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마일 던지던 과격파의 돌직구
롭 디블(61)의 화끈한 성격은 유명하다.
한창때 101마일(약 163km)을 던지던 마무리 투수였다. 그런데 정확성은 떨어졌다. 그 공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KIA 타이거즈 감독을 지낸 맷 윌리엄스의 기억이다.
“가장 무서웠던 투수는 롭(디블)이었다. 스트라이크 존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강한 공을 던지는 데만 열중했다. 조준이 안 되는 날에는 더 공포였다. 귀 옆에서 총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통산 15타수 1안타(0.067)의 형편없는 상대 타율을 남겼다. 삼진을 7개나 당했다.
꼭 커맨드의 문제만은 아니다. 불 같은 성미도 한몫 거들었다. 화가 난다고 2층 관중석으로 공을 집어던진다. 여성 팬이 맞기도 했다. 그 일로 4게임 출장 정지, 벌금 1000달러(약 145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화끈하기는 입담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에는 해설자, 팟캐스트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어느 날이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프링캠프에 방문했다. 거기서 루 피넬라 감독과 마주쳤다. 신시내티 시절의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사제지간)다. 클럽하우스 안에서 육탄전을 벌일 정도로 끈끈한(?) 관계다.
디블 “잘 지내시죠? 요즘은 덤비는 선수 없어요?”
피넬라 “아무렴, 너만 하겠냐.”
디블 “그런데, 저 친구가 그 친구예요? 비쩍 마르고, 작은….”
피넬라 “응. 어떤 것 같아?”
디블 “(피식 웃으며) 소문이 요란하더니. 계속 저렇게 치는 건가요?”
피넬라 “글쎄, 조금 더 두고 봐야지.”
디블 “보긴 뭘 봐요. 뻔한데. 저런 스윙으로 타격 1위를 한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만약에 그러면 내가 타임스퀘어(뉴욕)에서 알몸으로 달리죠.”
피식거림의 대상은 스즈키 이치로였다.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둔 시점(2001년)이다. 스프링캠프는 온통 그에 대한 얘기뿐이다. 된다, 안 된다. 이상한 스윙이다. 그런 의심이 가득했다.
“오타니 타격은 딱 고등학생 수준”
또 있다. 2018년 봄에도 비슷했다.
이번에는 에인절스 캠프다. 단독 주연은 역시 수입 선수다. 이치로처럼 일본을 평정하고 건너왔다.
겨우내 엄청난 화제였다. ML 대부분의 팀을 상대로 서류 제출을 요구했다. 1차 전형을 하겠다는 오만함(?)이다. 몇 곳을 골라 최종 면접까지 치렀다. ‘슈퍼 을’이라는 칭호가 딱 어울렸다.
첫 선을 보인 것이 시범경기다. 이도류의 ‘언박싱’은 처참했다. 투수로는 함량 미달이다. 4경기에서 8.1이닝 동안 홈런 4개를 두들겨 맞았다. ERA(평균자책점)는 16.21까지 치솟았다.
타격은 더 심각하다. 제대로 스윙조차 못 한다. 빠른 볼에는 먹힌다. 변화구에는 소스라친다. 뭐 하나 비슷한 게 없다. 질질 끌려 다닌다. 허둥거리고, 갈팡질팡한다.
남겨진 숫자는 처참하다. 24타수(9게임) 동안 안타는 고작 2개뿐이다. 1할도 안 되는 타율(0.083)에 허덕인다. 삼진은 9개를 당했다. 이도류는 웃음거리가 된다.
냉정한 분석이 등장한다. 작성자는 저명한 제프 파산이다. 당시 야후 스포츠에서 활동하던 때다.
‘직구와 싱커뿐만 아니다. 잭 고들리(D백스)나 커쇼(다저스)의 커브에 삼진 당하는 모습을 보라. 전혀 타이밍이라는 게 없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던 높은 회전수일 것이다. 그걸 공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메이저리그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관찰 결과, 몸 쪽 패스트볼에 전혀 대응하기 어려운 스윙이다. 그 정도로는 여기서 버티기 어렵다. 생산적인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이너리그에서 500타석 이상을 경험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참을 만하다. 한 술 더 뜬다. 그다음이 치욕적인 내용이다.
