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체육관에서 열린 한국도로공사와 현대건설의 맞대결은 점수판보다 내용이 더 선명하게 남은 경기였다. 1위와 2위가 맞붙은 빅매치였지만, 경기 흐름은 의외로 일방적이었다. 세트스코어 3-0. 숫자만 보면 완승이지만, 그 안에는 선두 팀이 왜 선두인지, 그리고 추격자가 왜 한 발 멀어질 수밖에 없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경기의 중심에는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김종민 감독의 한마디가 있었다. “이 정도 해주면 몰빵을 해도 된다.” 감독 입에서 ‘몰빵’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건 흔치 않다. 공격 패턴이 읽히고, 의존도가 높아지며, 결국 막히는 순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모마는 3세트 만에 33점을 쓸어 담았고, 공격 성공률은 55%를 넘겼다. 단순히 많이 때린 것이 아니라, 맞을 수밖에 없는 공을 골라 때렸고, 상대 블로킹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날 도로공사는 직전 경기에서 최하위 정관장에게 0-3으로 패하며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김종민 감독 역시 새해 첫날 좋지 않았던 경기의 여파를 우려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5일간의 휴식은 팀의 표정을 바꿔 놓았다. 무엇보다 수비 집중력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리시브가 완벽하지 않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한 번 더 버티며 공격 기회를 이어갔다. 홈 김천체육관에서 도로공사가 유독 강한 이유가 다시 한 번 드러난 순간이었다. 수비가 버티자 공격은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그 중심에 모마가 있었다.
모마의 활약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파워보다 선택이었다. 경기 초반에는 블로킹을 피해 각도를 틀어 때리다 범실이 나왔지만, 곧바로 방향을 바꿨다. 김종민 감독의 주문처럼 타점을 안정적으로 잡고 길게 때리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힘을 줄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대 블로킹의 손 위치를 읽고, 낮은 손을 이용해 터치아웃을 만들거나 리바운드를 유도하는, 한 수 위의 공격이었다. 그래서 블로킹에 막히지 않았고, 범실도 줄었다. 이 과정에서 도로공사의 공격은 단조로워지지 않았고, ‘몰빵’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가장 효율적인 선택처럼 보이게 됐다.

반면 현대건설은 좀처럼 반전을 만들지 못했다. 강성형 감독이 “할 말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내용이 좋지 않았다. 리시브 라인이 무너졌고, 세터 김다인은 선택지를 잃었다. 공격은 높아지고 예측 가능해졌으며, 도로공사의 블로킹은 한 발씩 앞서 움직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모마의 공격은 더 위력을 발휘했다. 한 번 타이밍을 빼앗긴 블로킹은 점점 낮아졌고, 그 틈은 모마에게 그대로 열렸다. 현대건설 입장에서는 더 뼈아픈 장면도 있었다. 양효진이 통산 1700블로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팀 패배로 인해 빛이 바랬다. 기록은 남았지만, 경기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이 승리로 도로공사는 승점 43점을 쌓으며 2위 현대건설과의 격차를 5점으로 벌렸다. 순위표만 놓고 보면 꽤 안정적인 선두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종민 감독의 말 속에는 이미 다음을 향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모마가 이렇게 해주는 날은 분명히 팀에 큰 힘이 된다. 그러나 시즌이 길어질수록 상대는 모마를 더 철저히 준비해 나올 것이다. 결국 도로공사가 정상까지 가기 위해서는 모마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구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강소휘를 비롯한 레프트 공격, 그리고 세터 이윤정의 과감한 분배가 더해질 때, 모마의 ‘몰빵’은 위기가 아니라 선택지가 된다.

이날 경기는 선두 팀이 왜 강한지를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다. 수비로 버티고, 중앙이 중심을 잡아주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에이스가 책임진다. 여기에 감독의 냉정한 판단이 더해진다. “몰빵을 해도 된다”는 말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지금 이 팀이 얼마나 안정적인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같은 발언이었다. 다만 진짜 강팀은 몰빵을 해도 이기는 팀이 아니라, 몰빵을 하지 않아도 이기는 팀이다. 김천에서의 이 완승은 도로공사가 그 단계로 가기 직전임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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