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어라." 2002년, 당시 폭스바겐 그룹의 총수였던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엔지니어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10가지 명령을 내립니다. "하루 종일 시속 300km로 달려도 문제가 없을 것", "외부 온도가 50℃여도, 실내는 22℃를 완벽하게 유지할 것" 등...

이 광기 어린 집착의 결과물로 탄생한 차가 바로, 폭스바겐의 전설적인 럭셔리 세단 '페이톤(Phaeton)'입니다.
이 차는, 당대 최고의 럭셔리카였던 '벤츠 S클래스'를 모든 면에서 압도할 만큼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자동차는 시장에서 처참하게 실패하고, 역사상 가장 '멍청한 프로젝트'라는 오명만 남긴 채 쓸쓸하게 단종되고 맙니다.
'완벽'했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페이톤은, 기술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명작'이었습니다.
벤틀리의 뼈대, 12기통의 심장: 그룹의 최고급 브랜드인 '벤틀리'의 뼈대(플랫폼)를 그대로 사용했고, 12기통(W12)의 강력하고 부드러운 엔진을 얹었습니다.
장인정신이 깃든 실내: 독일 드레스덴의 투명 유리 공장에서, 숙련된 장인들이 거의 모든 과정을 '수제작'으로 조립하여, 벤츠를 뛰어넘는 완벽한 품질을 자랑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망했습니다: '폭스바겐'이라는 이름의 저주

하지만, 이 모든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페이톤은 단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보닛 위에 붙어있는 'VW(폭스바겐)' 엠블럼이었습니다.
'이것', 즉 '국민차', '대중차'라는 폭스바겐의 브랜드 이미지는, 1억 원이 넘는 럭셔리 세단을 사려는 부자들이 넘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벽이었습니다.
'하차감'의 부재: "1억 원을 썼는데, 사람들이 내 차를 2천만 원짜리 '골프'나 '비틀'을 만드는 회사 차로 본다고?" 부자들은, 차의 성능뿐만 아니라 그 차가 주는 '사회적 지위'와 '인정'을 함께 소비합니다. 폭스바겐 엠블럼은, 그들에게 아무런 '하차감'을 주지 못했던 것이죠.
결국, 소비자들은 거의 똑같은 가격이라면, '완벽한 폭스바겐' 대신, '조금 부족하더라도 모두가 알아주는 벤츠 S클래스'나, '스포티한 BMW 7시리즈'를 선택했습니다.
폭스바겐 페이톤의 실패는, 자동차 시장에서 '기술'만큼이나 '브랜드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교과서적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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