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 美헬스케어·테크 44%가 고객, 스타트업들 패닉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2023. 3. 1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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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비상사태 선언

지난 10일(현지 시각) 총자산 276조5000억원인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재정 위기가 드러난 지 이틀 만에 초고속 파산하면서 미 테크 업계와 가상 화폐 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전 세계적인 스타트업 업계의 유동성 위기로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뱅크(SVB) 앞에 시민들이 서 있는 모습. 이날 캘리포니아주 금융 당국은 지급 불능 등을 이유로 SVB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AFP 연합뉴스

10일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FDIC가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이라는 이름의 법인을 세워 SVB의 전체 예금을 이전하고, SVB 보유 자산 매각도 추진하며 뒤처리를 맡는 것이다. SVB는 작년 말 기준 총예금이 1754억달러(약 232조원)인 미국 16위 은행이다. 이번 파산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문을 닫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미 역사상 둘째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SVB는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서 스타트업의 예금을 유치하며 ‘스타트업의 기본 은행’으로 성장했다. 2500개 이상의 VC(벤처캐피털)와 헬스케어(건강 관련)·테크 스타트업 중 44%를 고객으로 확보했다. 하지만 SVB의 파산으로 당장 스타트업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일부 스타트업은 예금을 인출하지 못해 직원 임금도 주기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가상 화폐 업체들도 SVB에 자금이 묶이면서 유동성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SVB 파산 충격파는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는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SVB 파산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이미 영국과 캐나다에 있는 SVB 해외 지점도 영업 중단에 들어가며 이곳 스타트업들의 자금줄이 막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SVB 주식을 2320만달러(약 307억원)어치 가진 국민연금, 462만달러(약 61억1000만원)어치 가진 한국투자공사는 SVB가 최종적으로 파산하면 이 돈을 다 잃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직접 투자분만 반영한 것이라 펀드 등을 통한 위탁 투자 손실은 이보다 더 클 수 있다. 2021년 국민연금의 SVB 직접 투자분은 당시 주가·환율 기준으로 600억원 수준이었는데, 위탁 투자한 돈을 합친 금액은 3624억원에 달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글로벌 금융 긴축으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실물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은 그동안 스타트업의 자금을 보관하고, 부족한 자금을 빌려주며 스타트업의 재무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스타트업의 최선호 은행’으로 불렸다. 하지만 재정적 위기가 드러난 지 이틀 만에 파산하면서 미처 이 은행에서 돈을 빼내지 못한 스타트업들은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의 자금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SVB에 예금한 스타트업들은 예금자 보호 한도인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까지 즉시 되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넘는 금액은 잃을 가능성이 있다. SVB 총예금의 95%가 예금 보호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작년 말 기준 SVB의 예금 보호 한도를 초과한 금액은 1515억달러(약 200조400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당장 임금 줄 돈도 없어”

SVB의 총자산은 2090억달러로 전체 예금 규모보다 많다. SVB가 보유 자산을 모두 매각하면 고객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지만 파산 기업의 보유 자산을 제값을 받고 정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테크 업계는 SVB의 파산을 정리하는 과정이 수개월 걸리고 그 사이 재무 구조가 취약한 스타트업은 줄도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SVB엔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부터 제법 규모가 큰 업체 자금까지 묶여 있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는 30억달러의 보유 현금과 증권 잔액 중 5%가 SVB에 묶였고, TV 스트리밍 업체 로쿠도 4억8700만달러(약 6400억원) 현금이 SVB에 남아 있다고 밝혔다. 벌써부터 일부 스타트업은 대금 지급을 제때 하지 못하고 직원들의 임금 지급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오는 15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급여 날이 사태 확대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투자 회사 리퀴드스톡의 창립 파트너인 그레그 마틴은 “당장 이번 주 스타트업 재직자 수만 명이 급여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했고,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자금이 묶이면 어쩔 수 없이 해고를 추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작업장 안전 분석 스타트업 컴사이언스는 급여 지급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마케팅과 판매 비용 지출을 중지했다.

SVB 파산은 가상 화폐 업계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가상 화폐 업체 서클은 SVB에 33억달러가 묶였다.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자 이 업체가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코인 1개를 1달러와 연동하는 안정성 높은 가상 화폐) 가격은 0.87달러까지 하락했다가 소폭 회복했다. 세계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는 주말 동안 고객들의 US달러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의 현금 인출을 중단했다.

◇전 세계 충격 속 정부 개입 요구

이번 사태는 전 세계 스타트업 업계와 금융시장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0일(현지 시각) 영국의 180개 스타트업 CEO(최고경영자)들은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SVB 예금 손실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마비시킬 것”이라며 정부 개입을 촉구했다. 블룸버그는 “SVB가 캐나다, 중국, 덴마크, 독일, 인도, 이스라엘 등에도 진출해 현지에서 영업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테크 업계에서도 미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벤처 투자자 데이비드 색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미 연준 의장인 파월과 재무부 장관 옐런은 어디에 있느냐. 이 위기를 멈추기 위해 모든 예금이 안전할 것이라고 발표하라”고 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SVB 파산 사태에 대해 대규모 구제 금융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2일 CBS 방송에 출연해 “(15년 전) 금융위기 당시 대형은행 투자자와 소유주들이 구제금융을 받은 바 있다”며 “그에 따른 개혁은 우리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은행 시스템은 정말 안전하고 자본이 풍부해 회복력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는 상대적으로 타격이 작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방심할 순 없다. SVB가 국내 지점이 없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스타트업은 적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미국 테크 기업에 투자한 서학개미와 가상 화폐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투자자의 로블록스 투자액은 3000억원이 넘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신속히 대응해 우리 경제 부작용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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