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battery), 매질에서 전지까지[말록 홈즈]

2024. 8. 23. 13:2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아부지마마, 배터리의 어원은 무엇이옵니까?”

지난해 초겨울 어느 일요일, 논술시험을 마치고 나온 고3 아들과 저녁을 먹던 중, 아이가 핸드폰에 보조배터리를 끼우며 묻습니다.

“세자, 아부지가 에너자이저나 로케트에 다니지 않는데, 어찌하여 묻는 것이오?”

“신문에 2차전지 소재 기사가 자주 나오길래, 아부지는 아실 것 같아서 여쭈었사옵니다.”

아, 그렇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원격조종 자동차나 탱크를 선망하며 자라온 X세대 아빠에게, 배터리는 아직 건전지입니다. 유딩 때부터 핸드폰을 숟가락보다 자주 쥐는 2천년대 디지털 베이비 아들에게, 배터리는 핸드폰이고 전기차인가 봅니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저도 어엿한 구세대였습니다. 방망이로 한 대 얻어맞는 듯 멍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야만의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내며, 참 다양한 도구로 맞았습니다. 대나무 뿌리, 빗자루, 대걸레 자루, 당구채, 먼지떨이개로 가격당하며,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가 머리에 새겨졌습니다. 손바닥, 주먹, 발, 무릎으로도 셀 수 없이 가격당했지만, 야구부가 없던 학교만 다녀서였는지 방망이로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배터리는 방망이에서 왔습니다. Battery의 말뿌리인 라틴어 ‘battre’의 의미는 ‘두들겨 패다(beat)’입니다. 야구 야사를 보면, 전설의 선수가 같은 팀 후배 선수를 방망이로 정신교육해서 허리를 심하게 다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방망이로 사람을 때리는 ‘빠따질’이나 ‘줄빠따’ 같은 쓰레기 악습은 사라져야 합니다.

마고 로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할리 퀸이 방망이질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방망이 battre는 16세기 프랑스에서 폭격(bombardment)과 포병부대(artillery)로 확장되었고, 18세기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전지(電池: 번개 전, 연못 지)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프랭클린은 전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별 전지 여러 개를 하나로 묶었는데, 이를 대포부대와 연결하여 작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탁월한 과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이 양반은 피뢰침 발명자로 더 유명합니다. 번개와 참 인연이 깊으셨던 분입니다.
<출처=픽사베이>
한자어 ‘전지(電池)’를 ‘번개 전(電)’자에 ‘연못 지(池)’자로 쓰는 이유는, 과거에 배터리가 유리병에 액체 상태로 담겨서라고 추정합니다. ‘라이덴병’이라고 부르는 초기의 전지는 네덜란드의 과학자 ‘피에터 반 뮈스헨브루크’가 1745년에서 1746년 사이에 제작했습니다. 라이덴병은 그가 이를 연구했던 지역의 이름이자 대학명인 ‘라이덴’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유리병의 안과 밖에 금속판을 두른 형태로, 병의 위쪽에 뚜껑을 달고, 금속 막대가 안쪽으로 통과하여 유리병 안의 금속판과 닿게 만들었습니다. 이때 생기는 정전기를 금속 막대를 통해 들어가 전하를 충전했습니다. 안쪽의 금속판은 접지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하가 방전되지 않고 축적됐다는데, 볼수록 머릿속이 더 헝클어지는 신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전지(乾電池)는 액체가 아닌 고체 상태로 전기를 저장해, 전지 앞에 ‘마를 건(乾)’자가 붙었습니다.
라이덴병<출처: 위키피디아>
<출처=에너자이저코리아>
“문제는 어땠어?”

조심스레 아이에게 시험에 대해 묻습니다.

“재밌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썼어요.”

씨익 웃는 녀석의 표정을 보고,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칩니다.

“그래, 열정을 쏟아부었다니 다행이네. 아빠는 우리 귀염둥이가 자랑스럽다.”

아들은 그 학교와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학교에 다니며, 미래에 어떤 꿈을 향해 나아갈지 그림을 그리는 중입니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우선 그 영역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합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90세를 바라보는 시대이기에, 미래를 길게 보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게 생각하는 지혜가 중요합니다. 어느덧 아들은 대학의 첫 번째 여름방학을 맞았습니다.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아빠의 짐을 덜어주려는 아이가 더 사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럴수록 최선을 다해 아들의 꿈을 지원해 주고 싶습니다. 그게 대한민국 아부지들의 숙명인가 봅니다. 힘세고 오래가는 배터리 에너자이저처럼 힘을 내봅니다.

<출처=에너자이저코리아>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