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실사판 - 인헌 고등학교 농구부의 전국대회 우승 이야기
“우영아. 그 소식 못 들었어?”
“우리 학교 농구부가 우승을 했어.”
“우리 학교에 농구부가 있었어?”
“있어. 있어. 나도 몰랐어. 그런데 정말 대단한 일 아니야? 그것도 우승을 한 대회가 전국대회였다고. 엄청난 거야.”
고교 동창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왔던 이야기였습니다.
이 대화가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저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인헌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당시에는 농구부가 없었습니다. 육상부와 양궁부가 있었는데 남학생 부원은 없었고 여학생 부원만 있는 엘리트 운동부였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인헌 고등학교 농구부는 2010년 창단됐다고 합니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 ‘공부하는 농구부’라는 타이틀로 검색됩니다. ‘서울대학교 입학을 목표로 하는 운동부’라는 특징 있는 농구부였습니다. 하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출전했던 대부분의 대회에서 전패했습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20년대 들어오고부터입니다. 새로운 코치가 부임한 이후 목표도 바뀌었습니다. 3년 전 기사의 제목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전국대회 8강’,
‘상대팀에 1승을 헌납하는 상대가 되고 싶지 않다.’ 등등.
팀의 지향점이 점점 ‘승리’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확인하니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목표를 수정하고 3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지 말이죠. 2019년부터 인헌고등학교에 부임해서 팀을 이끌고 있는 신종석 코치와 인헌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는 12월 6일과 12월 12일, 2회에 걸쳐서 진행됐습니다.)
저는 2008-2009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 KBL을 중계방송했습니다.
신종석 코치의 프로농구 현역 시절 막판과 살짝 겹칩니다.
저는 그를 견실한 팀 플레이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는 어떤 지도 철학으로 팀을 이끌면서 우승이라는 성과를 만들 수 있었던 걸까요?
신 코치가 인헌 고등학교로 오게 된 과정은 이랬습니다.
“프로생활을 마치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은 모교인 경복 고등학교에서였습니다. 당시는 멤버가 너무 좋았고요. 지금 프로에 진출한 선수들도 많아요. 계약기간 만료 후에는 군산고등학교에서 일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결혼 이후에 아이가 생기고 하다 보니 가족과 떨어져서 더 이상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때마침 인헌고등학교에 코치 자리가 생기면서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인헌 고등학교는 서울 시내 고교 중 유일하게 연계학교가 없는 학교라고 합니다.
“서울 시내에는 9개의 고등학교 농구부가 있습니다. 우리 학교를 제외한 그중 8개의 학교는 연계 학교가 있어요. 연계 학교라는 것은 말 그대로 중학교부터 이어지는 학교입니다. 만약에 유소년 시절부터 우수한 학생이 있다면 같은 재단의 A 중학교에서 A 고등학교로 이어서 입학을 하게 되는 것이죠. 대부분 농구 잘한다고 하는 엘리트 선수들이 이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학교는 연계 학교가 없다 보니 선수 수급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농구부가 생기고 오랜 기간 동안 하위권을 맴돌았던 이유도 이 점이었고요.”
신종석 코치는 전국을 돌며 직접 발품을 팔아 선수들을 스카우트했습니다.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보고 연계 학교로 입학이 이어지지 않게 된 선수들 중에서 좋은 선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디든 갔습니다. 제주도까지 갔습니다. 지금 있는 선수들 중에도 제주도에서 온 선수가 있습니다. 선수 본인 또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학교로 오라는 설득을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인헌 고등학교라는 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농구 선수들 또 부모님들에게 썩 좋지는 않았으니까요. 아시다시피 매번 상대 팀에 1승을 헌납하는 팀이었잖아요.”
이렇게 전국에서 모은 외인부대 선수들을 두고 신 코치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선수들의 자존감을 살리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농구라는 종목은 어린 시절부터 많은 것들이 정해져 있어요. 잘하는 선수, 못 하는 선수도 정해져 있고, 이기는 팀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우리 선수들 같은 경우는 연계 학교로 가지 못했다는 상실감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도 상당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어두운 부분을 걷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선수들의 자존감을 세워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신종석 코치는 3년 전 인터뷰에서 팀의 목표를 8강으로 잡으면서 한 가지 더 강조를 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가장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신 코치는 창의적인 플레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요?
“창의적인 플레이라는 것은 결국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옵니다. 플루터? 쏠 수 있습니다. 드리블을 하면서 유로스텝 밟아도 됩니다. 그런데 그걸 훈련을 통해서 철저하게 본인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경기 들어가서 시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레이업 슛만 보더라도 발을 맞추는 기본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변형을 시켜가면서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플루터도 훈련에서 던져보고, 10번에 7~8번 성공을 하면 그때 경기에서 사용을 해야 하는 거죠. 드리블과 유로스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철저하게 기본기를 마스터를 해야 창의적인 동작과 플레이로 이어지는 겁니다.”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거침없이 밝힌 ‘창의적인 플레이’의 정의는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농구 코치 송도 고등학교 고 전규삼 선생님이 말하는 ‘창의적인 플레이’와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이렇게 인헌 고등학교 농구부는 기본기와 자존감으로 무장하고 2024년을 맞이했습니다. 8월에 양구에서 개최된 왕중왕전, 8강에서 휘문고, 준결승에서는 배재고를 꺾으면서 학교 역사상 최초로 전국대회 결승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이미 그 당시 학부형들과 선수들은 축제 분위기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때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경기를 마치고 다 함께 저녁 식사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고기를 먹었고, 학부모들과는 치킨에 맥주를 한 잔 나누면서 서로서로 이번 대회에서 수고 많았다고 격려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 다들 마음 한 켠으로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경복을 어떻게 이기겠어?’. 그렇잖아요. 제 모교이기도 하지만 농구계에서는 레알 경복이라고도 불리는 고교 최강 경복 고등학교인데요.”
