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오드
이른바 ‘멀티 엔터테이너’의 시대다. 애석하게도 요즘에는 하나만 잘해선 명함을 내밀기 힘들어졌다.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실력자들이 늘어난 만큼, 하나의 직업만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시대는 저물었다. 연예계 역시 동일하다. 매년 수많은 신인이 쏟아져 나오는 장이라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완벽하게 한 분야에 통달했다고 해도 대중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고, 그 눈도장을 사라지지 않도록 발버둥 치지 못하면 살아남기는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아이돌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무리 아이돌의 수명이 늘어났다고 한들 10년 남짓. 예능에서 고정 멤버로 활약하거나 연기 활동까지 병행하는 모습은 그들의 수명 연장 방법이다. 반대로 배우나 개그맨이 음악 활동에 도전하는 사례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배우는 작품 속 가수 역할을 계기로 음원을 발매하는 경우가 있고, 개그맨은 지방 행사를 위해 음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연예계에서 한 사람이 다양한 역할을 맡는 것은 우리 일상에 익숙하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지금부터 주목할 변화는 조금 다르다. 기존 방송 문법에서 연예인으로 분류되던 사람들이 아니라 ‘아티스트’로 분류되던 이들이 케이팝 씬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 못지않은 콘셉트와 퍼포먼스, 음악을 선보이며 케이팝의 정의를 새로 써나가고 있다.

먼저 PD 재재, 유튜버 승헌쓰, 댄서 가비로 구성된 혼성 그룹 재쓰비(JASSBEE)를 소개하려 한다. 비연예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그룹이지 않을까 싶다. 웹 예능 문명특급에서 일회성 프로젝트 그룹으로 시작한 재쓰비는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며 대표 혼성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후 디지털 싱글 발매는 물론 드라마 OST까지 참여하며 활동 반경을 넓혔고, 침체기를 겪던 문명특급 역시 재쓰비를 계기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할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데뷔 과정의 진정성이었다. 디지털 싱글 발매 예산을 모으기 위해 정식 데뷔 전부터 괴산 고추 축제, 추풍령 가요제 등 지역 축제를 돌며 행사 비를 모았다. 행사에 바로 투입될 정도로 준비된 인재답게 셋 모두 안정적인 가창력과 퍼포먼스에다 무대 매너까지 일품이다. 오랜 기간 합을 맞춘 팀처럼 팀워크도 끈끈해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와 데뷔까지의 재쓰비의 서사를 모두 담은 〈너와의 모든 지금〉 뮤직비디오는 재쓰비 프로젝트를 꾸준히 지켜본 팬들에게는 뭉클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승헌쓰의 변화가 눈에 띈다. 성격 탓에 방송 활동에 다소 소극적이던 그가 점차 시간이 지나며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곡의 고음과 애드리브를 책임지는 메인보컬의 역할을 200% 해낸다. 재쓰비의 진정성 넘치는 모습에 반한 필자는 한강 변에서 열린 게릴라 콘서트에 참여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재쓰비를 응원하는 팬이 되었다.

가비는 이후에 홀로서기에도 나섰다. 디스코 장르의 싱글 〈Bromm, Taki〉를 발표한 것이다. 댄서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하는 디스코는 가비가 원래부터 하고 싶던 음악이었다고 한다. 자체 유튜브 채널 퀸가비에서 비하인드를 공개하며 홍보를 함께 진행했다. 얼마 전 음악 방송 〘쇼챔피언〙에서 친한 댄서들이 총출동한 라이브 무대를 선보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단지 안무가, 댄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치는 아티스트로 영역을 확장한 셈이다.

다음으로 주목할 인물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배다. 이사배는 ‘얼굴은 선미, 보컬은 청하, 랩은 미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매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보컬, 랩, 댄스에서 꽤 수준급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무려 4곡이나 솔로 음원을 발매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엄연한 솔로 아티스트다. 라이브 방송에서 메이크업을 끝내고 나서 팬들의 신청곡을 받아서 노래를 불러주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에 자신감을 얻은 이사배는 자신의 유튜브 엔딩곡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때 발매한 〈E.N.C〉로 〘뮤직뱅크〙에 출연하며 많은 이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 놀라움을 주었다. 가장 최근에는 〈SPECTRUM〉이란 곡으로 물 만난 물고기 그 자체를 보여줬다. 댄스 퍼포먼스를 장착한 하우스 음악으로 한층 본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는데, 성공적이었다. 찰진 래핑과 완성도 있는 댄스로 가수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했다. 오랜만에 음악 방송 무대에 오른 이사배는 웬만한 아이돌 뺨 치는 라이브와 춤 실력으로 케이팝 팬들에게 큰 호평을 얻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장면이 그리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직 '가수도 아닌데 왜 음악 방송에 오르냐'는 시선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에게 멀티 엔터테이너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금, 갈고 닦은 역량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모습 자체가 힙하고 멋있게 받아 들여진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이사배의 서사다. 무대에 오르는 가수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던 메이크업 아티스트이기만 했던 그가, 이제는 직접 무대 위에 올라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가수의 타이틀까지 거머쥔 것이다. 이사배의 가수 활동은 오늘날 케이팝이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마지막은 유튜버 남매 땡깡과 진절미로 구성된 혼성 듀오 땡절스(Dangerous)다. 땡절스는 아이돌의 활동 방식을 그대로 구현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앞서 소개한 이들과 달리 연예계에 딱히 친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리며 전문 작곡가의 곡으로 정식 뮤직비디오와 함께 데뷔했다. 심지어 〘쇼! 챔피언〙, 〘엠카운트다운〙 등 다양한 음악 방송에 출연했다. 심지어 아이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m2 채널의 〘릴레이 댄스〙에도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뮤비 리액션, 비하인드 영상, 여러 아이돌과의 챌린지 등 다양한 자체 콘텐츠를 업로드하며 정말 아이돌로 보일 정도의 왕성한 활동을 해낸다. 두 번째 싱글은 더욱 특별했다. 어머니가 직접 작사와 작곡을 맡고 땡절스가 안무를 만들며 가내수공업으로 완성했다. 아이돌의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가족이 함께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참 색다른 감동을 안긴다.
멀티 엔터테이너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배우가 가수를, 가수가 배우를 하는 것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여기에 유튜브의 범람과 셀럽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 덕택에 연예계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케이팝 역시 더 이상 아이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무대 밖에서 자신만의 전문성을 쌓아온 이들이 케이팝의 주인공으로 나서고 있다. 각기 다른 경험과 감각이 더해질수록 케이팝은 더욱 다채로운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다. 앞으로 이들이 함께 만들어갈 풍요로울 케이팝을 기대하겠다.
* 이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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