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고, 일단 뛰어…KIA 지옥의 마무리캠프

마무리캠프에 참가한 KIA 투수들이 일본 오키나와 킨 구장에서 러닝 훈련을 하고 있다. . /오키나와=김여울 기자

KIA 타이거즈, 일단 뛰고 본다.

우승팀에서 8위로 추락한 KIA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팀 안팎으로 찬 바람이 불고 있지만 마무리캠프가 꾸려진 일본 오키나와는 뜨겁다.

‘지옥의 캠프’를 예고했던 이범호 감독, 선수들도 각오는 했다.

하지만 상상 이상의 지옥이 선수들 앞에 펼쳐졌다.

뛰고 또 뛰어야 하는, 뛰고 봐야 하는 KIA의 마무리캠프다.

내야수 김규성은 “마음에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첫날부터 러닝 6km 뛸 때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포수 한준수도 “이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마무리캠프 시작과 함께 선수들은 끝없는 러닝을 시작했다.

그라운드, 실내연습장, 경기장 언덕과 주변 등 뛸 수 있는 곳은 모두 훈련 장소다.

뛰는 방식도 다양하다.

45초 페이스로 100m 4세트, 실내 연속 3바퀴 5세트, 폴 투 폴 35초 페이스 8회x2세트, 허들 3종목 40m 10세트 등 매일 새로운 러닝 훈련이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투수들의 달리기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경기장 외부(500m) 연속 5세트는 기본이다.

달콤한 휴식일을 보낸 뒤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 14일, 선수단의 오전 스케줄에는 100m 왕복 인터벌이 있다. 45초 페이스로 10회, 3~4세트. 6~8㎞를 달려야 오전 러닝 훈련이 끝난다.

물론 오전 훈련 스케줄에 러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러닝 뒤 라이브 훈련도 진행된다. 좋은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중요한 시간.

오후에 투수들은 다시 뛰어야 한다.

이번에는 언덕을 달려야 한다. 100~150m를 8~10번 오가야 1세트가 끝난다. 3~4세트를 마무리해야 훈련 종료다.

모든 운동의 기본은 달리기다. 그 기본을 통해 하체를 강화하고 체력을 키우는 게 이번 캠프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올 시즌 KIA는 부상과 체력 저하가 겹치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개막전 김도영의 햄스트링 부상을 시작으로 야수진의 하체 부상이 이어졌고, 주전들의 부상으로 기회를 얻은 신예 선수들은 시즌 중반 체력 저하라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젊은 선수들의 체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80경기 이후 젊은 선수들의 체력이 확 빠지는 게 눈에 보였다”는 이범호 감독.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많은 기회를 얻으면서 마음껏 그라운드를 누벼놨던 신예 선수들도 체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하던 대로, 보이는 대로 쳤는데 결과는 달랐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마음과 다르게 몸이 움직였다.

실패가 쌓이면서 선수들은 자신감을 잃었다. 그렇게 다시 원점에서 고민이 시작됐다.

KIA의 2025마무리캠프 키워드는 '러닝'이다. 달리기를 통해 하체 힘을 키우고, 기술적인 발전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게 목표다. /오키나와=김여울 기자

이범호 감독은 “체력적으로 길러놔야 확실히 실력이 빨리 느는 것 같다. 중거리 위주로 많이 뛰면서 부상 예방을 위한 잔근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일본인 트레이닝 코치를 모셨다”며 내년 시즌 퓨처스 선수단을 이끌 나이토 시게토 트레이닝 코치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러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치이자, 외국인 코치라는 점에서 KIA의 폭풍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이범호 감독은 “타협 안 하고 빡빡하게 시킬 생각이다. 선수 때 외국인 코치님과 할 때 생각해 보면 바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시스템을 다 따라갔었다”며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잘 따라온 선수는 스프링캠프까지 확실한 보상을 줄 생각이다”고 언급했다.

선수들의 공통된 반응은 “힘들다”이다.

차원이 다른 러닝 훈련을 하는 만큼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내년 시즌을 위한 ‘기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만큼 기대감으로 결승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김규성은 “첫 날에 쥐가 많이 났다. 그런데 신기하게 금방 또 적응이 됐다”며 “시즌 끝나고 다른 팀들의 포스트 시즌을 보면서 선수들끼리 많은 말을 했다. 형들도 다들 독기를 품었다. 그걸 보니까 생각이 많아졌다. 힘들게 죽어라 운동하고 있다. 내년 가을 야구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열심히 뛰면서 한층 날렵해진 한준수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한준수는 “‘이렇게 뛰면서 기술훈련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기술 훈련하면서 쥐도 많이 났는데, 하다 보니까 체력이 따라온다. 지금은 적응하고, 안 다치고 즐겁게 야구하려고 하고 있다”며 “버티는 것도 체력이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해왔고, 성인 돼서도 많은 훈련량을 가져가면서 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힘들지만 다들 버티는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서로 말을 하고 있다. 선수들끼리 그런 것이 잘 통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지옥의 러닝 후 소화해야 하는 기술훈련에 대한 걱정은 많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힘듦 속에서도 적응을 한 선수들, 생각하지 못한 순효과도 있다.

‘예비역’으로 마무리캠프에 참가한 외야수 한승연은 “힘들다. 계속 힘들기는 하지만 많이 해야 한다. 머슬메모리라고 익숙하게 해놔서 괜찮다. 오히려 힘이 드니까 타격 할 때 힘이 빠져서 잘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투수들. 기회의 시즌을 위해 KIA 마무리캠프 선수단이 부지런히 뛰고 있다. /오키나와=김여울 기자

앞서 경험하지 못한 ‘1일 2러닝’을 소화하고 있는 투수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우완 김현수는 “힘들다. 살면서 러닝을 하루에 두 번 하는 것은 처음이다. 의리랑 같이 뛰고 있다. 의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는데, 의리가 페이스 조절 너무 잘해서 그렇게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확실한 건 운동을 하니까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며 “코치님이 그러셨다. ‘공을 1만 개 던지는 스타일의 사람과 공을 적게 던지는 스타일에도 반드시 성공한 사람은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라고 마음 먹기를 강조했다.

프로 데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됐던 우완 이도현도 “오히려 좋다”는 반응이다.

그는 “러닝 훈련이 많은데 좋은 것 같다. 비시즌에 혼자 운동할 때는 자기 의지로 이 정도로 체력 운동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이렇게 팀에서 강도 높게 시켜줄 때 체력을 올려놓고, 비시즌에는 유지하는 정도만 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냥 달리면 되지 않을까? 운동 선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러닝’이 마무리캠프의 키워드가 되면서 훈련 시간에 선수들과 나란히 달리기를 시도하는 프런트도 있다. 자신만만하게 출발선에 섰던 이들은 이내 “역시 선수는 선수다”라는 반응으로 고개를 저었다.

차원이 다른 러닝으로 선수들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물론 우려의 시선도 있다. 강도 높은 훈련에 부상을 막기 위한 훈련이 오히려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우려.

러닝 바람이 스토브리그를 지나 내년 스프링 캠프 그리고 2026시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찌 됐든 KIA와 선수들은 올 시즌을 곱씹으면서, 새로 열린 기회의 시즌을 잡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달리고 있다.

지켜보는 나도 궁금하다. 과연 오늘의 질주가 어떤 결과로 마무리될지.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