“메이저리그? 터무니없다. 당장은 고등학생 수준의 타자라고 봐야 한다.”
마지막 멘트는 제프 파산의 말이 아니다. 출처는 익명을 요구한 현직 MLB 스카우트다. 조롱의 대상은 24세로 ML 데뷔를 앞둔 오타니 쇼헤이였다.
“혹시 당겨 칠 줄 모르나?”
이치로에 대한 평가절하는 비단 롭 디블 같은 외부 전문가만이 아니다. 내부에서도 비슷했다. 훈련 장면을 유심히 지켜보던 감독(루 피넬라)이 묻는다. “자네는 왜 그쪽으로만 치지? 원래 그런가?”
유독 3-유간으로 땅볼만 굴린다. 그 모습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혹시 ‘힘이 달려서 그런가?’, 아니면 ‘빠른 볼 스피드를 못 따라가서 그런 것 아닌가?’ 그런 의구심이다.
끝이 아니다. 못 참고, 한 마디를 더 묻는다. “혹시 당겨 칠 줄 모르나?”
그 말에 루키의 표정이 싹~ 바뀐다. “보여드릴까요?”
그때부터다. 강렬한 스윙이 연달아 폭발한다. 그때마다 오른쪽으로 빨랫줄이 걸린다. 상당수는 아예 담장 너머로 사라진다. 지켜보던 모두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훗날 이유가 밝혀졌다.
“처음 캠프에서 무척 당황했다. 생각보다 투수들의 공이 훨씬 강했다. 일본에서 치던 방식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다리 움직임을 줄이고, 스윙도 간결하게 바꿔야 했다. 스프링캠프 내내 그 작업에 몰두했다.” (이치로)
본래는 진자 타법으로 유명하다. 극단적인 레그킥의 일종이다. 오릭스 초창기부터 많은 반대를 이겨내고 완성한 방식이다. 그에게는 상징이고, 자존심이다. 그걸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과도기를 겪었다. 롭 디블이 키득거리던 시기다. 루 피넬라가 갸웃거리던 때였다.
결국 그는 이겨냈다. 개막과 함께 화려한 시즌을 맞는다. 타격(0.350), 최다안타(242개), 도루(56개) 3관왕에 올랐다. 신인왕과 페넌트레이스 MVP를 석권했다. 올스타 투표 1위도 그의 차지였다.
이후에도 한 번 더 타격왕(2004년)에 등극했다. 최다안타 타이틀은 7번이나 거머쥐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누군가 알몸으로 체포됐다는 뉴스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지금은 평가할 때가 아니다
올해도 몇 명의 도전자가 태평양을 건넜다.
그중 한 명은 고척돔 출신이다. 안타깝게도 캠프 기간의 평가는 별로다. 예의범절이 훌륭한 것 말고는 어느 것 하나 딱 떨어지는 게 없다.
특히 타격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볼 스피드를 못 따라간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아시아권 타자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적응을 위해 폼을 바꾸는 중이다. 다리를 들던 레그킥을 버렸다. 대신 오른발을 살짝 내딛는 스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진도는 더디다. 적응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뚜렷한 결과물도 보이지 않는다. 팔푼이, 칠푼이 소리도 들어야 한다. 싱글 A 투수에게도 삼진을 먹는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때문에 늘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 도쿄시리즈에는 갈 수 있을까. 언제까지 라커룸에 이름표가 붙어 있을까. 1차, 2차…. 연이은 컷 오프가 조마조마하다.
물론 이치로나 오타니가 그의 비교 대상은 아니다. 꽤, 상당히 높은 수준인 건 사실이다. 계약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당황하고, 허둥거리고, 난감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투수는 처음 본 투수’라는 사실을 절감해야 했다.
지금은 평가할 때가 아니다. 진득하게 지켜볼 때다. 그리고 참고, 기다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