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 가능성 51%" 이후...오세훈의 '광폭 행보'
의료공백·딥페이크·전기차 화재까지 서울시 선제대응 눈길
지구당 부활·북핵 등 정치·안보 현안에도 적극적 의견 제시
연일 존재감 과시, 한동훈·이재명 대표와 차별화 행보 가속
"'50 대 50'에서 조금 진전된 51%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아직 결심이 선 건 아니다"라며 사족을 달긴 했으나 '반반'에서 대권 도전 쪽으로 무게추가 더 기울었다는 얘기다. 지난 7월로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오 시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대선 출마를) 고민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오 시장은 취임 이후 여의도 정치와는 일정 거리를 두고 서울시민의 일상과 민생을 챙기는 시정에 집중해 왔다. 시정 철학인 '약자와의 동행'을 바탕으로 서울디딤돌소득(생계), 미리내집(주거), 서울런(교육), 공공의료 확대(의료) 등 취약층을 위한 4대 분야 정책 시리즈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된다. 여러 정치·사회 이슈와 현안에 오 시장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의대 증원을 두고 계속되는 의정갈등과 응급실 공백 사태는 물론 딥페이크 성범죄 확산, 티메프 사태, 전기차 화재 등 각종 이슈에 대응하는 서울시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내부에서 "시의 정책 대응 속도가 전에 없이 빨라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임기 반환점을 돈 오 시장이 대권 도전 관련 언급을 내놓은 이후의 도드라진 변화다.
오 시장은 지난 14일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의료공백 사태에 처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를 찾아 현장을 점검했다.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응급실과 배후 진료에 71억 원의 긴급 예산을 지원했고 추석 연휴 문 여는 병·의원과 약국 지원 예산도 추가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달 들어 대학 응급실 방문(2일), 119안전센터 방문(9일), 보건의료협의체 단체장들과 추석 응급의료 대책 논의(11일)에 이어 추석 연휴 첫날까지 응급의료 현장을 챙기는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앞서 오 시장은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이 난항을 겪자 의료계가 경질을 요구하는 보건복지부 차관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오 시장의 광폭 행보는 정무적 판단을 요하는 정치·안보 분야에서도 전방위적이다. 오 시장은 연휴 하루 전인 지난 13일 북한이 핵탄두 제조용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을 처음 공개하자 "핵 잠재력 확충이 필요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심각한 도발"이라며 "이제 한 단계 진전된 새로운 자강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썼다. 자신의 지론이자 안보관인 '자강론'과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차기 대선 유력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한 비판도 거침없다. 여야 대표가 추진 중인 지구당 부활 움직임엔 "돈 정치와 제왕적 당대표제를 강화하려는 퇴행"(9월10일)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오 시장은 2004년 국회에서 지구당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치개혁법 통과를 주도했다. 이른바 '오세훈법'을 무력화하려는 여야 대표의 움직임을 퇴행으로 규정하고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계엄 의혹' 제기에도 "정쟁이 없으면 (이 대표의) 극성스러운 팬덤의 결집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이 대표는 정상정치가 공포스러울 것"(9월4일)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전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 지원 방안에는 "복지정책도 재정경제정책도 아닌 무책임한 이재명식 포퓰리즘"(9월12일)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여권 내 유력 잠룡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경쟁자들과 차별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오 시장의 거침없는 행보를 두고 서울시 내부에선 "'팬덤'(극성 지지층)과 '파이터'(싸움꾼)가 판치는 여의도 정치와 차별화하고, 합리적인 종합행정가로서의 정책 역량을 부각하는 대권 행보를 사실상 본격화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오 시장이 지난 달 23일 발표한 '지방거점 대한민국 개조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전국을 수도권과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 등 4개의 초광역 지방 거점으로 나누고 중앙 정부의 입법·행정 권한을 이양해 각각을 강소국화하자는 균형발전 전략이다. 저출생과 지방 소멸 위기를 막을 '오세훈표' 국가발전 전략인 셈이다. 오 시장이 국가적 아젠다와 해법을 제안한 건 취임 이후 처음이다. 대권 도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권 내 유력 잠룡으로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오 시장의 광폭 행보에 우호적인 여론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시사저널의 차기 대통령 양자대결 적합도 조사에서 오 시장은 이재명 대표와 맞대결에서 한동훈 대표와 동일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양자대결을 가정할 때 '이재명 대 한동훈', '이재명 대 오세훈'이 동일하게 54% 대 35%로 조사됐다. 오 시장은 "대선을 2~3년 앞둔 상황에서 여론조사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서도 "좋아해 주셔서 (국민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오상헌 기자 bborir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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