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을 따라 떠난 역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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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대첩이 일어난 울돌목!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록 중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말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일 것 같은데요.🔥 선조의 무리한 출정 명령을 거부했던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이 됩니다. 그 사이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고,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죠.🪖 이순신 장군은 순천에서 대포와 화약, 보성에서 군량미를 확보하면서 조선 수군 재건에 나서는데요. 하지만 칠천량에서 대패한 조선 수군은 열세에 놓인 상황이었고, 이에 선조는 권율의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령해요. 이때 선조에게 보낸 장계에 적힌 말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예요.🥹 이순신 장군이 장계를 쓴 곳은 전라남도 보성의 열선루로, 보성에 가면 장계를 쓰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어요.
명량해전 전술을 고뇌한 곳, 벽파정⚔️
장계를 쓰고 판옥선 1척을 더 얻게 된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배로 일본군을 격퇴할 전술을 짜게 됩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16일 간 벽파정에 머물면서 전략을 세우고 수군을 재건한 것으로 전해져요. 벽파정은 2016년 복원됐는데요. 벽파정에 오르면 진도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해전💣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에서 일본군을 맞이합니다. 판옥선 13척으로 일본군 133척에 맞서 승리를 거둔,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대승을 거두게 되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는 울돌목 회오리 바다에 있었어요.🌪️ 지금도 울돌목(진도대교 앞)에 가면 회오리 바다를 볼 수 있는데요. 회오리 물살이 얼마나 강력하냐면요. 요즘 작은 배들도 회오리가 심할 때는 꿈쩍 못할 정도라고.😲 울돌목에는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이 있는데요. 울돌목 회오리 바다를 감상하면서 당시 이순신 장군의 고뇌했을 심정을 느껴보세요. 또 거대한 이순신 동상과 함께 진도 앞바다를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도 마련되어 있어요.🌊
⚔️ 노량해전의 시작, 왜교성 전투
고니시가 갇혔던 곳, 순천왜성🏯
영화 '노량' 보셨나요? 노량의 첫 장면은 이순신 장군의 조명연합수군이 일본군을 봉쇄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포위된 일본 장수는 '고니시 유키나가'로 조명연합수군을 뚫고 일본으로 도망가고자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영화가 시작되죠. 고니시가 갇혀있던 곳이 바로 이곳 순천왜성이에요.🏯 순천왜성은 천수각 건물까지 있었던 국내 왜성 중 가장 큰 규모의 성인데요. 길이 1,342m의 내성과 2,500m가 넘는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터만 남아 있어요.
조명연합군vs일본군, 왜교성 전투⚔️
'왜교성 전투'는 1598년 9월 20일(음력)부터 10월 7일까지 순천왜성에서 이순신·권율·유정·진린 장군이 이끄는 조명연합군 대 고니시의 일본군 간의 벌어진 전투예요.💣 조명연합군은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고니시를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는데요. 고니시로부터 뇌물을 받은 유정이 전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고, 이순신·진린 장군의 수군만이 참전하면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요.😠 실패에도 왜교성 전투는 7년 동안 이어진 임진·정유왜란이 끝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아요.
노량해전의 시작😢
순천에 갇힌 고니시는 시마즈에게 구원 요청을 보냅니다. 자신이 일본으로 퇴각할 수 있게 구조해 달라는 요청이었죠.🏳️ 1598년 11월 19일(음력) 사천에서 구원군을 이끌고 온 시마즈와 순천의 고니시가 노량해협에서 이순신·진린의 조명연합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요.💣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전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