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battery), 매질에서 전지까지[말록 홈즈]
“아부지마마, 배터리의 어원은 무엇이옵니까?”
지난해 초겨울 어느 일요일, 논술시험을 마치고 나온 고3 아들과 저녁을 먹던 중, 아이가 핸드폰에 보조배터리를 끼우며 묻습니다.
“세자, 아부지가 에너자이저나 로케트에 다니지 않는데, 어찌하여 묻는 것이오?”
“신문에 2차전지 소재 기사가 자주 나오길래, 아부지는 아실 것 같아서 여쭈었사옵니다.”
아, 그렇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원격조종 자동차나 탱크를 선망하며 자라온 X세대 아빠에게, 배터리는 아직 건전지입니다. 유딩 때부터 핸드폰을 숟가락보다 자주 쥐는 2천년대 디지털 베이비 아들에게, 배터리는 핸드폰이고 전기차인가 봅니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저도 어엿한 구세대였습니다. 방망이로 한 대 얻어맞는 듯 멍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야만의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내며, 참 다양한 도구로 맞았습니다. 대나무 뿌리, 빗자루, 대걸레 자루, 당구채, 먼지떨이개로 가격당하며,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가 머리에 새겨졌습니다. 손바닥, 주먹, 발, 무릎으로도 셀 수 없이 가격당했지만, 야구부가 없던 학교만 다녀서였는지 방망이로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배터리는 방망이에서 왔습니다. Battery의 말뿌리인 라틴어 ‘battre’의 의미는 ‘두들겨 패다(beat)’입니다. 야구 야사를 보면, 전설의 선수가 같은 팀 후배 선수를 방망이로 정신교육해서 허리를 심하게 다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방망이로 사람을 때리는 ‘빠따질’이나 ‘줄빠따’ 같은 쓰레기 악습은 사라져야 합니다.




조심스레 아이에게 시험에 대해 묻습니다.
“재밌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썼어요.”
씨익 웃는 녀석의 표정을 보고,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칩니다.
“그래, 열정을 쏟아부었다니 다행이네. 아빠는 우리 귀염둥이가 자랑스럽다.”
아들은 그 학교와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학교에 다니며, 미래에 어떤 꿈을 향해 나아갈지 그림을 그리는 중입니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우선 그 영역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합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90세를 바라보는 시대이기에, 미래를 길게 보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게 생각하는 지혜가 중요합니다. 어느덧 아들은 대학의 첫 번째 여름방학을 맞았습니다.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아빠의 짐을 덜어주려는 아이가 더 사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럴수록 최선을 다해 아들의 꿈을 지원해 주고 싶습니다. 그게 대한민국 아부지들의 숙명인가 봅니다. 힘세고 오래가는 배터리 에너자이저처럼 힘을 내봅니다.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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