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배낭‧등산화‧액세서리
예측하기 힘든 산에서 안전한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아이템들이 있다.
기본 중의 기본, 의류
1월은 겨울 중에서도 등산객들이 산을 가장 많이 찾는 시기다. 절정의 겨울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 떠난 겨울 산. 하지만 겨울 산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냉정하고 위험하다. 겨울의 산은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기온이 0.6℃씩 낮아지며,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이나 미끄러운 빙판길을 오르고 내리는 일은 평소보다 1.5배 이상의 시간을 잡아먹는다. 또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으로 폭설이나 비를 만나기라도 하면 체온을 빠르게 빼앗길 수 있어 위험하다. 그래서 겨울에는 ‘보온’이 가장 중요하다.
등산 의류는 ‘레이어드’가 핵심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의 격렬한 움직임,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는 야외에서 수시로 가져야 할 쉼. 냉온탕을 드나드는 것만큼이나 체온의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니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옷을 여러 겹 레이어드해야 체온 조절이 용이하다.
‘겨울에는 무조건 우모복이 최고’라는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산행을 시작하면 몸에 열이 오르고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수분과 열을 발산하는데 불리한 다운재킷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대신 울 소재의 티셔츠와 플리스 재킷, 하드쉘 재킷을 레이어드해 입고, 더울 때는 플리스 재킷을 벗어주거나 하면서 체온을 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다고 다운재킷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운재킷은 배낭 가장 위쪽에 넣어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할 때 입어주면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속옷도 중요하다. 땀을 가장 먼저 흡수하는 옷이 속옷이기 때문에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배출하는 폴리프로필렌이나 폴리에스터, 울 등의 호흡성 소재가 적합하다. 티셔츠와 바지는 신축성이 뛰어나고 보온성과 흡습속건성이 우수한 기능성 의류를 입어주자. 폴리에스터, 폴리프로필렌, 울, 플리스 등 산행에 적합한 다양한 소재들이 있지만, 소재를 몰라도 괜찮다. 이럴 때는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계절별로 출시된 등산복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소재를 고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상의를 고를 때는 충분히 긴 옷을 선택하자. 상의와 하의가 벌어지면 체온이 쉽게 달아날 수 있다. 겨울철에는 티셔츠를 바지 속에 넣어 입는 것이 체온 유지에 더 효과적이다. 방수 및 투습성이 우수한 재킷을 구입할 때는 가능한 여유로운 사이즈를 고르자. 겨울철에는 티셔츠와 이너 재킷 등을 껴입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 타이트한 사이즈의 하드쉘 재킷을 구입하면 움직임에 제한이 오고 불편하기 십상이다. 또 땀을 빠르게 배출하기 위한 겨드랑이 개폐 지퍼가 있는지,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재봉선에 심실링 처리가 되어 있는지도 꼼꼼히 확인하자.
내 몸에 착붙 배낭 찾기
등산용 배낭을 고를 때는 가장 먼저 용량을 정해야 한다. 배낭은 용량에 따라 20~30L의 소형, 40~50L의 중형, 그리고 60~100L의 대형으로 나눌 수 있다. 소형 배낭은 당일치기용, 중형 배낭은 1박2일 혹은 2박 3일용, 대형 배낭은 장기 여행용으로 적합하다. 어떤 목적인지에 따라 용량을 선택하고, 그 목적에 충실한 배낭 크기를 먼저 선택하자.
배낭은 산에서 나와 한 몸이 된다. 짐이 가벼워도 무거워도 언제나 내 등에 매달리니 직접 착용한 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사람의 체형은 제각각이라 아무리 좋다는 배낭도 나에게는 남의 옷을 입은 듯 불편할 수 있다. 배낭을 구입할 때는 먼저 나의 토르소 길이를 알아야 한다. 토르소는 고개를 숙였을 때 툭 튀어나오는 7번째 목 척추뼈에서 골반뼈까지의 길이를 뜻한다. 배낭 전문 브랜드는 토르소 길이에 따라 배낭 사이즈를 다양하게 출시한다. 등판의 사이즈는 편안한 운행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같은 무게를 매더라도 사이즈를 잘 선택하면 배낭의 무게를 잘 분산시켜 편안하다. 무게 분산을 위한 힙벨트 여부도 확인하자. 20L 급 소형 배낭이라면 힙벨트 여부가 크게 상관없지만 꽤 많은 짐이 들어가는 중형 배낭부터는 힙벨트는 필수다. 힙벨트는 어깨로만 감당해야 하는 짐의 무게를 골반으로 분산시켜 사용자가 느끼는 하중에 현저하게 감소시킨다. 단 힙벨트는 너무 꽉 조여 매면 오히려 운행이 불편해진다.
