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노트] 1300억짜리 오점 남긴 신한투자증권

"스캔들 제로(Zero)." 지난해 3월부터 이어온 신한금융그룹 모든 임직원의 지향점이었다. 정도경영을 통해 1등보다 일류가 되겠다는 비전도 담았다. 모두 내부 통제를 기반으로 고객 신뢰를 제고하겠다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금융업에 있어 신뢰는 생명줄과 같기 때문이다.

금융판 중대재해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가 본격 시행되기에 앞서 신한금융의 조기 도입도 그 일환이었다. 업무 범위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도록 기재한 문서인 책무구조도는 은행지주의 경우 내년 1월까지, 금융투자업자들은 자산총액 5조원·운용자산 20조원 이상인 곳이 내년 7월까지 제출해야 한다. 제출 시한이 남았음에도 신한금융은 금융권에서도 최초로 도입했다. 그만큼 고객 신뢰에 치명타인 금융사고를 경계해왔던 것이다. 그룹의 기조에 따라 신한투자증권도 증권 업계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도입했다.

이러한 와중에 신한증권에서 1300억원 규모 스캔들이 터졌다. 지난 8월 '블랙먼데이'를 전후로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 공급자(LP) 운용 과정에서다. ETF LP 업무 목적에서 벗어난 선물 매매로 대규모 손실이 났다. 담당직원은 이를 감추기 위해 지난 8월2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스와프 거래인 것처럼 허위로 등록했고, 신한증권은 내부 감사에서 적발하자마자 자진신고했다.

이 여파로 신한증권의 채권 발행도 중단됐다. 최대 4000억원까지 한도를 열어두고 오는 24일 발행하기 위한 수요예측 일정이 취소됐다. 대규모 손실에 대한 회계 반영이 확정되기 전에 계획되서다. 채권시장에서는 암묵적으로 주관사와 인수단에서 기관투자가들과의 협의를 통해 발행회사 자금조달 규모를 결정한다. 불가피하게도 신뢰를 깎아먹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셈이다.

이번 사태와는 별개로 이달 10~11일 진행하기로 예정됐던 신한제14호스팩 공모 청약도 당일 철회해 투자자들의 원성은 더욱 높아졌다. 본청약이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철회신고서 자체가 당일 오전 중에 제출되면서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시간을 허비하게 됐다.

신한증권은 그룹 내에서도 비은행 부문 핵심 자회사다. 증자 등 그룹의 전폭적인 자본 재배치 지원 덕분에 지금의 시장 지위를 갖게 됐다. 2014년 말 신한금융투자 시절 2조3318억원이었던 자기자본 규모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 5조4088억원으로 뛰었다. 자기자본 기준 국내 증권사 순위는 현재 8위권이다. 증권업은 다른 어느 산업보다도 자본력에 따라 영업활동 범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업권 순위를 가른다. 수년에 걸쳐 이뤄진 그룹 차원의 자본 재배치는 리딩뱅크를 경쟁하는 신한은행처럼 계열사인 신한증권도 업권 내 시장 지위를 나란히 견주게 하기 위한 작업 중 하나였다.

내부통제 기반 스캔들 제로로 고객 신뢰를 얻어야 지속적인 수익을 내는 일류회사가 될 수 있다는 그룹 전사적 지론은 신한증권에도 적용된다. 이번 사태는 외형이 커지는 동안 내부도 탄탄하게 같이 성장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증권 업계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도입했음에도 허울뿐이었다는 질타가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들여 쌓아올린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김상태 신한증권 사장은 이번 사고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금융당국의 현장검사와는 별개로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겠다고 했다. 그룹의 아픈 손가락이 아닌 위상에 걸맞는 신한증권이 되기를 바란다.

임초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