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차...기네스북에도 등재됐던 쌍용차 ‘무쏘’
[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지난 1993년, 쌍용자동차가 320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고급 대형 SUV ‘무쏘’가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갤로퍼가 장악했던 SUV 시장의 지각이 변동되는 순간이었다.
무쏘가 등장하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랜저보다 넓었던 전폭, 큼지막한 덩치도 강점이었지만, 콧대 높은 벤츠와 기술 제휴를 맺어 쐐기를 박았다.
당시 코드명 W124 E250D에 탑재되던 엔진의 상용차용으로 개조된 OM602와 미션을 직수입해 무쏘에 그대로 장착해 독보적인 파워트레인을 자랑한다. 덕분에 엔진룸 곳곳에서 벤츠의 흔적이 묻어났다. 이에 쌍용차는 이를 무기 삼아 광고 전면에 ‘벤츠의 파워트레인’을 장착했다는 문구를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당시 OM602가 탑재된 602EL의 최고 출력은 95마력을 발휘했는데, 당시 갤로퍼 자연 흡기 모델이 73마력, 터보 모델이 81마력임을 감안하면 월등한 성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S클래스에서 사용하던 6기통 3.2리터의 M104 DOHC를 가져와 220마력이라는 압도적인 출력을 선보였다.
내구성도 뛰어났다. 앞서 언급한 OM062외에도, 2.3리터의 OM061 엔진도 마련됐는데 고장이 나지 않았다. 한국도로공사의 도로관리 차량으로 많이 활용됐으며, 4개월간 아프리카 12개국을 종단하는 쇼맨십도 돋보였다. 이후, 무보링으로 누적 주행거리 88만km를 돌파한 차량이 등장하면서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아울러 1994년 이집트 파라오 랠리에서는 4륜 부문 1위, 95년도에는 2년 연속으로 다카르 랠리서 종합 8위를 달성했다. 이 밖에도 1999년에는 1회 주유 최장 거리 운행 기록으로 기네스북까지 등재됐는데, 당시 호주 멜버른부터 브리스배인까지 1703km에 달하는 거리를 주행하는데 고작 78리터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1999년 3만 428대를 팔아치우며 국내 시장 점유율 57%를 달성했다. 이 밖에도 1993년부터 2003년까지 7만 896대의 수출 실적을 거뒀다. 특히 영국에서는 많은 인기를 끌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코란도 스포츠’를 ‘무쏘’로 명칭을 바꿔 판매 중일 정도다.
디자인도 독보적이었다. 초기형 모델의 경우 ‘투톤 컬러’를 적용해 고급스러움을 더했으며, 투박했던 기존 SUV의 이미지를 타파하고, 유선형 라인을 적용한 점이 매력 포인트였다. 경쟁차종인 갤로퍼와 비교해 보면, 당시 무쏘의 디자인이 꽤 획기적이었음을 체감할 수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무쏘의 디자이너로 무려 영국의 왕립 예술 대학의 교수인 ‘켄 그린리’ 초빙한 쌍용차의 지독한 집념이 있었다.
옵션도 상당했다. 국산 4륜구동 차량 최초로 ABS를 탑재했으며, 가죽시트와 2열 폴딩 시트, 전자동 썬루프까지 마련됐다. 여기에 전자제어식 서스펜션부터 5링크 코일 스프링, 더블 위시본 현가장치까지 장착됐기에 압도적인 상품성을 뽐냈다.
이후 1996년 500대 한정판인 ’‘무쏘 500’지 출시됐다. 양가즉 시트와 리얼 우드 트림, 알파인 사운드 시스템과 카폰, 영화 감상이 가능한 CD플레이어, 앞좌석 전동 시트, TCS 등 초호화 옵션을 대거 적용한 플래그십 차량이었다. 신차 가격은 4950만원, 현대차의 다이너스티 리무진과 비교해 봐도 25만원이나 더 비쌌다. 그만큼 서비스도 끝내줬다. 지점장이 직접 차를 배송해 줬고, 소유주의 자필 사인을 운전석 도어에 자개로 각인까지 시켜줬다. 국내에서는 100대가량이 배정됐지만, 완판이 되지는 못했다.
이후 무쏘는 몇 차례에 부분 변경을 거쳤으며, 픽업트럭 모델도 출시된 후 2006년에 단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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