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모두 호동..지금 우리가 지난 60년 역사의 현재 모습"
10월 27~28일 해오름극장
안무가 정소연·송지영·송설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와 첫 작업
호동과 낙랑의 영웅, 사랑서사 아닌
집단 안의 개인의 이야기로 재해석
"60년 역사의 국립무용단의 현재"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쿵쿵, 탁, 틱’. 재난 경보처럼 습격해온 낯선 박자의 전자음악에 마흔 네 명의 무용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2022 무용극 호동’ 1장 ‘나’. 무대를 전장처럼 누비며 스스로 칼이 되고, 북이 되는 격렬한 몸짓이 이어진다.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한 인간의 고통은 뼛속 깊이 응축된 한국춤의 기운으로 채워진다. 느릿한 곡선의 미학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직선의 춤으로 치환한다. 무대는 익숙함 안에서 낯설고 새로운 것을 찾아간다.
국립무용단의 초대 단장을 지낸 故 송범의 ‘왕자 호동’(1974)이 다시 태어났다. ‘왕자 호동’과 ‘그 하늘 그 북소리’(1990)를 오마주한 ‘2022 무용극 호동’(10월 27~29일, 국립극장 해오름)을 통해서다. 이 작품은 ‘국립무용단의 오늘’을 담아낸 그릇이자, 창단 60주년의 야심작이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호동’의 안무가 정소연·송지영·송설은 “과거의 ‘호동’을 지금 시점에 맞게 재해석했다”고 말했다.
동시대성을 가진 ‘새로운 호동’을 만드는 과정이 결코 쉽지 만은 않았다. 외형은 물론 이야기의 주제와 관점도 새롭게 바라봤다. 국립무용단의 간판 무용수인 세 안무가는 오랜 시간 몸담은 무용단의 유산을 ‘오늘의 이야기’로 꺼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부담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잠을 못 자고 있다”(송설)고 한다.
“처음엔 ‘세련된 무용극’이 되리라”(송설) 예상했지만, 뚜껑을 열자 방향성은 완전히 달랐다. 작품은 뮤지컬 ‘광화문 연가’ ‘서편제’의 이지나 연출가가 함께 한다. 음악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OST로도 유명한 이셋(김성수) 감독이 맡았다.
“과거의 무용극을 가지고 올 때, 그것을 그대로 올린다는 것은 회의적이었어요. 좀 다르게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영웅 호동이 아닌 내면에 집중해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개인의 이야기로 가져오고자 했어요.” (정소연)
2022년 버전의 ‘호동’은 적국인 고구려의 왕자 호동과 사랑에 빠져 고국을 저버리고 자명고를 찢은 낙랑 공주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호동의 영웅 서사도, 낙랑과의 사랑 이야기도 아니다.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 휘말려 희생 당하는 운명에 대립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송설은 “왕자 호동이 아닌, 집단·사회 안에서 억눌리고 소외되는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우리의 핵심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며 돌아보게 된 국가와 개인의 관계도 작품에 반영됐다. 그는 “집단, 사회 안에서 누구나 살면서 겪어온 이야기로, 우리 개개인이 모두 호동일 수 있다. 때때로 호동이 가엾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설화의 중요한 장치인 자명고 역시 ‘하나의 시그널’로 자리한다. 정소연은 “개인과 국가의 이념, 나와 너 사이의 대립에서 나를 희생할 때 내면에 닥쳐오는 위험 신호로 자명고를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개인과 국가의 세계관이 충돌할 때 상처 입고 찢겨지는 호동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치가 자명고다.
뮤지컬 연출가와의 협업은 국립무용단 단원들에겐 완전히 낯선 세계다. 이전엔 단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실험이 이어졌다. 뮤지컬이라는 ‘서사의 세계’에서, ‘몸짓 언어’로 만들어진 ‘추상의 세계’로 건너온 이지나 연출가는 ‘무용극 호동’에 내러티브를 쌓았다. 추상적인 무용에 서사를 입히고, ‘사실적 묘사’를 위한 장치를 곳곳에 숨겼다. 배우 지현준이 대무신왕으로 내레이션을 시도하고, LED 화면에 자막이 들어와 작품을 해석한다. 이 역시 전에 없는 시도다. 상징이 많은 무용에 “맥락을 짚어주는 작업”(송설)이다.
“처음 대본을 구성하는 과정부터 염두하고 만들었어요. 극 안의 핵심적인 갈등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이해가 수월해지지 않을까 염두하고 만들게 됐어요.” (정소연)
무용수들에겐 ‘연기’도 요구됐다. “움직임이 들어가지 않은 연기”(송설)다. 다른 무용극에선 볼 수 없는 특이점이다. 송지영은 “무용수가 무대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연기는 정말 큰 시도”라고 했다.
“사실 무용수들은 뭘 해도 각도를 생각하고 춤을 추려고 해요. 무용수들에겐 가만히 있는게 제일 힘든데, 춤을 추지 말라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그 부분에서 고름을 짜내고 있어요.” (송설)

영웅 호동이 아닌 한 인간 호동의 이야기를 올리는 무대는 간소하다. 무대엔 그 어떤 소품도 없다. 전쟁 중에 써야할 무기도 없다. 오로지 무용수들의 몸이 모든 것을 표현한다. “무용수들이 가지고 있는 몸의 상상력으로 그 이상의 것을 표현하고 있어요.” (정소연)
의상도 ‘미니멀리즘의 극대화’다. 한국무용이 주전공인 무용수들은 난생 처음 레깅스와 배꼽티를 입고 무대에 선다. 송지영은 “파격이 많은 작품이라 걱정이 되면서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소연은 “캐릭터가 담긴 의상을 입으면 캐릭터 안에 갇힐 수 있다. 그것을 벗어나니 각자 주어진 음직임과 상황, 극에 따라 표현이 증폭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더더기 없는 무대인 만큼 무용수들의 춤은 더 중요해졌다. 정소연은 “이야기의 존재 유무를 떠나 하나의 몸 언어를 찾는 과정에선 작품의 주제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같은 고민을 계속 하게 된다”고 말했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장별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맞서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군무다.
“무용수들의 어울림과 흐름이 굉장히 독특해요. 어떤 장면은 부드럽게 흘러가는데 힘이 있고, 어떤 장면은 칼로 자른 듯 하고, 또 어떤 장면은 강한 데도 잔잔해요. 무용수들의 여러 동작이 모여 어떤 식으로 물결을 만들어내는지 무대 위 흐름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정소연)
‘2022 무용극 호동’은 지난 60년간 이어온 국립무용단의 역사와 그 역사를 이어받은 지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입단 연차로 치면 도합 46년(정소연 2001년 입단, 송지영 2011년 입단, 송설 2011년 입단). 이들이 바라보는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은 “한국춤에 뿌리를 둔 무용수들이 끊임없이 새로움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곳이라는 데에 있다. 동시대 춤으로 진화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근간을 지키는 것이 국립무용단의 가장 큰 힘이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해진 시간을 넘어 연습실 ‘지박령’이 되는 무용수들의 역량은 무대로 입증된다. “지난 60년을 이어온 선생님, 선배들의 발자취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송지영), “단원들의 주인의식과 책임감”(정소연)을 무대로 끌어낸다.
“국립무용단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호동임에는 분명한 것 같아요. 그 마음이 몸의 전달력과 발산하는 에너지, 군무의 힘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호동’ 안에 국립무용단의 힘이 드러날 거예요.” (정소연, 송설)
“지금 이렇게 춤추고 있는 이 댄서들이 지난 60년 역사의 현재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송지영)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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