배낭은 짐을 넣어 운반하는 도구다. 아무리 좋은 배낭도 무게가 늘면 무거운 짐짝과도 같다. 다만 같은 짐도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체감하는 무게가 달라진다. 패킹 원칙은 간단하다. 가벼운 것은 아래로, 무거운 것은 위로. 무거운 물건을 어깨와 등판 쪽에 두면 허리에 가는 부담을 줄여 피로감이 덜하다. 다만 하산 시에는 배낭 위쪽이 무거우면 균형을 잃기 쉬우니 무거운 짐은 어깨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좌우의 무게 분산도 고려하자.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에너지 소모가 커진다. 무리 없이 멜 수 있는 배낭 무게는 체중의 1/3까지다. 이를 넘어서면 과도한 무게로 인해 무리가 되고, 자칫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50L 이상 배낭이라면 가장 먼저 침낭이나 폴을 뺀 텐트 등 부드럽고 무게가 크게 나가지 않는 물건을 바닥에 깔아준다. 여기에 버너나 코펠, 매트리스, 식량 등을 넣고 사이사이 틈에는 옷가지나 휴지 등으로 공간을 채운다. 가벼운 물건은 아래, 무거운 물건을 위에 챙기고 가능하면 무거운 물건일수록 등판과 가까이 보관해 체감 하중을 줄인다. 운행 중에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나 간식, 옷가지 등은 배낭 헤드에 넣어두는 것이 편리하다. 배낭은 가능한 세탁을 자주 하지 않는 것이 발수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 길이다. 오염된 곳만 부분적으로 닦아주자.
거친 산길에서 나를 지켜주는 등산화
아웃도어 환경에서도 일상에서도 신발은 무척 중요하다. 매일 수천 걸음에서 수만 걸음을 걷는 동안 발은 지속적으로 혹사당한다. 특히 거친 암릉과 흙길이 혼재된 아웃도어 환경에서는 단단한 등산화를 신어야 부상 없이 안전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등산에 새롭게 입문한 하이커들은 발목이 낮고 가벼운 스타일의 경등산화를 무작정 구입하지만 용도와 환경에 따라 등산화를 선택해야 안전사고 없이 오래도록 신을 수 있다.
등산화를 구입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나의 등산 스타일’이다. 가볍게 하이킹을 하는지 중장거리 워킹 산행을 즐기는지, 암벽등반이나 리지 등을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도심 근교의 짧은 산행 코스를 주로 걷는다면 가벼운 경등산화도 괜찮지만 아무리 익숙한 지형이라도 산에서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등산화는 목이 긴 것과 짧은 것, 아웃솔과 갑피가 딱딱하고 무거운 것과 부드럽고 가벼운 것으로 나뉜다. 창이 딱딱하고 신발이 무거운 등산화는 요철이 심한 산에서 장시간 걸을 때 발의 피로를 줄여준다. 또 추위에도 강해 동계용으로 적합하다. 반면 창이 부드럽고 가벼운 등산화는 짧은 산행에 효과적이지만 지면의 요철이 잘 느껴져 발바닥이 쉽게 피로해지는 단점이 있다.
등산화는 운동화와 다르게 한 치수 크게 사는 걸 권한다. 그렇다고 너무 크게 신으면 안전하고 즐거운 등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운동화 치수보다 5mm 큰 걸 고르되 가능하면 발이 조금 부어있는 오후에 두툼한 등산 양말을 신고 매장을 방문해서 직접 신어보고 사는 걸 권한다. 신었을 때 발가락이 있는 앞부분은 공간이 약간 있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도 불편하지 않아야 하고, 걸을 때는 뒤꿈치가 신발 밑창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앞부분은 여유가 있지만 발을 전체적으로 살짝 잡아주는 느낌이 있는 게 피로도가 적고 안전하다.
중등산화의 경우 신끈을 발목까지 묶으면 발목이 아파서 후크 끝까지 끈을 걸지 않고 발목 부분에 묶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험하고 적절하지 못한 사용 방법이다. 발목까지 단단하게 묶어주면 발이 접질렸을 때 발목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안전한 겨울 산행을 위한 액세서리
추위를 대비하는 완벽한 옷이 있더라도 액세서리를 소품처럼 여겨 잘 챙기지 않으면 겨울 산에서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동계 산행에서 꼭 구비해야 할 액세서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젠, 스패츠, 스틱, 장갑, 모자는 소품이 아닌 필수 아이템이다.
