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만원 버는데, 간병비 370만원" 돌봄절벽의 끝 '간병살인'의 비극
간병비 때문에 결혼·노후 대비 막막
비용 지원 법안 나왔지만 건보 적자 우려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주치의로부터 ‘더이상 처방해줄 약이 없다’는 말을 듣고 어떠한 희망도 없다는 생각에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습니다.”
A씨는 지난해 11월 24일 살인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그와 아내 B(74)씨는 지난 1987년부터 사실혼 관계로 지낸 평범한 부부였다. 하지만 2020년, 아내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신체가 움직이는 헌팅턴병을 진단받으면서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A씨는 생업인 택시기사 일을 그만두고 아내를 간호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은행 대출까지 받았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고 자신이 죽으면 아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초고령사회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간병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간병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당사자와 가족의 삶을 잠식하면서 범죄까지 발생하고 있어 간병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2일 수원에서 말기암 환자인 배우자를 살해한 70대 남성 역시 A씨처럼 배우자를 십수년간 돌보다 더는 간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간 가족의 돌봄을 떠안고 있는 이들이 무너지고 있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박모(62)씨는 5년 전부터 치매에 걸린 친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다. 박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노후 대비를 꿈꿨지만 간병 때문에 재취업을 그만뒀다. 요양원에 모셨던 모친이 폭력성을 보이면서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고 개인 간병인을 두기엔 경제적으로 벅찼던 박씨는 결국 이달부터 홀로 어머니를 다시 돌보기로 했다. 박씨는 “세제를 잘못 넣은 김치찌개를 먹고 구토한 일이 있어서 어머니 혼자 둘 수 없다”며 “24시간 옆에 있어야 하니까 ‘환자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경제활동을 하는 보호자들도 박씨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대전에서 2년째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송모(54)씨는 “월급이 300만원이 안 되는데 어떻게 매일 10만원씩 간병비를 내겠느냐”고 되물었다. 송씨는 “누구나 나이가 들고 간병을 고민하는 순간이 오지만 우리 세대는 아이가 적고 노후를 돌볼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사촌과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모를 돌보는 성모(29)씨는 “일당 14만원을 주고 간병인을 고용했는데 너무 비싸고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 지금은 퇴사한 언니가 이모를 간병한다”며 “우리는 아직 가정이 없으니까 십시일반으로 돕지만, 가정이 생기거나 나이가 들면 정말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월평균 간병비만 370만원…“지속 가능한 대책 마련해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월평균 간병비는 370만원 수준으로,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224만원)의 1.7배 수준이다. 40~50대의 경우 자녀 양육과 노후대비, 부모 봉양의 삼중고를 겪고 있기도 하다. 간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여야는 지난 총선에서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공약을 앞다퉈 발표한 바 있다. 그 결과 현재 국민건강보험에서 요양급여로 간병비를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등이 발의된 상태다.
문제는 예산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관련 연구보고서를 통해 “고령화 속도와 수요 증가 추이를 고려할 때 사회보험을 통한 공적인 지원만으로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에는 재정부담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요양병원 환자 중 중증도를 분류해 심각한 1단계부터 3단계 환자까지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고 가정했을 때 매년 최소 15조 원 이상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진국은 민간 보험사가 사회보장성이 높은 장기간병보험을 출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영국은 장기간병서비스의 수급자를 대상으로 종신연금을 보장하는 저가보험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은 저소득층을 위한 공적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를 운영하면서 나머지 시민을 위해 장기간병 특약 연금상품에 세제 혜택을 지원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장기요양보험도 본인부담금이 적어서 간병비까지 공적 보험으로 지원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이 낮다”며 “정말 힘든 사람들은 국가가 도와야 하지만, 나머지 국민은 장기간병보험에 세제 혜택 등을 주는 방식 등으로 스스로 간병을 대비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영민 (yml122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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