그런데 신 코치는 결승전 당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뭔가 묘한 느낌이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거 한 번 잡아봐?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잃을 게 전혀 없는데?’ 생각해 보세요. 이기던 지던 우리 학교는 손해를 볼 게 전혀 없는 거잖아요. 다들 우리가 이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고요. 그래서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손해 볼 게 없다. 부담감은 오히려 경복이 크다. 우리는 평상시처럼 최선을 다하면 된다. 결과는 그에 따라올 거다. 즐기고 와라.’”
게임 플랜은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계획은 5점 이내로 경기 막판까지 가는 거였습니다. 그러면 해볼만하다고 계산했습니다. 그 간격만 유지하면 심리적으로 쫒기는 쪽은 경복일테니까요. 우리가 먼저 포기하지만 않으면 막판으로 갈수록 해볼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번째 고비는 2쿼터에 찾아왔습니다.
“초반에 우리가 강한 압박을 통해서 리드를 잡았습니다. 1쿼터는 그렇게 앞서면서 마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2쿼터 들어서 3학년 주전 선수들이 약속했던 플레이가 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쿼터 들어가면서 세 명을 교체했습니다. 그 자리를 1,2학년으로 채웠습니다.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경기를 밖에서 한 번 지켜보라는 의미가 있었고, 두 번째는 ‘너희가 아니더라도 1,2학년도 게임을 잘 할 수 있다. 결승이라는 이 중요한 경기를 지금처럼 플레이하면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줄 거냐?’고 묻는 의미였죠. 한마디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경복은 강했고 4쿼터 초반에 점수차는 14점차까지 벌어졌습니다.
“다시 주전들이 들어갔는데도 점수차가 쉽게 좁혀지지는 않았어요. 4쿼터 3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점수차가 14점 차까지 벌어졌습니다. (인헌 51:65 경복) 저는 우리 선수들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시점이 되면 ‘역시 우리는 경복에게 안되는구나’하면서 백기를 들 수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4쿼터 7분 10초를 남긴 시점, 신 코치는 작전시간을 요청했습니다. 이후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작전시간을 부르고 ‘여기서 포기할 거냐. 경기 아직 안 끝났다.’고 선수들에게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어지는 공격에서 3점이 들어갔고 한 차례 수비 성공 이후에 또 속공이 통했어요. 순식간에 5점을 줄인 거죠. 9점 차에 한 자릿수 점수차, 남은 시간 생각하면 이제 해볼만한 스코어가 된 겁니다. 14점차의 최다 점수차를 만들었을 때 경복 선수들은 아마도 ‘이제 됐다’는 생각을 했을수도 있는데 이렇게 곧바로 따라붙으니까 상대 벤치나 선수들이나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4쿼터 51.8초를 남기고 인헌고는 기어코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스코어는 67:67. 하지만 여전히 공격권은 경복고가 쥐고 있었습니다.
“두 팀이 한 차례씩 공격을 실패하고 20초 쯤 남았을 때였습니다. 저희는 경복이 하프코트를 넘어오면 강한 압박수비(하프코트 프레스)를 하기로 약속을 했어요. 이 수비가 통했습니다. 상대 가드의 발이 중앙선을 살짝 넘으면서 하프코트 바이얼레이션에 걸렸습니다. 14초를 남겨놓고 공격권이 우리에게 넘어온 것이죠.”
남은 시간은 14초, 신종석 코치는 최후의 작전시간을 불렀습니다.
“만약에 이 공격을 성공하지 못하면 연장에 가게 되고 그럴 경우, 신장과 선수층에 있어서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경복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서 이기려면 여기서 경기를 끝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수들의 생각을 물었는데 선수들은 오벨레(나이지리아 출신 3학년 C/F)를 활용한 아이솔레이션 공격(개인기를 활용한 공격방법)을 원했습니다.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투맨게임(픽앤롤로 대표되는 2:2 공격전술)이었습니다. 우리도 경복도 모두 팀 파울에 걸려있었거든요. 공격 전개 과정에서 림 근처에 다가가서 파울만 얻어도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선수들은 신 코치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이행을 했습니다.