스패츠 & 아이젠
먼저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아이템을 꼽자면 스패츠다. 스패츠는 발목 이상 눈이 쌓인 길을 걸을 때 신발 내부로 눈이 들어오지 않는 역할을 한다. 바짓단 사이로 물과 눈, 바람이 들어오면 시간이 갈수록 신발 내부가 젖어 발이 시린 것을 넘어 동상에 걸릴 수도 있다. 스패츠는 보통 나일론, 옥스퍼드 소재가 많으며, 안쪽에 폴리우레탄 코팅을 해 방수 및 방풍 기능을 보장한다. 단, 내부의 수분이 밖으로 잘 배출되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성에가 끼거나 얼어 불편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소재가 고어텍스다. 고어텍스 스패츠는 완벽한 방수는 물론 투습 기능이 있어 눈을 막고 내부 수분을 배출하지만 비싼 것이 단점이다.
아이젠은 동계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다. 도심에 눈이 없다고 아이젠 없이 산에 갔다가는 낙상 사고를 당할 위험이 다분하다. 울창한 숲과 계곡 등으로 인해 음지가 많은 산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빙판이 수두룩하다. 오히려 눈보다 더 무서운 게 빙판이다. 산은 도심과 달리 크고 작은 바위와 돌들로 인해 요철이 심하기 때문에 미끄러질 경우 훨씬 심한 부상을 당한다. 겨울철에는 눈이 오던 오지 않든 무조건 아이젠을 신어야 한다. 과거에 주로 쓰던 4발 아이젠은 신발 중앙에 착용해 눈이 없는 지형에서는 균형감을 찾기 힘들었지만, 요즘에는 노지에서도 균형감을 유지시키는 체인 형태의 아이젠이 출시돼 산행 내내 신어도 불편하지 않다. 장시간 산행을 할 때는 아이젠을 수시로 살피며 눈이 뭉친 스노볼을 제거해야 아이젠의 기능을 더 확실하게 유지할 수 있다.
장갑 & 모자 & 바라클라바
동계 산행에서 에디터를 가장 괴롭히는 건 손 시림이다. 아무리 두꺼운 장갑을 끼어도 시간이 지나면 손끝에 감각이 사라진다. 보온성을 위해 많이 사용하는 울 소재의 장갑은 눈이 잘 붙고, 쉽게 젖어 체온을 저하시키고 쉽사리 마르지 않는다. 플리스 소재의 장갑을 끼고 그 위에 오버 글로브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다. 장갑을 하나만 끼고 싶다면 내피에 보온성이 우수한 신슐레이트를 보온재로 사용하고 외피에 고어텍스 소재를 적용한 장갑도 있다. 부피가 크고 둔탁해 움직임이 다소 둔할 수 있지만 손 시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장갑을 레이어드 하거나 보온재를 넣은 장갑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겨울철 체온 상실의 상당수는 머리에서 발생한다. 동계 산행을 나설 때는 귀를 덮는 방한용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4~5시간 이상의 산행이라면 방한모자로도 부족하다. 이럴 때는 눈·코·입을 제외한 안면과 머리 전체를 감싸는 바라클라바를 쓰는 것이 좋다. 바라클라바는 머리뿐만 아니라 얼굴과 목까지 보호해 체온을 보존하고 칼바람을 차단한다. 바라클라바를 착용한 후에도 재킷에 부착된 후드를 쓰거나 추가로 방한모자를 써 보온 기능을 보강하는 것이 좋다.
보온병 & 스틱
지금까지 체온을 잃지 않는 방법을 나열했다며, 이제부터는 체온을 더해주는 방법이다. 꽁꽁 언 몸을 녹이는 데 따뜻한 차나 커피만큼 좋은 것도 없다. 버너를 이용해 즉석에서 차를 끓일 수도 있지만, 번거로울 뿐 아니라 국립공원 등 취사가 금지된 산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일. 이럴 땐 보온병에 미리 따뜻한 차를 담아 가면 꽁꽁 언 몸을 한순간에 녹일 수 있다. 기온이 낮은 산에서는 일반적인 텀블러보다 등산용 보온병을 추천한다. 등산용 보온병은 병의 입구가 좁아 열을 쉽게 빼앗기지 않으며, 뜨거운 물을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스틱은 사시사철 등산을 돕는 아이템이지만 겨울철에 특히 더 유용하다. 아무리 아이젠을 신어도 경사가 급한 산길에서는 미끄러질 위험이 존재한다. 스틱을 사용하면 보행 중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순간적으로 미끄러지더라도 네 발로 균형을 잡는 효과가 있어 안전하다. 눈이 많이 쌓인 산길에서는 미리 스틱으로 땅을 짚어가며 길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