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권익위, 1인당 年 ‘600건’ 행정심판 처리…‘악성 민원’에 처리기간 넘긴 민원도 폭증
청구인 1명이 욕설 민원 ‘1만 건’ 보냈다…서류 폭탄 첨부로 ‘서버 장애’도 발생
행정력 소모에 권익위 내부도 ‘불만’ 폭주…“정작 시급한 민원은 보지도 못해”
김상훈 의원 “행정심판 청구권 남용 대책 필요…악성 청구인 과태료 부과 방안도”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국민 권익을 구제해주는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 직원들이 지난해 1인당 '600건' 이상의 민원을 처리하는 등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일부 청구인들의 '가짜‧악성' 민원 폭탄이 폭증하면서 정작 시급한 민원은 60일 내에 처리되지 못한 채 '8000건' 넘게 쌓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문제가 행정력 소모와 혈세 낭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악성 청구인들의 '행정심판 청구권 남용'을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심판은 국민이 행정기관의 위법·부당한 처분으로 권익을 침해받았을 때 청구하는 권익 구제 수단이다. 무료로 권익 구제가 가능하고 행정심판이 인용되면 행정청이 불복하지 못해 청구인인 국민에 유리한 제도다. 특히 권익위에서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행정심판 청구 시스템은 청구인의 절차적 권리와 편리성 보장은 물론, 권익위 직원들의 행정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지난 2010년 처음 도입됐다.
국민들도 온라인 행정심판 청구 시스템을 활발히 이용하고 있는 추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권익위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행정심판 접수‧의결 현황' 자료에 따르면, 행정심판 접수 건수는 2021년 1만9229건, 2022년 2만1467건, 2023년 3만896건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2년 새 60%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반면 행정심판 시스템에 접수된 건들 중 인용된 건수는 2021년 1710건에서 2022년 1468건, 2023년 1247건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인용률(인용건수/인용건수+기각건수)도 2021년 10.3%를 기록한 후 2022년 8.6%, 2023년 7.2%까지 떨어졌다. 나머지 건들은 대부분 청구 사유가 불충분하거나 가짜‧악성 민원으로 판단돼 기각‧각하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권익위는 일부 악성 청구인들을 최근 형사 고소하기도 했다. 한 악성 청구인 A씨는 민원 창구인 '온라인 행정심판 청구' 시스템을 통해 욕설로 가득한 '악성 민원'을 최근 5년간 '1만3145건'이나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행정심판 결과를 통지받는 과정에서도 우편 받기를 선택한 후 악의적으로 수취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등기우편료와 반송료만 7200만원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역시 악성 청구인으로 분류되는 B씨와 C씨도 각각 298건과 529건에 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해당 건들은 불특정 내용으로 판단돼 전부 각하 처리됐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각각 '15만 건'(용량 255GB 규모)과 '25만 건'(용량 356GB 규모)에 달하는 증거서류를 첨부파일로 업로드 했다. 해당 파일들이 행정심판 전체 서버 용량의 94%를 차지하면서 서버 장애가 발생해, 권익위는 4000만원의 서버 증설 비용도 부득이 지출해야 했다.
이처럼 가짜‧악성 민원을 포함한 행정심판 청구 건수가 늘어나면서 권익위 직원들의 행정 업무량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권익위 행정심판 조사관 1인당 맡아야 하는 연평균 처리건수는 2021년 429건, 2022년 481건, 2023년 620건을 기록했다. 직원들의 업무 과중으로 처리기간(60일)을 경과한 청구 건수도 2021년 5846건, 2022년 7589건, 2023년 8271건으로 자연스레 늘어나고 있다. 오히려 권익 구제가 시급한 민원인들의 행정심판 처리는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권익위 내부에서도 최근 폭증한 가짜‧악성 민원으로 불만이 폭주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 권익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일부 민원의 경우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나 비방이 적혀있어 심적 스트레스도 심하다. 또 악성 민원을 청구한 후 기피, 심리기일 연기, 행정심판위원 정보공개 청구 등 각종 신청서를 반복 제출하는 등 의도적으로 행정력을 낭비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정작 시급한 민원은 보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권익위에서 추진 중인 '원스톱 행정심판 시스템' 역시 악용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근 권익위는 국민들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행정심판 서비스 이용을 위해, 현행 120여개로 나뉘어져 있는 행정심판 업무 수행 기관들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또 각 기관마다 별개로 있는 행정심판 온라인 시스템의 통합도 함께 구상하고 있다. 이 경우 권익구제의 신속성이 높아지는 만큼 청구권 남용이나 제도 악용 사례도 급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도 가짜‧악성 민원에 대한 구체적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훈 의원은 시사저널에 "행정심판 청구권의 남용을 막으면서 선량한 국민들이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방지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며 "행정심판을 특정 기준치 이상으로 다량 청구하는 경우는 접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이나, 악성 청구인을 대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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