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840억여원을 받고 사모펀드에 넘기려는 금융·보안 솔루션 계열사 이니텍이 1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려는 지분의 양과 이니텍의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몸값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새 주인이 단숨에 기업 지배권을 확보하는 만큼 인수에 들인 자금보다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되는 구조다.
더욱이 미래 먹거리에 투자하기 위해 대량의 실탄을 확보해야 하는 KT의 사정까지 염두에 두면, 현금 보따리인 계열사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건 다소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T의 종속기업인 이니텍이 공시를 통해 지분 매각을 공식화한 건 올해 1월 22일이다. 이니텍의 최대주주인 KT DS와 특별관계자 HNC네트워크가 각각 30%와 27%씩 보유하고 있는 지분 총 57%를 모두 팔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책정된 가격은 850억원이었다. 벤처캐피털 로이투자파트너스와 사모펀드운용사(PEF) 사이몬제이앤컴퍼니가 이 가격에 지분을 사들이기로 하면서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난 2월 28일에 최종 양수도 금액이 841억4500만원으로 정해졌다. 그사이 또 다른 PEF인 서울프라이빗에쿼티와 유니베스트투자자문이 자금조달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백기사로 등장했지만, 현재는 로이·사이몬 측과 갈등을 벌이고 있어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관건은 역시 몸값이다. 이니텍 주식의 시장 가격대로만 따지면 매각가는 언뜻 비싸지 않게 여겨질 수 있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해 있는 이니텍의 전날 종가 기준 시총은 1465억원이다. 이를 토대로 KT DS와 HNC네트워크가 정리하려는 지분 가치를 계산해 보면 약 835억원이다. 여기에 절반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확실히 경영권을 쥘 수 있다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거래가 공개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니텍 주가가 지금보다 크게 낮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매수자 측이 비싼 값을 치른 것 아니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매각 공시가 나오기 바로 전날인 1월 22일 종가 기준 이니텍의 시총은 765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이때만 해도 절반가량의 지분을 사기 위해 해당 기업 시총을 웃도는 돈을 내기로 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 측이 제값을 받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이니텍이 1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쥐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미래에 가져다줄 수 있는 이익을 아예 배제한 채 당장 눈앞에 있는 자산만 갖고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200억원가량 손해를 보는 장사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니텍이 올해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 중 750억원은 금융기관에 맡겨 둔 예치금이다. 또 161억원은 은행 보통예금에 들어 있다. 이밖에 101억원은 NH투자증권의 파생결합증권(DLS)으로 운용 중이다. DLS는 이자율이나 환율, 실물자산 등 기초자산과 연계돼 수익률이 결정되는 투자 상품이다.
이렇게 사실상 현금으로 볼 수 있는 자산만 1012억원에 이른다. 이니텍의 총자산인 1184억원 대비 85.5%에 달하는 액수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자산 대부분을 빠르게 현금화해 빼낼 수 있다는 뜻이다.
PEF 역시 이에 주목해 선뜻 거금을 베팅할 수 있었을 거란 해석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가시적인 투자 성과를 얻고자 노력하는 PEF의 특성상 이니텍의 향후 사업성보다는 현금에 눈독을 들이고 인수전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이다.
특히 사업 포트폴리오 개선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며 계열사 정리에 나선 KT의 청사진과 맞대 놓고 보면, 이니텍의 매각 조건을 둘러싼 의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투자금 마련에 한 푼이 아쉬운 와중 현금을 잔뜩 들고 있는 계열사를 그보다 못한 가격에 넘기는 모양새라서다. 이니텍 매각의 목적에 대해 KT DS는 "클라우드와 AI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도약을 위한 투자자금 확보"라고, HNC네트워크는 "비핵심 자산 매각을 통한 자금 확보를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KT는 회사 체질을 인공지능(AI)과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으로 바꾸는 이른바 AICT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2027년까지 AI 사업에 7조원을 투자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와 별도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추진하는 한국형 AI 솔루션 개발과 클라우드 서비스 확장을 위한 사업에 5년간 2조4000억원 규모의 공동 투자를 진행키로 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PEF의 이니텍 인수는 현금 자산을 노린 딜로 봐야 한다"며 "KT 입장에서는 비핵심 자회사의 조속한 정리라는 명분도 중요했겠지만, 경영 전략상 대량의 투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아까운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