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은 다니엘 레비를 왜 잘랐나?

다니엘 레비 회장이 토트넘을 떠났다. 9월 5일 토트넘은 레비 회장의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2001년 3월 토트넘 회장 임명 후 25년간 한 구단의 수장으로 군림해왔다.

#경영권 승계

우선 레비 회장이 사임했지만 크게 바뀐 것은 없다. 토트넘은 레비 회장 사임 공식 발표에서도 '지배 구조나 팀의 주주 현황은 바뀐 것이 없다'고 했다. 기존 토트넘을 지배하고 있는 체제는 동일하다.
토트넘 주식의 86.7%는 ENIC 그룹이 가지고 있다. 나머지 13.3%를 소액 주주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ENIC 그룹의 주식 상황은 어떨까. ENIC 그룹의 주식 70%는 조 루이스 일가가 가지고 있다. 나머지 30%는 다니엘 레비 일가가 보유 중이다. 즉 토트넘은 조 루이스가 물주이고, 다니엘 레비가 그의 충실한 가신으로 경영을 전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비 회장의 사퇴는 시간에 따른 변화라고 봐야 한다. ENIC그룹을 소유한 타비스톡(Tavistok)그룹의 수장인 조 루이스는 2023년 내부자 거래 혐의로 미국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 결과 조 루이스는 타비스톡 그룹의 지분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넘겼다. 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났다. 1937년생인 조 루이스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도 이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된 것이었다.

조 루이스의 뒤를 이어 타비스톡 그룹은 그의 2세 그리고 3세가 운영하고 있다. 딸인 비비안과 아들인 찰스는 타비스톡 그룹의 고위 임원이다. 조 루이스의 손녀 사위인 닉 부처는 다니엘 레비의 아들 조시 레비와 함께 타비스톡 그룹의 공동 CEO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 그룹이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 이어 이건희 회장을 거쳐 현재 3세인 이재용 회장이 운영하는 것처럼 타비스톡 그룹도 이제 3세 경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전면에 등장했기에 구체제 인사는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이 순리다. 이성계의 책사였던 정도전이 이방원의 등장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 좋은 예다. 토트넘의 모기업인 타비스톡 그룹은 이미 2세, 3세가 전면에 나섰고, 1세의 가신인 다니엘 레비는 이제 은퇴의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었다.

#신선함

2001년 ENIC 그룹은 토트넘을 인수했다. ENIC 그룹의 상무였던 다니엘 레비가 회장이 되며 토트넘을 맡았다.
토트넘은 빅클럽이 아니었다. 북런던 라이벌인 아스널이 승승장구했지만, 토트넘의 그들에게 철저히 밀려있었다. 중하위권을 전전했다. 여기에 토트넘의 구단주 조 루이스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투자도 인색했다. 사실 조 루이스에게 토트넘은 영국 상류 사회에서 하나쯤 가져야하는 반짝이는 장신구에 불과했다.

다니엘 레비는 고군분투했다. 그는 선수 장사에 집중했다. 좋은 유망주나 괜찮은 선수를 싼 가격에 데리고 와서 추후 비싼 가격에 팔았다. 루카 모드리치, 가레스 베일 등을 비싼 가격에 팔면서 팀에 돈을 쌓았다. 그 결과 6만석 짜리 신구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그리고 토트넘 홋스퍼 트레이닝센터를 만들었다. 팀의 근간을 구축했다. 또한 토트넘이라는 팀도 프리미어리그 내 빅6로 발돋움시켰다. 다니엘 레비는 25년간 약 938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그의 성과였다.

