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로 고찰한 인간과 인간·인간과 자연 관계

전시장 중앙에 있는 설치 미술품 앞에 서자 감지기가 작동한다. 감지기는 철을 녹이고 붙여 만든 전시대를 일정한 속도로 두드린다. '땅땅땅!' 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전시대 위로 손, 팔꿈치, 무릎 등 노동자의 신체 일부를 딴 실리콘 덩어리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최은희 작가가 만든 '후덜덜Ⅱ' 연작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불안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는 인간, 특히나 노동자를 떨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김해 대안공간 사랑농장이 28일까지 〈공장생물〉전을 연다. 최은희 작가의 2022년 작품 '후덜덜Ⅱ' 연작 중  팔꿈치와 손. /주성희 기자
김해 대안공간 사랑농장 〈공장생물〉 전시장 모습. /주성희 기자

김해 대안공간 사랑농장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8일까지 〈공장생물〉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는 권다예·김원정·이은희·이정희·지민희·최은희 작가가 참여했다. 사랑농장 운영자이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도영 작가는 이번 전시로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하는 장소(공장·co-field)에 대한 생태학(ecology)이 지닌 가치의 표현, 우리 삶의 표상 문제를 논의해 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장소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에 참여 작가는 오롯이 설치미술로 구성됐다. 이들은 저마다 방식으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 방식을 작품에 녹여냈다.

김원정 작가는 야생화를 이용해 사회적 풍경을 그의 작품 '무용지용'에 담았다. 야생화를 배열할 때 높낮이를 달리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질서를 나타냈다. 김 작가는 "야생화 하나하나가 높낮이가 다르더라도 사회가 평등해지려면 배려, 제도, 관계 형성이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작품 속에 있는 자연물은 일상에서 보기 쉽다. 유채, 깨, 쑥, 망개나무 등이다. 하지만 사랑농장에 들어와 보면 익숙하지 않은 개체로 여겨지는 것이 이번 전시와 사랑농장 공간이 가진 힘이라 볼 수 있다.

김해 대안공간 사랑농장 〈공장생물〉전 중 김원정 작가의 '무용지용' 연작. /사랑농장
김해 대안공간 사랑농장 〈공장생물〉전 중 이정희 작가의 '너무 큰 장군'. /주성희 기자

이정희 작가는 2019년에 제작했던 '너무 큰 장군'을 새로 제작해 보여준다. 작은 이순신 장군 모형에 조명을 비춰 벽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는 2019년 창원시 이순신 타워 건립에 관해 예술계와 정치권이 이를 반대한 사건을 상징한다. 지역 관광콘텐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설치되는 조형물 및 건축물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권다예 작가는 광목천 20·30·40수 3가지 종류의 천을 천장에 건 '프린터 13.1.13'을 선보였다. 청록색(cyan), 노란색(yellow), 자홍색(magenta) 색을 자동 급수시켜 그림을 그리고 계산된 입력값으로 출력하는 프린터의 기계적인 문법을 자동 급수기에 적용했다. 막상 광목천 위에는 입력값 없이 세 가지 색이 중첩돼 엉키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김해 대안공간 사랑농장 〈공장생물〉전 중 권다예 작가의 '프린터 13.1.13.'. /주성희 기자
김해 대안공간 사랑농장 〈공장생물〉전 중 이은희 작가의 '피로의 한계'(2채널 비디오, 14분 58초, 2023). /사랑농장
김해 대안공간 사랑농장 〈공장생물〉전 중 지민희 작가의 '스티로파지, 오이스터파지'(2024). /주성희 기자

이은희 작가는 두 개의 큰 화면으로 '피로의 한계'란 작품을 구성했다.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의 주기와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을 설정하고 실험하는 현장을 관찰한다. 이 작가가 표현하는 제품과 산업현장은 일종의 은유다. 결국 물질과 유기체의 삶과 죽음, 저항하는 힘을 상기시킨다.

지민희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하동 술상마을 바닷가에서 발견한 스티로폼 등 물체로 작품 '스티로파지, 오이스터파지'를 만들었다. 어느 날 주운 이 스티로폼 내부에는 굴이 살고 있었다. 굴은 사람들이 버린 스티로폼을 먹고 자라고, 그런 굴을 다시 사람들이 채집해서 먹는 이상한 순환과 술상마을에서 자란 어머니의 성장기 어촌의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 형상화했다. 작품 제목은 영어와 라틴어를 조합해 작가가 만든 것으로 '스티로폼을 먹는 자, 굴을 먹는 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 공간지원사업의 후원으로 열렸다. 예약제로 운영하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일·월요일에 쉰다. 문의 0507-1366-1583(네이버 스마트콜) 또는 사랑농장 인스타그램(@spacesarangfarm).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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