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포효의 공존,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4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4에서 최신형 스포츠카 기술의 극과 극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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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포르쉐 마니아에게 가을은 PWRS의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쉐 월드 로드쇼(PWRS)는 독일 포르쉐 본사에서 주관하고 포르쉐 코리아가 진행하는 전문화된 트랙 이벤트다. 독일에서 공수한 최신형 포르쉐 20여 대와 고성능 미쉐린 타이어 수백 개, 그리고 포르쉐 공식 인스트럭터 5명을 통해 전문화된 트랙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PWRS는 포르쉐에게는 자신들의 스포츠카 성능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참가 고객은 일반 도로에서 한계까지 경험하기 어려운 포르쉐의 주행 성능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국에서는 지난 15년간, 거의 2년마다 진행되는 비슷한 방식의 프로그램임에도 최신형 포르쉐를 빠르게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년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특히 올해는 타이칸 페이스리프트와 2세대 신형 마칸 같은 최신형 모델들을 중심으로 한국에 정식으로 출시하지 않는 911 GT3 RS, GT4 RS, 718 스파이더 RS 같은 특별 모델이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PWRS는 한 팀에 약 6~8명씩, 4개의 조를 나눠 진행된다. 내가 속한 블루 그룹은 작년과 올 초 한국 시장에 출시해서 관심을 끌었던 카이엔과 파나메라로 구성된 4도어 모델들을 타보는 것을 시작으로 올 일렉트릭(EV)과 2도어 스포츠카 그룹 순으로 트랙 주행을 진행했다. 그 외에도 오후에는 짐카나(슬라럼)와 정지가속 및 제동, 데모 랩을 경험했다. 4도어 핸들링 세션에는 카이엔 GTS, 터보 E-하이브리드와 카이엔 쿠페 GT 패키지를 비롯해 파나메라 4를 순서대로 돌아가며 운전했다. 가장 궁금했던 모델은 카이엔 GT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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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엔 GTS
510마력을 발휘하는 V8 4.0L 트윈 터보 엔진은 8단 팁트로닉 S 변속기와 조화를 이룬다. GTS라는 배지에서 알 수 있듯이 스포티한 감각과 성능에 무게를 둔 모델이다. 무게가 2,300kg에 달하는 육중한 SUV가 코너 입구를 빠르게 파고들 때 탄성이 절로 난다. SUV 특유의 보디 롤을 억제하고 언제든지 앞머리가 민첩하게 코너 탈출구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최신의 토크 백터링은 네 바퀴의 접지력을 섬세하게 조절해서 타이어의 미끄러짐을 최소화했다. 분명 2도어 스포츠카들처럼 아주 흥분되는 운전 감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주행 속도는 엄청나고 빨랐고 동시에 트랙을 편하게 운전하며 공략할 수 있었다.
올 일렉트릭(EV) 핸들링 세션은 부분 변경으로 진화한 신형 타이칸 터보와 2세대 마칸 일렉트릭으로 라인업이 구성됐다. 신형 타이칸은 이전보다 더 높아진 출력으로 한층 빠르고 동시에 안정적인 코너링 감각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타이칸 터보의 경우 최고 출력 884마력(650kW)을 바탕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2.7초가 걸린다. 반면 높아진 출력에 맞춰 조율된 섀시와 서스펜션 시스템으로 이전 타이칸과 비교해도 훨씬 안정적인 느낌이다. 실제로 빠르게 트랙을 달릴 때도 훨씬 쉽게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핸들링 섹션에 투입된 타이칸 터보 중 한 대가 포르쉐 액티브 라이드 서스펜션을 달고 있어서 비교도 가능했다. 포르쉐 액티브 라이드 서스펜션은 차체의 코너링이나 가속 및 감속 등 역동적인 움직임에도 차체를 수평으로 유지해 주는 기능이다. 부드러운 승차감과 함께 탑승자에게 가해지는 불쾌한 흔들림을 억제하는 것이 장점이다. 이 기능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운전 감각은 약간 이질적이지만, 빠른 코너링이나 급 제동시 탑승자가 훨씬 편하게 차의 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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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칸 일렉트릭
2세대로 진화한 마칸 일렉트릭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PPE)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가 됐다. 게다가 트랙에서 직접 운전해 보는 것은 한국에서는 처음이라 그만큼 기대가 컸다. 가속은 타이칸처럼 가상의 전동 사운드가 스피커를 통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코너의 입구를 전속력으로 들어갈 때 마칸 일렉트릭은 예상보다 안정감 있게 반응했다. 무게 중심을 밑으로 둔 상태에서 앞뒤 타이어가 진득하게 노면을 잡았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원하는 라인으로 파고들며 앞머리 방향을 유지했다. 그 느낌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좋았다. 약간 키가 높은 스포츠카의 코너링 감각. 급하게 회전하는 헤어핀 코너에서도 전자제어 장비가 허둥대지 않고 부드럽게 차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그 어떤 포르쉐 스포츠카보다 운전자에게 자신감을 줬다. 감성적이라기보다는 똑똑하고 유머가 가득한 느낌이었다.