#이제는 구식 경영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니엘 레비의 경영은 구식이 되어버렸다. 선수 장사는 한계에 봉착했다. 프리미어리그의 중계권료가 높아졌다. 프리미어리그 내 많은 팀들이 더 많은 돈을 갖게 됐다. 다양한 형태의 오너십도 등장했다. 러시아 자본이 들어왔고, 중국과 중동에서도 돈을 들고 영국으로 왔다. 미국 자본도 프랜차이즈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정 선수 영입을 놓고 토트넘이 직면한 경쟁의 강도는 세졌다. 레비 회장 특유의 선수 영입 방식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흥정을 하는 사이 다른 팀들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혹은 팔려는 구단이 레비 스타일에 질려 협상 테이블을 이탈했다.
코로나 19 판데믹도 큰 영향을 끼쳤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2019년 4월 3일 개장했다. 그리고 1년 남짓 후 코로나 19 판데믹이 덮쳤다. 경기는 중단됐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경기가 열렸지만 무관중 경기였다. 구장을 짖기 위해 대출을 받았던 토트넘으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팬들의 여론 악화가 컸다. 토트넘 팬들은 연일 다니엘 레비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감독을 수도 없이 갈아치웠으면서 우승컵은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실제로 토트넘은 다니엘 레비가 팀을 맡은 후 유로파리그 우승 전까지 24년간 16명의 감독을 데려왔지만 우승컵은 단 하나(리그컵)에 그쳤다. 팬들로서는 불만을 토할 수 밖에 없었다.

비젼도 부재했다. 이제 토트넘은 더 이상 중위권팀이 아니다.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도 우승을 다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빅6팀 중 하나이다. 클럽 전체를 관통하는 레거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우승이 부족한 토트넘으로는 그 세계에서 레거시를 만들기 어렵다.
이런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다니엘 레비의 경영 방식은 시대의 뒤떨어진 구태가 되고 말았다.

#MICE 산업화

3세 경영으로 바뀐 토트넘. 그들은 공식 발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클럽 안팎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최근 몇 달간 미래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CEO 비나이와 그의 경영진을 중심으로 클럽의 재능 있는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안정과 성장을 이끌어갈 것이다.'

안정과 성장.

토트넘에게 안정은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루이스 가문의 지분일 것이다. 이들의 지분을 공고히 하면서 팀을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성장은 꾸준히 우승권, 혹은 적어도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유지하면서 이를 통해 클럽의 매출을 늘리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외부 경쟁 환경은 너무나 치열하다. 더욱이 프리미어리그는 더욱 그렇다. 토트넘도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동시에 리그에서는 강등을 겨우 면한 17위에 그쳤다.

일단 토트넘의 오너십 그룹은 토트넘을 전문 경영자 중심 체제로 바꿨다. 피터 차링턴을 비상임 회장으로 내세웠다. 영국 금융계에서, 더욱이 자산가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쪽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차링턴 비상임 회장을 통해 루이스 일가의 입김을 더욱 불어넣겠다는 의지이다.

동시에 아스널에서 데려온 비나이 벤카테샴을 CEO로 내세웠다. 아스널에서 14년을 근무한 벤카테샴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는 아스널의 CEO로 활약했다. 그는 CEO로서 아스널의 매출을 3억 4000만 파운드에서 6억 1000만 파운드로 2배 가까이 증대시켰다. 토트넘에서도 이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안정과 성장의 기반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다. 결국 다니엘 레비의 유산을 가지고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이 구장을 중심으로 한 MICE 산업화다.

최근 잉글랜드 축구계에서는 클럽과 부동산 개발을 연계하고자 한다. 특히 미국 자본들이 들어오면서 이같은 흐름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토트넘도 마찬가지이다. 루이스 가문 3세들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미국과의 접점도 많다. 때문에 미국 자본들이 추구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 위치한 헤링게이 구 역시 도심 재생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빅토리아 라인 토트넘 헤일역 근처는 이미 새로운 아파트 단지들이 조성되고 있다. 도심 재생 사업의 여파는 계속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토트넘 역시 구장 옆에 대형 호텔을 짓고 상업 시설을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종의 MICE 산업(Meetings, Incentives, Conventions, Exhibitions/Events 의 약자로 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를 아우르는 융합 산업)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것이다.

다니엘 레비의 퇴장 그리고 새로운 시대 흐름으로의 전환. 과연 토트넘의 세대 교체는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