그녀의 5년간의 범죄가 모두 드러나게 된다. 조사 결과, 횡령금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투자되어 이미 집을 한 채 구매하는 등 재산 증식이 이뤄졌다는 점이 확인된다.

부동산 정책·집값 폭등과 횡령 변제의 역설적 만남
횡령범의 재판 결과는 세간을 놀라게 했다. 그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라는 판결을 받는다. 집행유예, 즉 실형을 선고받지 않고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피해액의 전액 변제'였다. 그런데 이 피해 변제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당시 부동산 정책이 있었다. 정부는 집값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강경책을 펼쳤지만, 오히려 집값은 전례 없는 급등세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피고인은 횡령한 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했고, 집값 폭등 덕에 투자금의 일부만 회수해도 전액 변제가 가능해졌다.

집행유예 판결의 진짜 이유, '피해 변제'라는 법의 논리
현행법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5억 원 이상을 횡령하면 가중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법원에서는 범행을 자백하고, 피해 금액의 상당 부분을 변제하거나 대물변제(부동산·주식을 넘기는 방식)로 피해 복구가 이뤄진 경우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향성이 높다.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은 자백과 반성을 표명했고, 피해 변제를 통해 회사의 금전적 손실이 실질적으로 없어진 것이 양형의 결정적 판단 근거가 되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사회적 배경이, 거대한 횡령 범죄를 '경제포착의 기회'로 바꾼 셈이었다.

횡령범도 남는 장사? 법적 허점과 사회적 분노의 교차
피고인은 집행유예를 받았을 뿐 아니라, 부동산을 통해 횡령금 피해액을 변제하고도 집 한 채를 그대로 남겼다. 즉, 엄청난 범죄에도 재산 일부를 지키면서 사회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는 "변제만 하면 감형받는다"는 형사법 구조와, 몸값이 폭등한 부동산 시장이라는 이중 구조가 합쳐져 생긴 현상이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일각에선 사회적 공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산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피해회복이 곧 집행유예로 이어지는 관행은 권리와 법의 균형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앞으로의 과제, 부동산 정책과 형사법의 사이에서
이 사례는 단순한 횡령 범죄를 넘어, 부동산 정책과 사법제도의 허점이 교차하며 발생한 역설적 비극이다. 피해를 지급하면 집행유예가 쉽다는 관행, 급등한 부동산 가격을 이용해 범죄의 뒷수습이 가능해진 구조, 그리고 솜방망이 처벌을 우려하는 사회적 비판까지. 앞으로는 형사처벌의 실효성과 피해변제 이후에도 범죄 억제 효과가 지속될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른바 '남는 장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사회적 법감정과 부동산 시장, 그리고 사법 제도 간의 균형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도덕적 해이와 법적 허점, 그리고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이 한 개인의 횡령죄를 실형 대신 집행유예로 이끈 현실. 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한 사건에 집약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