이후 급가속 및 제동 세션에서 신형 타이칸 터보 S 크로스투리스모를 운전해봤다. 이 차는 제원상 0→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2.4초가 소요된다. 정지된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갑자기 100% 밟으면 순간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점프해서 100여 미터 앞에 있던 러버콘을 통과한다. 이때의 느낌은 롤러코스터처럼 공포에 휩싸이는 게 아니라 예상보다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타이어가 거의 미끄러지지 않고 짧은 순간 모든 접지력을 완벽하게 살린다. 그리고 차체에 흔들림 없이 곧바로 목표까지 직진시킨다.
시속 120km에 가까운 상태에서 급제동을 요구하면 포르쉐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PCCB)가 2톤이 넘는 차체를 강하게 정지시킨다. 자세제어 장치와 서스펜션이 조화를 이뤄 차체를 지면으로 밀착시키면서 타이어가 순식간에 멈춰 선다. 이 모든 일이 불과 5~6초 만에 벌어진다. 이처럼 신형 타이칸은 하이퍼카같은 성능을 내면서도 누구나 다루기 쉽고 안정적인 성능을 확보한다. 오후 서킷 주행에서는 911 GTS, 911 터보를 비롯해 트랙 주행을 목표로 만들어진 911 GT3 RS와 718 카이맨 GT4 RS를 운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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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 카이맨 GT4 RS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을 운전석 바로 뒤, 미드 엔진으로 달고 뒷바퀴굴림으로 굴린다. 심지어 엔진 커버를 최소화하고 흡기 구멍을 뒤쪽 작은 창문으로 직접 연결해서 운전자 쪽으로 찢어질 듯한 엔진 사운드를 쏟아낸다. 718 카이맨 GT4의 운전석은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감각으로 가득하다. 4.0L 자연흡기 엔진은 최대 9,000rpm까지 회전하며 500마력을 뒷바퀴로 쏟아냈다. 콤팩트한 차체는 운전자의 미세한 조작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똑똑한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아주 잠깐의 틈도 놓치지 않고 출력을 타이어로 전달했다. 앞머리가 약간 가볍다는 인상을 제외하면 흠잡을 곳이 없는 운전 재미와 균형. 아니, 21세기 전동화 시대에 반항하는 악동 같은 차다. 이 차는 운전 재미를 추구하는 관점에서는 걸작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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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GT3 RS
GT3 RS는 가벼운 운전 재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실제 레이스카만큼이나 진지한 주행 성능을 추구한다. 앞 프렁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종 쿨링 시스템이 들어찼고, 운전석 뒤 공간은 롤케이지가 자리한다. 거대한 스완넥 스타일 리어스포일러는 보기에도 압도적이다. F1 경주차처럼 리어윙 플립 각도를 운전자가 원할 때 변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DRS)을 달아서 최대 가속력과 코너링 다운포스 모두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 차의 모든 움직임은 과할 만큼 결과가 선명하다. 날카롭게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게 나뉜다. 997 시리즈부터 모든 GT3 RS를 경험해봤지만, 이렇게나 본격 레이스카처럼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이전 모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진 성능이다. 4.0L 자연흡기 엔진은 최대 9,000rpm까지 회전하며 525마력을 발휘한다. 사실 이 차의 진짜 성능은 이런 트랙데이 이벤트에서는 완전히 경험할 수 없다.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지만 다른 2도어 스포츠카들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여유가 있었다. 실제 차의 성능에 70%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가속하고 제동하고 코너를 회전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은 깊이가 있었다. 너무 높은 수준이라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슬라럼 섹션에서는 718 스파이더 RS를 타고 정해진 코스를 최대한 빠르게 달리는 경험을 했다. 스파이더의 최대 장점인 수동 접이식 소프트톱을 열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쉽다. 하지만 GT4 RS와 다르게 얇은 소프트탑 너머로 들리는 황홀한 엔진 사운드와 날카로운 핸들링은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PWRS의 마지막 순서는 언제나 데모 랩이다(택시 드라이빙). 5명의 포르쉐 공식 인스트럭터가 전속력으로 운전하는 포르쉐에 동승할 수 있다. 911 GT3 RS와 GT4 RS, 파나메라와 타이칸 터보가 등장해 각 차의 한계 주행 영역을 선보였다.
내가 탔던 911 GTR RS의 독일 인스트럭터는 초반부터 타이어의 접지력을 최대로 살려서 엄청나게 빠르게 코너를 달렸다. 그리고 피트로 들어오기 전 마지막 3개 코너를 드리프트로 공략했다. 뛰어난 섀시로 엄청난 타이어 접지력을 가진 GT3 RS의 뒷 타이어를 미끄러뜨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과격한 모션으로 차를 흔들었다. 그리고 드리프트를 시작하자 2단과 3단에서 엔진을 9000rpm까지 사용하며 코너 끝까지 타이어 밀어붙이며 나갔다. 엔진이 포효하고 세상이 옆으로 빠르게 흘러갈 때, 전율이 느껴졌다. 그동안 수십 대의 포르쉐를 경험했어도 여전히 가슴이 떨리는 순간을 포르쉐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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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포르쉐는 포르쉐라는 카테고리에 있다. 전자제어와 전동화로 자동차가 컴퓨터로 변하는 요즘 시대에도 포르쉐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감각적인 자동차를 만든다. 한쪽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효율적인 순수 전기차를 완성하고, 또 한쪽에서는 더 거칠고 순수한 내연기관 레이스카 DNA를 발전시킨다. 극과 극 모두를 만족시키는 스포츠카 경험. 포르쉐이기에 가능하다.
글 김태영(모터 저널리스트)
사진 포르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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