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연주가 은퇴한다..서브득점 통산 1위, 우승 반지 6개, 그녀가 남긴 숫자들이 말하는 것

V리그 여자부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란 포지션은 오래전부터 외국인 선수의 자리였다. 공격 점유율을 책임지면서도 리시브 부담까지 소화해야 하는 이 자리에, 국내 선수가 꾸준히 서는 것 자체가 하나의 뉴스였다. 황연주는 그 자리를 22시즌 동안 지켰다. 2005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 2026년 5월 18일 현역 은퇴. 그 사이에 쌓인 숫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한국 여자배구가 외국인 선수 의존 구조로 전환되는 20년 동안 토종 아포짓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였다.

황연주의 통산 기록을 나열하면 읽는 것만으로 지루해지기 쉽다. 그러나 숫자 하나만 집어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통산 서브득점 461점, 여자부 1위. 이 수치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서브득점이 기술력과 적극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안정 위주로 전략을 짜는 선수는 서브득점을 쌓기 어렵다. 황연주는 리그 데뷔 초기부터 점프서브를 구사하며 공격형 배구를 택했고, 그 선택이 누적되어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서브 득점 기록이 됐다. V리그 여자부 외국인 선수 시대가 본격화된 2006-07시즌 이후에도 이 흐름은 꺾이지 않았다.

2010년 FA 이적은 황연주 커리어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 흥국생명에서 세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당시 우승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서 있던 현대건설을 택했다. 이적 첫 시즌인 2010-11시즌, 현대건설은 창단 첫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황연주는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 올스타전 MVP를 모두 가져갔다. 구단이 그를 필요로 했다기보다, 그가 구단의 우승 구조를 바꾸는 데 핵심 변수였다. 이후 2015-16시즌, 2023-24시즌에도 우승 반지를 추가해 커리어 통산 6개를 쌓았다. 흥국생명 시절 3개와 현대건설 시절 3개. 팀이 바뀌어도 반지가 따라온 선수다.

2024-25시즌은 황연주에게 현실의 무게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시즌이었다. 정규리그 9경기 출전, 53득점. 출전 기회 자체가 줄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자 현대건설은 황연주의 의사를 묻는 과정 없이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15년간 팀의 핵심 공격수로 뛴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선수 의사 확인 없이 내려진 결정이었다. 황연주가 가장 서운했던 부분도 그 지점이었다. 구단은 코치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현역 연장을 택했다. 은퇴는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국도로공사는 그 선택의 수신처가 됐다. 황연주는 2025-26시즌 20경기에 출전했다. 많은 수가 아니다. 그러나 3월 17일 IBK기업은행전 6득점처럼, 필요한 순간에 가동됐다. 팀이 흐름을 잃었을 때 투입되는 베테랑 카드 역할이었다. 이 역할이 갖는 배구적 가치는 출전 수치보다 크다. 경기 흐름을 읽고 자신의 투입 타이밍을 정확히 소화하는 것은, 체력과 기술만큼이나 경험이 필요한 능력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구조적 질문이 있다. V리그 여자부에서 40대 선수가 코트에 서는 것은 아직 드문 일이다. 황연주는 1986년생, 올해 만 39세다. 그가 현역을 유지한 마지막 몇 시즌은, 한국 여자배구에서 베테랑 선수의 활용 방식이 어떻게 설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 점유율을 집중시키는 구조에서 국내 베테랑 공격수의 역할은 점점 좁아진다. 황연주가 끝까지 코트를 고집한 것은, 그 좁은 역할 안에서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V리그 10주년 베스트7과 20주년 베스트7에 모두 이름을 올린 선수는 황연주 외에 드물다. 이 두 번의 선정이 시사하는 것은 명확하다. 단순히 오래 뛴 것이 아니라, 리그가 성장하는 두 개의 시간대에 걸쳐 해당 포지션의 기준점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통산 5868득점, 510경기. 이 숫자들은 V리그 여자부 역사와 정확히 같은 기간 동안 만들어진 기록이다.

은퇴 결정 자체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시즌을 어디서, 어떻게 마쳤는지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현대건설이 통보한 결말을 거부하고, 새 팀을 스스로 찾아 한 시즌을 더 소화한 뒤 코트를 떠났다. 기록의 여왕이라는 별명은 이미 있었지만, 마지막 시즌이 그 별명에 무게를 하나 더 얹었다. 끝까지 선택권을 쥐고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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