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보다 이쁜데 안 팔리는 기아의 고급 세단
[더 프레스티지 K7]
2011년 2월에는 파워트레인을 변경하고 상품성을 보강한 연식 변경 모델 더 프레스티지 K7을 출시했습니다. 앞서 그랜저가 5세대 HG로 거듭나면서 파워트레인에 'GDi 기술'을 적용한 것에 발맞춰 기존의 가솔린과 LPI 엔진을 그랜저와 동일한 2.4 / 3.0L 모델로 변경해 출력과 연비를 개선한 것이 가장 핵심적인 변화였죠. 또 기존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전자식(C-MDPS)으로 변경했고, 딱딱하다고 지적받던 서스펜션 세팅을 손봐 이전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졌습니다. 외관은 기존의 디자인이 워낙 좋은 평가를 받아 딱히 고칠 건 없었지만, 이전에 노골적으로 티를 냈던 하위 트림의 크롬 베젤 헤드램프와 그릴을 검게 칠해 인상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실내 역시 디자인의 변화는 없었지만 상위 트림에 집중되어 있던 편의 사양을 하위 트림에도 확대 적용했습니다. 폭넓게 쓰였던 블랙 하이그로시의 경우, 처음에나 좋지 스크래치나 먼지·지문 등으로 인해 관리에 불편을 겪는 소비자가 많다는 것을 반영해 무광 소재로 변경했습니다. 또 오토 홀드가 포함된 전자식 주차브레이크(EPB) / 스웨이드 천장 마감 / 운전석 마사지(...)와 비슷한 기능을 추가하는 등 신형 그랜저에 대응하기 위해 상품성을 보강했죠. 쓴소리를 들었던 뒷좌석 열선 시트도 드디어 중간 등급까지 내려왔어요. 전반적으로 소비자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내실을 다진 모델이었습니다.
또 얼마 뒤에는 최상위 V6 3.3L GDi 모델을 신설해 이전 3.5L 모델만큼의 넉넉한 성능을 원했던 소비자에게 어필했고, 수입차와 경쟁차의 3.5L 모델에 대응하기도 했죠. 한편, 초기 연식의 경우 그랜저HG가 '가스랜저'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속 주행 시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소비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부분이었지만, 리콜이 아닌 무상 수리로 대응해 많은 지적을 받았죠.
또 2.7L 모델은 주행거리에 따라 엔진 부품 중 하나인 밸브 리프터 '태핏'에 유격이 생겨 딱딱 소음이 나는 고질병이 있었는데요. 이는 같은 '뮤 엔진'을 사용하는 그랜저TG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했던 문제였죠. 이 문제는 수리를 통해 태핏을 교체하면 해결이 가능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문제는 GDi 엔진이었는데요. 후기형 GDi 엔진의 내구성 문제는 당시 지금처럼 크게 알려지진 않았었죠.
[더 뉴 K7 (2012~2016)]
출시 3년 후인 2012년 11월에는 페이스리프트 모델 '더 뉴 K7'이 출시됐습니다. 기아차 패밀리룩의 중심 모델인 만큼, 전면부는 앞서 출시된 기아차의 후륜구동 플래그쉽 세단인 K9과 유사한 형태로 수정되었습니다. 이전의 찔릴 듯한 날카로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결 부드러운 인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쐐기형에서 뭉툭하게 수정된 헤드램프와 범퍼 디자인이 달라진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새롭게 추가된 LED 주간 주행등(DRL)이 더해져 대낮에도 존재감을 뽐냈죠.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만큼 측면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휠 디자인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몽땅 '멀티 스포크 휠'로 도배했습니다. 스포츠카나 고성능 차에서 볼 수 있는 '방열구'를 모방한 펜더 장식을 넣어 스포티한 인상을 이어갔습니다.
후면부도 변화가 눈에 띄었는데요. 부드럽게 수정된 헤드램프에 발맞춰 모서리를 단정하게 다듬었고, 면발광을 더한 LED 테일 램프는 K3와 아우디 신형 모델을 닮아 세련된 분위기를 주었습니다. '매립형 머플러 팁'도 이전 사각형 모양에서 타원형으로 변경되었고, 두꺼웠던 크롬 바는 두께를 줄여 무게감을 덜어냈죠. 전반적으로 젊은 감각은 유지하면서도 전작보다 이미지가 많이 중후해졌습니다.
