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테시마 미술관, 아무 작품 없는 미술관도 미술관일까?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나오시마, 테시마, 이누지마 섬 미술관
바다에 떠내려온 나무, 컵을 작품으로
세계적 설치미술작가 야니스 쿠넬리스
문닫은 구리제련소를 그대로 미술관
텅빈 채 자연 그대로 담은 '테시마 미술관'

일본 세토 내해에 있는 섬들. 나오시마 섬은 왼쪽 아래에, 테시마 섬은 중간에, 이누지마 섬은 오른쪽 상단에 있다. 출처= 구글지도

나오시마의 베네세하우스 미술관

앞선 글(일본 지추미술관,자연과 예술, 인간이 하나로) 에서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성공한 이유 두 가지를 살펴보았는데요. 그 프로젝트가 성공한 세번째 이유는 나오시마를 비롯, 그 주변의 이누지마, 테시마와 같은 그 지역의 섬에 가야만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작품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나오시마에 있는 베네세하우스 미술관에는 지역특정적 작품이 많았는데요. 이 작품들은 작가들이 직접 나오시마를 방문해 그 지역의 문제, 생활사와 관련된 오브제들을 활용해 제작한 겁니다. 예술이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나오고 삶 옆에, 삶과 함께 나아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작품들인 셈입니다.

야니스 쿠넬리스의 '무제'(1996). 바다에 떠내려온 나무나 컵 등을 납으로 말아서 제작했다. 사진=정연복

무엇보다 지금은 타계한 세계적 설치미술작가 야니스 쿠넬리스의 <무제>(1996)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다에 떠내려온 나무나 컵 등을 납으로 말아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쿠넬리스가 나오시마에서 직접 제작한 작품이죠.

납 사이사이에 나무토막, 그릇, 천 등이 들어있고 이들이 단 하나도 같지 않은 모양과 색깔로 무수히 모여 있어요.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나오시마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리차드 롱의 <세토내해로 떠내려온 나무로 만든 원>(1997) <에이븐 강 진흙으로 그린 원>(1997), 브루스 나이먼의 <100개의 삶과 죽음>(1984) 등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이누지마섬의 세이렌쇼 미술관

두번째는 나오시마에서 배 편으로 55분 가는 거리에 있는 이누지마섬에서 본 작품들인데요. 배에서 내리면 우선 구리제련소였던 세이렌쇼가 보입니다. 처음에 세이렌쇼라 말하기에 오딧세우스를 유혹하던 그 세이렌인가… 세이렌이 쇼를 보여주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세이렌쇼는 제련소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바다를 굽어보는 낮은 언덕에 위치한 쇠락한 공장은 인간의 노동과 역사, 시간의 흐름 등을 느끼게 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이누지마 섬의 세이렌쇼 미술관. 1909년 구리 제련소로 세워졌지만 구리 산업의 쇠락으로 10년만에 공장이 문을 닫아 90년 가까이 방치되어 있었다. 야나기는 1995년 처음 이누지마에서 이 공장을 보자마자 아이디어가 샘솟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다가 공장이 남긴 폐기물들로 미술관이 세워졌다. 사진=정연복

오래된 구리 제련소의 내부에는 야나기 유키노리가 만든 <히어로 건전지/이카로스 셀>(2008)이 설치되어 있는데요. 이곳은 낡은 폐허가 된 공장이 놀라운 현대미술작품으로 변신하는 뛰어난 예를 몸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긴 복도의 벽은 제련소의 폐기물로 만든 벽돌로 이루어져 있고, 공기의 흐름이나 냉난방은 완벽하게 자연 에너지로 이루어집니다.

인공 조명도 없습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복도의 끝에 있는 빛이 우리를 이끕니다. 빛을 따라 가면 유리가 45도로 비스듬하게 서있고 꺾어진 복도를 따라가면 역시 다른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누운 유리가 또 빛을 반사하고 있죠. 이렇게 여러 번 꺾어서 가다 보면 결국 빛의 진원지는 단 한 곳, 하늘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 차례 사선으로 꺾어진 복도를 따라가면 작은 하늘을 만난다. 이곳이 80m 길이의 복도에 빛을 밝히는 진원지다. 사진=정연복

이카로스가 '태양 가까이 가지 마라'는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하늘높이 날아오르듯 우리 역시 빛을 좇아 나아가니 한 줌 하늘에 가닿도록 하는 여정을 작가가 마련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리제련소에서 일했을 섬사람들을 생각하고 한국과 일본의 지난한 역사를 생각하고, 모든 인간의 시간을 생각하고, 신화를 생각하며 하늘을 보고 땅으로 다시 귀환하는 여정을 밟았습니다.

