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면 어김없이 붐비는 해수욕장 대신, 고요한 자연 속에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단연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여수 앞바다에 숨은 보석 같은 섬, 금오도입니다. 이 섬엔 단순한 풍경을 넘어, 바다와 절벽, 숲이 어우러진 특별한 길이 있죠.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 길, ‘비렁길’을 따라 걸어보면 왜 많은 이들이 이곳을 ‘명품 트레킹 코스’로 꼽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비렁길

'비렁’은 여수 사투리로 ‘벼랑’을 뜻합니다. 이름 그대로 금오도의 비렁길은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를 따라 조성된 탐방로입니다. 총길이 18.5km에 달하는 이 길은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만들어졌기에, 걸을수록 원시의 풍경에 가까워지는 기분을 줍니다.

출발점인 함구미 선착장에서 길을 나서면, 바다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길옆으로는 금오도의 특산물인 방풍나물이 지천으로 자라 있어 여름의 초록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길을 오르다 보면 고란초 군락, 생강나무, 고사리 등 다양한 식생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섬의 자연이 얼마나 잘 보존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하죠.
그리고 30분쯤 지나 도착하는 ‘용머리’ 지점에서는 수평선 너머 펼쳐진 다도해의 풍경과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의 바위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며,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비렁길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의 거리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벽 아래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 숲 사이로 스치는 바람,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의 섬들. 모든 요소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생생함으로 다가옵니다.
각 코스는 모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총 다섯 개 코스와 종주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완주에는 약 8시간 30분이 걸리지만, 체력과 일정에 맞게 부분 코스만 골라 걷는 것도 충분히 좋습니다.
특히 각 지점마다 마을로 내려가는 연결길이 있어 언제든 코스를 조정할 수 있어 초보자에게도 부담이 적습니다.

숲길을 걷다가 불쑥 열린 전망대에 도착하면, 갈바람통전망대 같은 지점에서는 바다와 섬, 하늘이 삼각 구도로 어우러진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며,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단절된 듯한 평온함이 찾아옵니다.
비렁길이 자연과 가까워지는 길이라면, 금오도 속 또 하나의 보물인 ‘금오숲’은 아예 자연 속에 들어서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과거 조선 왕실에서 궁궐을 짓기 위해 황장목을 벌목하던 곳이자 사슴을 기르던 봉산이었던 이 숲은 오랜 시간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비밀의 장소였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원시림에 가까운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피톤치드 가득한 공기와 함께 오감을 일깨우는 시간이 됩니다.
숲과 바다, 그리고 절벽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비렁길과 금오숲은 단순한 트레킹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걷는 이로 하여금 자연과 삶에 대한 사색을 이끌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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