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 태극기에 질색하는 일본…그러나 WBC 회장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

일본 언론 보도에 댓글만 1800여개

묘한 시점이다. 대만과 결승전은 지난 7일이었다. 2-0 승리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아시안게임이 폐막된 지도 며칠 뒤다. 어느 일본 매체가 기사 하나를 올렸다. THE ANSWER의 14일 보도다. ‘야구 우승 후 마운드에 국기를 꽂으려던 한국, 대회 운영 요원이 제지…과거 한일전에서도’라는 제목이다.

내용은 길지 않다. 본문은 대만의 케이블 방송 TVBS를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경기 후 기쁨에 겨운 한국 선수단 중 한 명이 마운드에 국기를 세우려고 시도했지만, 대회 스태프 2명에게 제지됐다. 한국의 이런 행동은 지금까지 몇 차례 있었다. 2006년과 2009년 WBC 때도 일본전에 승리한 후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았다.’

이 기사가 야후 재팬에 노출된 시간은 토요일인 14일 오후 5시 13분이다. 이후 이용자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튿날까지 1900개에 육박하는 댓글이 달렸다. 주말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많은 숫자다. 코멘트 랭킹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

그러자 하루 뒤(15일) 비슷한 보도가 이어진다. CoCoKARAnext라는 일본 매체의 기사다. 조금 더 자극적인 제목이 붙었다. ‘파문’ ‘미수’ 같은 단어가 들어있다.

본문 중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병역 면제 권리를 획득한 선수들이’, ‘2006년과 2009년 WBC 때도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아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던’, ‘국제적인 반감을 사는 행위’ 같은 내용들이다. 이 기사에도 600건가량의 댓글이 달렸다.

대만 방송 TVBS 캡처
대만 방송 TVBS 캡처

비난과 험담으로 가득한 일본의 반응

반응은 한결같다. 비판과 비난 일색이다. THE ANSWER의 기사에 붙은 베스트 댓글은 이렇다.

‘매너 위반이라서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반복되는 것은 악의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한번은 용서가 될지 모르지만, 그다음부터는 의도적이라고 봐야 한다.’ 1만7000개가 넘는 엄지척(공감)을 받았다. 대댓글만 148건이다.

다른 것도 비슷하다.

‘게임에 이기면 마운드에 국기를 꽂고, 패하면 상대와 악수도 거부한다. 스포츠맨십이 부족한 탓이다. 이렇게 반복된다면 선수단 중 누구 하나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일 것이다.’

‘WBC 때 이런 모습을 보고 불쾌했다. 우승한 것도 아닌데, 일본을 이겼다고 과도하게 기뻐하는 모습에 싫증이 났다. 마운드는 신성한 것이다. 거기에 마음대로 국기를 꽂는다는 것은, 그 야구장에서 경쟁한 모든 국가의 선수와 대회 관계자, 나아가서는 야구 그 자체에의 모욕이라고 비쳤기 때문이다.’

CoCoKARAnext의 기사에도 이런 반응이다.

‘2006년과 2009년에는 우승한 것도 아니었는데, 일본을 이긴 것만으로 그랬다. 결국 일본에 져서 우승을 빼앗기는 통쾌한 결말이었다. 오히려 웃음을 줘서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스포츠맨십이란 심판이나 상대에 대한 경의와 존경을 잊지 않는 것이다. 게임을 마쳤을 때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정치나 이념 등이 개입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1869건의 댓글로 야후 재팬 코멘트 랭킹 1위에 기록된 해당 기사 야후 재팬 캡처

반감의 실체

격앙되고, 날카로운 반응이다. 일단 감정은 배제하자. 그리고 그들이 갖는 반감의 실체에 접근해 보자. 마운드에 국기를 꽂는 것이 왜 문제인가. 주장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신성한 마운드를 훼손한다는 것 ▶패자에 대한 매너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행태라는 점이다.

일단 문화 자체가 다르다. 야구를 대하는 그들의 정서 말이다. 자부심과 긍지가 남다르다. 그러다 보니 심오한 감정 이입도 이뤄진다. 어떤 경우는 스포츠 이상을 느끼게 한다. 마치 종교에 가까운 경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유명한 장면이 있다. 1990년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구와타 마스미가 남긴 일화다. 불의의 부상을 당했다. 팔꿈치 수술이 불가피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 같지 않았다. 토미 존 서저리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던 시절이다. 그의 재활 과정이 매일 속보로 전해질 정도로 국민적인 관심사였다.