이누지마 섬에 있는 '이에 프로젝트' 중 야나기 유키노리의 '거미 그물의 뜰'(2010).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 한가운데에 투명한 벽이 세워져 있다. 산책을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빨래를 널기도 하는 주민들의 모습과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모두 작품이 되는 곳이다. 삶과 예술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사진=정연복

이누지마 섬에서는 민가 주변에 예술작품을 설치한 '이에 프로젝트'를 둘러볼 수 있는데요. ‘이에’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야나기 유키노리의 <거미 그물의 뜰>(2010), 나와 코헤이의 <카오스>, <비오타(Fauna/Flora)(2013)가 흥미로웠습니다.

테시마 섬의 테시마 미술관

세번째는 나오시마에서 배로 22분 걸리는 테시마 섬에서 방문한 테시마 미술관인데요.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가야 합니다. 버스 정류장은 미술관 바로 앞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언덕길을 걸어내려와야 하는데요. 천천히 내려오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세토 내해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듭니다. 세토 내해를 보고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낮은 비행선 같은 하얀 건물이 두 개 보이는데요. 큰 건물이 테시마 미술관이고 왼쪽에 있는 작은 건물은 카페이자 샵입니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미술관 입구인데 왼쪽으로 난 길을 한 바퀴 휘 돌도록 해 놓았어요. 일상에서 익숙한 바쁜 호흡과 걸음에 ‘쉼’을 주라는 뜻이라 이해되었습니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숲길을 걸으며 다시 한번 더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렇게 긴 길은 아닌데 그 길을 걷는 동안 마음이 많이 차분해집니다.

미술관 입구에 도착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순간,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마치 마법의 공간, 혹은 이 세상 아닌 우주 혹은 문명과 원시, 자연과 인간의 구별조차 무의미한 태초의 공간에 들어간 느낌이 온 몸을 감쌉니다. 40x60m의 거대한 하얀 공간에 사람들이 고요히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있습니다.

테시마 미술관. 출처=Benesse-Art Site Naoshima

아무 작품 없는 미술관도 미술관일까

의문이 듭니다. 이곳을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흔히 미술관이라고 하면 컬렉터가 모은 작품이 걸려있는데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요. 관람자에게 뭔가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요. 그냥 내버려둡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작품은 없습니다. 관람자는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오롯이 공간과 자연에 잠기기만 하면 됩니다.

가만히 앉아봅니다. 바닥에는 작은 구멍들이 있어서 일정한 간격으로 물방울이 나옵니다. 모든 물방울은 다 달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도 하고 또르르 굴러가기도 합니다. 굴러간 물방울은 다른 물방울과 만나 조금 더 큰 덩어리를 이루기도 해서 꽤 큰 물이 고여있는 곳도 있어요. 개구부 근처에 앉아있으니 하늘이 가득 눈에 들어옵니다.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소리,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으니 여기가 지금 어디이고 언제인가 아득해집니다.

테시마 미술관은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와 아티스트 '나이토 레이'가 공동으로 작업한 공간입니다. 로마에 있는 판테온처럼 개구부가 뚫려있으니 비, 바람, 벌레가 안으로 다 들어오죠. 바닥의 물 역시 매순간 생성해서 흘러가니 단 한 순간도 정지하지 않고 변하는 생명을 닮았습니다. 자연과 생명의 신비, 잔혹함, 아름다움은 분명 우리 주변에 늘 상존하는 것인데 큰(혹은 작은) 공간을 만들어놓으니 강렬하게 느끼게 됩니다. 테시마 미술관은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개념을 그대로 구현해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섬으로 거듭난 나오시마는 좋은 기획의 뛰어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혜의 자연을 활용해 풍광을 해치지 않는 건축물을 짓고,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지역특정적 예술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지역 공동체와 자연, 현대 미술을 살린 겁니다.


※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