“제가 하지 말라고 한 게 있었습니다. 수비수에게 쫓기면서 뒤로 빠져서 3점을 쏘면 절대 안된다. 무조건 투맨게임을 하다가 공을 빼더라도 다시 림을 향해서 다가가라. 3점을 쏘는 건 경복이 원하는 것이라는 점이었죠. 그런데 선수들이 이걸 정확하게 해냈습니다. 2:2로 공격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 공격이 막혔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공을 만진 주연이도 결국 빠지면서 3점을 쏜 게 아니라 다가오면서 슛을 시도했거든요.”
최주연 선수가 슛을 하는 순간 휘슬이 울렸고 이 휘슬은 경기 종료 휘슬이 아니었습니다.
“그 휘슬은 반칙 휘슬이었어요. 이 휘슬이 울리는 순간 속으로 ‘됐다.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들어가도 경기 시간이 모두 소진된 상황에서 자유투 두 개를 얻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경기 종료 부저와 함께 공이 림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추가 자유투가 필요 없는 버저비터였습니다.”
이 우승은 신종석 코치가 농구인으로서 이룩한 모든 성취 중 최고의 성취라고 회상했습니다.
“단연코 이 우승이 최고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죠. 사실 선수로서, 또 지도자로서 우승을 여러차례 해봤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곳 인헌 고등학교에 와서 우승 코치가 됐다는 점은 제 평생의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학교, 인헌 고등학교, 이 학교를 농구를 하는 학생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학교로 만드는 것이 신종석 코치의 남아있는 목표라고 했습니다.
“물론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지기는 했지만 우승을 한 번 했다고 해서 갑자기 이 학교가 학생 농구 부원들이 손들고 오고 싶어 하는 학교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는 지금 약 70~80% 수준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연계 학교가 없는 약점은 계속 이어지는 거고 타 팀에 비해서 신장이 열세에 있는 것도 똑같거든요. 그래서 현재도 스카우팅에 주력하고 있고, 학생농구와 클럽농구를 모두 살펴보면서 내년 입학 예정 선수들을 뽑았습니다. 내년 시즌 목표는 다시 8강부터 시작입니다. 우승을 한 번 해봤다고 목표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매년 꾸준히 새로 시작하면서 인헌고등학교 농구부를 오고 싶어 하는 학교로 만드는 것이 현시점에서의 제 목표입니다.”
주변의 지원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교장 선생님(김현 교장)께서 부임해 오신 이후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께서 인헌 고등학교 동문회와도 관계를 이어가시면서 동문회에서도 농구부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동문회에서는 매년 농구부 학생 전체 회식을 시켜주고 있어요. 이런 관심이 선수들과 저희 모두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께서 이 학교에서의 임기가 내년 8월까지 세요. 내년에도 좋은 성적으로 마지막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하하”
이전과는 달라진 우리나라 학생스포츠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제는 학생운동선수라고 불리죠. 더 이상 선수들이 운동만 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당연히 훈련도 모든 교과과정이 끝난 이후에 시작하고요. 저는 이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반 친구들과 잘 지내라는 점을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운동부 학생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같은 사안이 발생하더라도 ‘저 학생은 운동부잖아. 그러니까 그렇지.’라는 비아냥도 수차례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더 모범적인 학생운동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2000년대 초반 야구라는 게임을 뒤흔들었던 오클랜드의 ‘머니볼’ 이론은 기록의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연계 학교가 없는 기울어진 농구장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인헌고등학교의 머니볼은 아니, 신종석 코치의 머니볼 이론은 무엇이었을까요?
“결국 선수들의 자존감을 살리는 것과 기본기라고 생각합니다. 연계학교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던 선수들의 패배 의식을 걷어내고 기본기에 충실했던 것. 이게 전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승패보다 과정에 주목하면서 꾸준히 기본기를 쌓다 보니 결과까지 따라온 거죠.”
저는 스포츠에서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저서 ‘다윗과 골리앗’에서 이야기를 한 것처럼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골리앗은 거인병 환자였고, 거인병 환자는 시야에 한계가 있는 데다가 동작이 느립니다. 다윗의 돌팔매는 매우 먼 거리에서도 정확도와 파괴력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무기였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당연히 다윗이 이기는 싸움이었습니다.
이는 스포츠에도 해당됩니다. 20년 넘게 중계방송을 해오면서 관찰한 결과, 야구에서 우연히 잘 맞은 홈런은 없었고, 축구에서의 럭키-골도 복싱에서의 럭키펀치에 의한 KO승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처럼 보이는 모든 결과들에는 그에 따른 원인이 있었고 모두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연한 우승이나 행운의 우승은 없습니다. 언더독이라고 불리던 인헌고등학교의 전국대회 우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변의 관심, 선수들의 자존감을 세워주려는 지도자의 신념, 선수들의 믿음이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던 우승이었습니다.
저는 ‘창의력은 곧 기본기’라는 신종석 코치의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이 한마디는 결국 개인과 팀의 노력의 이야기이고 혼신의 노력을 비웃는 지금 이 시대에 큰 메시지를 줄 수 있는 한마디라고 생각합니다.
연계 학교도 없는 최약체 고등학교가 전국대회 우승까지 차지한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시작됐을 뿐입니다.
동영상을 통해서 한 편의 농구 만화 같았던 결승 경기를 생생하게 회상하는 신종석 코치를 만나보시죠.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