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채무, 아파트 선물과 집 팔고 노숙한 사연
90년대 TV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국민배우, 임채무. 드라마, 예능, 광고 등에서 활약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가, 한때 직원들에게 아파트를 한 채씩 선물하고, 자신은 집을 팔아 노숙생활을 하게 된 믿기 어려운 사연이 있다. 과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번 이야기는 바로 임채무의 인생 역전과 그가 겪은 고난, 그리고 결국 그는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트로이카 시대’의 스타, 임채무의 전성기
임채무는 1973년 MBC 공채 탤런트 6기로 데뷔했으며, 이덕화, 노주현, 한진희와 함께 ‘트로이카 시대’를 이끈 당대 최고 미남 스타였다. 전성기 시절, 그는 하루 7천만 원까지도 벌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그가 갑작스럽게 놀이공원을 짓겠다고 선언한다.
그가 놀이공원을 짓게 된 계기는 아주 작은 사건에서 시작됐다. 사극 단역 시절 촬영지 근처에서 놀 곳이 없었던 아이들이 땅바닥을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이 바로 ‘두리랜드’를 만들게 된 동기가 됐다.
두리랜드의 시작과 아파트 선물
1990년, 임채무는 개인 사비 100억 원을 들여 경기 양주에 ‘두리랜드’를 오픈하게 된다. 임채무는 시작부터 입장료를 받지 않았고, 운영비 대부분을 자신의 출연료로 메꿨다고 한다. 그는 봉사 정신으로 이 놀이공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곳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3년만 근무하면 아파트 한 채씩 줄게”라는 말을 했고, 정말로 26명 직원 모두에게 18평 아파트를 선물했다고 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감동했고, 최선을 다한 임채무의 모습을 보고 평생을 바칠 수 있는 사장님이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직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사와 놀이공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현실은 빚 150억 원과 노숙생활
하지만 놀이공원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어려움이 닥쳤다. 운영비는 계속 쌓였고, 수입은 줄어들면서 결국 그는 150억 원의 빚을 지게 된다. 이로 인해 여의도 아파트 두 채는 급매로 팔게 되었고, 자신은 화장실에 군용 침대 두 개를 놓고, 아내와 함께 1년간 노숙생활을 하게 된다.
그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아이들 웃음소리 하나에 위로를 받으며 낭만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무지개는 소나기 뒤에 뜬다”는 말처럼, 그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두리랜드의 지속과 리모델링
그는 빚이 150억 원까지 늘었지만 두리랜드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으며, 2020년에는 2년 반의 리모델링 끝에 실내 놀이기구와 자연 친화적인 공간을 갖춘 패밀리 테마파크로 새롭게 단장하며 다시 아이들을 맞이했다. 두리랜드는 단순히 사업이 아니라, 그의 꿈과 철학이 담긴 장소였다.
그는 수익을 추구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가치를 계속해서 지켜 나갔다. 아이들이 웃는 모습이 그의 가장 큰 보람이었고, 놀이공원은 그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곳이었다.
진정한 ‘어른’으로 남은 임채무
임채무는 배우로서의 경력을 쌓아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단순히 연예인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지켜온 진정한 어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가 아니라,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결론: 꿈과 철학 하나로 30년을 이어온 임채무
임채무는 30년 넘게 아이들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그 꿈을 이어갔다. 그는 그 어떤 어려움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견뎌냈으며, 그 결과 두리랜드는 오늘날까지 많은 아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임채무의 이야기는 돈과 사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순수한 꿈과 철학이 사람을 지속시키고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비록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왔고, 그 결과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