호랑이에서 리트리버가 된 듯 갑작스레 부드러워진 디자인으로 일부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매력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죠. 소나타를 따라 신형으로 거듭나면서 파격적으로 달라졌던 그랜저와는 정반대 행보라 오히려 K7이 단정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변화는 외관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실내 역시 거의 신차 수준으로 변했어요. 드디어 마징가 갑옷을 벗은 센터페시아는 이전의 난잡했던 기능을 수평 기조로 깔끔하게 정리해 K9 못지않게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거듭났습니다. 고급 차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날로그 시계가 추가된 것도 눈길을 끌었죠.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형태의 계기판을 적용해 차량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고, 8인치로 통합한 내비게이션에 어라운드 뷰 / 스마트폰 원격 시동 / 온도 조절 등을 할 수 있는 텔레매틱스 시스템 UVO(유보)를 추가한 것도 좋은 구성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배척하던 우드 그레인을 폭넓게 사용했고, 부담스러운 화이트와 무난의 극치인 블랙 이렇게 두 가지밖에 없어 사실상 선택지가 하나였던 내장 색상에 새로운 베이지 컬러를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혔습니다.
큰 틀은 그대로였지만 이전에 지적받던 디자인 요소를 다듬고 탑승객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개선해 변화가 확실히 체감되는 잘 된 페이스리프트를 제공했습니다. 외관과 마찬가지로 실내도 고급스러움과 중후함을 더해 많이 단정해진 느낌이었는데요. 이때부터 그랜저와 서로 포지션을 바꾼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어요. 파워트레인은 직전에 변경된 GDi 파워트레인을 그대로 유지했고, 초기보다는 부드러워졌다고 하지만 동급 대비 단단한 승차감도 여전했습니다.
대신 시트 진동 알림 기능을 더한 차선 이탈 경보 / 후측방 경보 / 차간 거리 조절 / 완전 정차를 지원하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적용하는 등 주행 안전 및 편의 사양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아, 3.3L 모델은 '전자 제어 서스펜션'이 부활했어요. 또 파워트레인 변화가 거의 없어 아쉬워하는 분을 위해 이걸 내놨습니다.
[K7 하이브리드]
2014년에는 그랜저HG 것을 그대로 사용한 2.4L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놨습니다. 앞서 출시된 K5 하이브리드 모델과 마찬가지로 700h라는 듣도 보도 못한 모델명으로 출시됐죠. 16km/L라는 준수한 연비를 내세웠고, 당시 높은 인기를 끌던 수입 디젤 세단과 캠리 하이브리드에 맞섰습니다. 물론 대중적으로 하이브리드의 인기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고 기아차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완성도 역시 지금에 비하면 높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잘 팔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랜저의 디자인이 부담스러웠던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해당 연도 K7 전체 판매량의 약 1/5이라는 준수한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2009년 등장한 1세대 K7은 출시 보름 만에 누적 계약 1만 대를 넘어서는 등 준대형차 시장에서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임원 차량 교체 시즌인 연말에 맞춰 출시된 만큼, 특유의 스포티한 디자인이 직접 운행하는 일이 많은 젊은 임원진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상무급 인사들이 그랜저 대신 K7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랜저가 보수적인 이미지를 유지해 중장년 소비자에게 어필했지만 젊은 감각을 원했던 소비자에게는 고리타분하게 다가왔는데요. 이게 K7으로 인해 해소된 셈이었습니다. 이는 기아차와 현대차가 같은 차급에서 서로 상호 보완해 빈틈을 메우고 그룹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일석이조 효과를 가져왔어요. 그나마 젊은 감각으로 '스포츠 세단'으로 불릴 만큼 나름의 존재감을 지키던 르노 삼성의 SM7이 신형 '뉴아트'를 내놓으면서 보수적인 방향으로 회귀한 것도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연식 변경과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상품성을 업그레이드해 다양한 소비자의 입맛을 만족시켰고, 그사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경쟁 수입차의 공세에도 꿋꿋이 준수한 판매량을 유지했습니다.
그랜저가 TG를 시작으로 폭주 기관차 수준으로 독주하는 것은 막아서지 못했지만, 20대가 타도 어울리는 스포티한 준대형차로서 그 존재감을 각인시켰죠. 한편 해외에도 진출했는데요. K 시리즈 출시 이후에도 전통적인 모델명을 사용했던 수출시장에는 기아 '카덴자(CADENZA)'라는 이름으로 판매됐습니다. 차명은 연주회 끝에 들어가는 '연주자의 화려한 기교'를 뜻하는 음악 용어에서 따왔죠. 해외에서도 스포티한 디자인과 뛰어난 가성비로 호평받으며 초기에는 꽤 팔렸지만 이후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떨어졌습니다. 애초에 인기가 많지 않은 체급이기 때문이었고, 브랜드 밸류가 크게 작용하는 고급 세단 특성상 당연한 결과였죠.
여담으로, 출시하기도 전에 인기리에 방영되던 첩보 액션 드라마 <아이리스>에 PPL로 투입해 소비자에게 눈도장을 찍은 것도 효과적이었습니다. 가히 노골적인 광고에 가까운 연출이 더해져 기존의 국산 차를 뛰어넘는 멋진 차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멜론머스크의 이용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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