그렇게 1년 반이 흘렀다. 드디어 복귀가 이뤄지던 날이다. 도쿄돔 마운드에 올라 잠시 숨을 멈춘다. 그리고 무릎을 꿇더니, 수술한 팔꿈치를 투구판에 올려놓는다.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후로 비슷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투수들이 등장했다. 한 손을 투구판에 얹고 기도하거나,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는 숙연한 모습 등이다. 경건함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마운드는 신성한 곳이다.’ 그런 의미 부여를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다.

‘제지’는 다른 이유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런 주장도 있다. 국기를 휘두르고, 흔드는 것은 국가대항전에서 흔한 일이다. 그러나 땅에 꽂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라는 지적이다. 그건 마치 ‘점령’이라는 의미로 곡해될 여지가 있다는 우려다. 때문에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라서 금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방의 주장일 뿐이다. 논리의 왜곡이고, 비약이다.

우선 문제가 된 장면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선수 누군가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으려 했고, 이를 대회 스태프가 제지했다’는 보도 내용이다. 외형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최초 보도한 대만의 케이블 방송 TVBS의 캡처 화면에는 그렇게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영상이 있다. MBC의 유튜브 채널인 엠빅뉴스가 참고 자료다. ‘금메달 확정 직후 태극기 휘날린 그라운드’라는 제목의 컨텐트다. 2분 45초쯤 누군가 마운드로 걸어간다. 백넘버 16번 정우영으로 보인다. 그는 작은 태극기를 마운드에 세우려는 모습이다.

여기서 편집된 커트로 넘어간다. 다음 장면은 조직위 직원 2명이 한국 선수단을 향해 손을 젓는 모습이다. ‘제지했다’는 표현대로다.

그런데 주변 상황을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당시는 경기 종료 후 제법 시간이 지났다. 우리 선수들의 우승 세리머니가 마무리 단계였다. 화면을 보면 대만 선수단은 3루 측, 한국은 1루 측에 도열해 관중들에게 인사를 마쳤다. 이 무렵 조직위는 시상식을 준비중이었다. 그라운드 정리가 시작되고, 시상대를 옮기던 상황인 것이다.

즉, 조직위의 제지는 태극기를 꽂는 행위가 뭔가 규정에 어긋나서가 아니라, 시상식 진행을 위해서라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마운드에 국기를 세우는(꽂는) 일은 쉽지 않다. 맨손으로 땅을 파기도 어렵고, 흙을 쌓으려는 방법도 만만치 않다. 당시도 처음에는 혼자 시도하다가, 잘 안되는 것을 보고 선수들 몇 명이 합세했다. 시간이 걸리자, 현장 직원들이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분위기나 표정으로도 이런 추론에 무게가 실린다.)

기억에 남는 짐 스몰 WBC 회장의 인터뷰

‘마운드는 신성한 곳이다.’ ‘패자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없다.’ ‘그래서 국기를 꽂으면 안 된다.’ 그런 논리 전개에도 수긍은 어렵다. 야구계의 수많은 불문율 중에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적어도 보편적인 얘기는 아닐 것이다.

정치적, 이념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WBC 때는 두 번 모두 무대가 미국이었다. 이번에는 중국이다. 대결 상대(일본, 대만)의 홈구장이 아니다. 개최지는 제3국인 셈이다. ‘점령한다’는 의미가 성립할 수 없다.

짐 스몰이라는 인물이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잔뼈가 굵었다. 1987년 말단 직원으로 입사해 30년 넘게 근무했다. 그가 아시아 태평양 담당 부사장 시절이다. 휴가지에서 갑자기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야구도 축구 월드컵 같은 이벤트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대부분 사람들이 “말도 안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마침 세계화 전략을 추구하던 커미셔너(버드 셀릭)의 뜻과도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대회 하나가 만들어졌다.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가 몇 년 전 한국을 찾았다. 체류 기간 중 엠스플뉴스와 인터뷰가 이뤄졌다. 질문 중 이런 게 있었다. ‘WBC와 관련해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2006년 1회 대회 때 애너하임에서 열린 경기였다. 당시 한국 대표팀이 승리한 뒤에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고 자축하는 장면을 보고, 한국인이 아닌 데도 큰 감동을 받았다. ‘바로 이것이 WBC가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확신 같은 게 들기도 했다. 그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짐 스몰은 현재 WBC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