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다, 잘 짜인 세계관의 합리적 재활용

최민지 기자 2024. 10. 15. 10: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분이구나, 주인공이 된다는 건?”

포스터를 가득 채운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며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만끽하는 사람은 ‘서동재’(이준혁)다. 2017, 2020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비리 검사였던 그가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지난 10일 티빙이 공개한 10부작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를 통해서다.

<좋거나 나쁜 동재>는 <비밀의 숲> 시리즈의 스핀오프(특정 영화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로 ‘스폰 검사’로 낙인 찍힌 서동재 검사가 여고생 살인 사건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선역이라기엔 얄밉고 악역이라기엔 안쓰러웠던 이 매력적인 캐릭터는 ‘황시목’(조승우)와 ‘한여진’(배두나)을 제치고 당당히 주인공이 됐다.

인기 드라마·영화의 스핀오프가 잇따라 제작·공개되고 있다. 잘 만든 콘텐츠 하나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부럽지 않은 형국이다.

지난 3일에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사장님의 식단표>가 공개됐다. 지난 1일 종영한 tvN 월화 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 속 동명의 웹소설을 드라마로 옮긴 작품으로, 극중 19금 웹소설 작가인 남자연(한지현)이 쓴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기도 하다. <손해보기 싫어서>의 원작자인 김혜영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제작에 참여했다. 배우 이상이와 한지현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스핀오프 열풍은 영화계로도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2023)의 스핀오프 <사마귀>의 제작을 지난달 발표했다. ‘사마귀’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살인청부업자인 길복순(전도연)이 킬러 전문 회사 MK엔터 대표 차민규(설경구)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휴가 갔다”고 짧게 언급되는 인물이다. 주인공 사마귀 역의 배우 임시완을 비롯해 박규영, 조우진 등이 캐스팅됐다. 넷플릭스는 내년 중 영화를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의 스핀오프 <사마귀>에는 배우 임시완과 박규영, 조우진이 캐스팅됐다. 넷플릭스 제공

스핀오프 열풍 뒤에는 녹록지 않은 드라마 제작 환경이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팬덤과 인지도를 확보해 둔 IP(지식 재산권)를 활용할 경우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때보다 리스크가 현저히 낮아진다고 입을 모은다.

한 드라마 PD는 “업계 사정이 너무 힘들다보니 새로운 기획이 시도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원작이 있다면 굳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대본을 보지 않아도 (투자나 제작, 캐스팅 등이) 진행되고 주목도 쉽게 받는다”고 말했다. 해외 세일즈가 가능한 ‘A급 톱스타’에게만 대본이 몰리는 업계 현실을 고려할 때 스핀오프는 캐스팅의 측면에서도 효율적인 선택이다.

한 번 잘 짜둔 세계관에 이야기를 덧붙여나가는 스핀오프는 극본을 쓴 작가로서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드라마 작가 A씨는 “세계관과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창작자 입장에서는 이미 공들여 만들어놓은 세계관과 캐릭터를 약간 비틀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나 품이 훨씬 덜 든다. 웹툰 원작 드라마가 붐이었던 것과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