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슬의생’ 실제 주인공, 감동의 사연

2023. 3. 1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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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쳐]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흉부외과 의사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많이 나왔죠. 현실에선 고민이 많고 ‘번아웃’ 된 상태로 버티나 싶기도 해요.”

뉴하트, 낭만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생활. 의학 드라마에서 단골로 나오는 이들이 있다. 바로 흉부외과 의사. 드라마 속 영웅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현실도 있다. “흉부외과 전공의 모집 비상”, “기피 전공 1순위”, “멈춰가는 의료계 심장”. 실제 흉부외과와 관련된 최근 기사 제목이다.

흉부외과는 생사 갈림길에 있는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이다. 일은 고되다. 점점 의사들도 기피한다. 그래도 묵묵하게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당장 온 힘을 쏟아야 할 눈앞의 생명 때문이다. 겨우 버티지만 그래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는 직업, 흉부외과 의사.

양지혁 삼성서울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흉부외과 전문의 김준완(정경호)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이다. 대본 자문도 맡았다. 양 교수가 전하는 흉부외과 의사의 고민과 다짐이다.

양지혁 삼성서울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김준완(정경호)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공식영상 캡쳐]
7살 아이로부터 받은 편지

양 교수는 최근 시몬스의 SNS 소셜라이징 콘텐츠 시리즈 ‘시몬스 스튜디오 시즌2’에서 ‘거부할 수 없는 영감이 흉부외과로 이끌다’란 주제로 강연했다.

흉부외과는 심장, 혈관, 흉곽 등 생명에 필수인 장기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양 교수는 주로 아이들이 환자다.

그의 연구실을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아이들과 부모로부터 받은 편지가 가득했다. 7살인 한 아이의 편지를 소개했다. 삐뚤삐뚤하지만 한 자씩 힘주어 써낸 편지다.

“안 아프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절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태권도 밤띠입니다. 더 열심히 해서 꼭 4단 따겠습니다.”

그는 “태권도 밤띠와 4단은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느냐”고 웃었다. 그러면서 “이런 게 보람인 것 같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만난 아이들이 많고, 그 아이들이 크는 과정을 보게 된다”고 전했다.

[시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쳐]

당연히 아픈 기억도 많다. 10번도 넘게 수술을 해야 했던 한 아이. 수술 후 가슴도 잘 안 닫혀서 모두 고생해야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 병원을 나섰다. 사실 더 할 수 있는 방도가 없어서였다. 결국 그 아이는 이내 세상을 떠났다.

이후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의 부모로부터 카드가 온다. 고마웠다고. 아이가 세상을 떠난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카드가 오고 있다. 아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부모와 의사는 이렇게 여전히 아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심장이 아픈 아이들은 심장 이식이 절실하다. 하지만 공여자를 찾기가 어렵다. 양 교수는 “간 같은 장기라면 부모로부터 이식받을 수 있지만, 심장은 비슷한 크기의 공여자가 있어야만 한다”고 전했다. 누군가 비슷한 또래 아이의 심장이 있어야만 한다는 얘기다.

[시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쳐]

심장 공여자가 나오기 전까진 기계 등의 힘을 빌어 버텨야 한다. 그 중엔 불과 태어난 지 45일 된 새싹이(가명)도 있었다. 그는 “심근염, 만성 심부전, 심실보조장치 등으로 이후 계속 치료를 이어갔고, 결국 돌도 병원에서 맞이해야 했다”며 “병실 커튼을 꾸미고 병원에서 돌상을 마련했다”고 회상했다.

새싹이는 코로나 때 태어나 입원했다. 돌이 지날 때까지 한 번도 밖을 나가보지 못했다. 특히 그는 아빠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다. 코로나 여파로 면회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 태어나자마자 끊임없이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아이. 그 아이를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빠.

양 교수와 전공의는 ‘작전’을 짰다. 멀리서라도 아이와 아빠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다. 전력이 필수인 심실보조장치 전원을 유지하고자 병원 내 콘센트 위치를 파악하고, 이동거리 간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고, 어디로 나가 어디로 돌아올지 동선을 짰다. 30분 안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다. 그렇게 아빠는 아이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심장 이식을 받고 이제 퇴원했다. 혼자 마트도 걸어다닌다고 한다. 부모가 직접 아이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내줬다. 양 교수는 “너무 잘 걷는데, 정작 영상을 보면서는 ‘넘어지면 어쩌나’ 계속 걱정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 외에도 사연은 너무 많았다. 그림을 유난히 잘 그렸던 아이, 오랜 투병 끝에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아이가 빼빼로데이 때 그려준 그림은 지금도 못 버린다. “아이가 아파 죄책감에 사로잡힌 부모의 마음을 다독여주셔서 너무 감사했다”는 편지도 잊지 못한다.

“흉부외과는 운명 같았다”

흉부외과의 길. 그는 “학생 때 심장의 떨림을 느끼고 나니 흉부외과는 운명과도 같았다”고 했다. 현실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는 “2020년 들어와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전공의가 급감하고 있다. 자칫 은퇴하고 나서도 수술을 떠날 수 없을까 고민도 든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가 버티는 이유, 눈앞의 작은 생명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도 했다. 그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과 함께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가 전공의들한테 꼭 얘기해주는 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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