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벌어진 ‘한 바퀴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규칙이 분명한 올림픽 종목에서, 그것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월드컵 무대에서 기본 중의 기본인 ‘바퀴 수 계산’이 틀어진 채 결과가 확정됐다는 건 시스템 자체에 근본적인 균열이 있음을 드러낸 사건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명백한 실수를 인지하고도 “그게 규칙”이라는 식의 판정 유지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선수는 다름 아닌 한국 여자 중장거리 간판 박지우였다.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은 총 16바퀴를 도는 레이스였다. 익히 알려져 있듯 매스스타트는 단순 기록 싸움이 아니라 전략과 전술, 위치 선정, 체력 안배가 승부를 가르는 종목이다. 4·8·12바퀴를 통과할 때마다 스프린트 포인트가 주어지고, 마지막 16바퀴째 결승선 통과 순서에 60점짜리 가장 큰 점수가 걸려 있다. 초반부터 무리해서 치고 나갈 것인지, 후반 승부를 위해 체력을 아낄 것인지, 각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치밀하게 짜온 ‘플랜’이 그대로 빙판 위에 펼쳐지는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1차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는 이 기본 전제가 통째로 붕괴했다. 레이스가 막바지로 접어들던 순간, 선두권을 이뤘던 미국의 미아 망가넬로, 캐나다의 발레리 말타이스, 네덜란드의 벵테 케르크호프, 일본의 호리카와 모모카가 15번째 바퀴에 진입하는 순간, 트랙 옆 랩 카운트 보드에는 ‘1’이 떴고, 동시에 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정상이라면 이 타이밍은 ‘2바퀴 남음’이 표시되었어야 한다. 선수들은 계기판과 종소리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네 명은 15바퀴째를 결승 바퀴로 착각하고 전력 스퍼트를 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속도를 늦추며 ‘레이스 종료’ 모드에 들어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반면 박지우를 비롯한 후미 그룹은 냉정했다. 남은 바퀴 수가 아직 2바퀴라는 점을 정확히 인지했고, 규정된 16바퀴를 끝까지 소화했다. 중요한 건 이 다음이다. 결과적으로 ‘룰을 지킨 선수들’과 ‘오류가 난 시스템을 따른 선수들’이 뒤섞인 상태에서 레이스가 끝나버렸고, 심판진은 장시간 회의를 이어간 끝에 믿기 힘든 결정을 내린다. 바로 ‘15바퀴 통과 순서’를 기준으로 최종 순위를 확정한 것이다.
이 결정 한 줄에 선수들의 전략, 훈련, 희생, 그리고 올림픽 출전 레이스 전체가 농담처럼 취급되고 말았다. 16바퀴를 모두 돈 박지우는 규정대로라면 마지막 결승 바퀴를 가장 먼저 통과한 선수, 즉 60점을 가져가는 우승자가 돼야 했다. 그러나 ISU가 공개한 공식 결과지에서 박지우의 이름 옆에는 ‘10위’가 적혀 있다. 기준 기록은 16바퀴가 아니라 15바퀴 통과 시점의 랩타임이었다. ISU 입장에서는 “종이 울린 시점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이밀었겠지만, 규칙서 어디에도 ‘심판의 실수가 경기 규칙을 대체한다’는 조항은 없다.

더 아쉬운 건 이 종목의 특성이다. 매스스타트는 후반 승부가 핵심인 종목이다. 박지우는 원래도 마지막 바퀴에 강점이 있고, 이번 경기 역시 후반부 승부를 염두에 둔 운영을 펼치고 있었다. 초반부터 종종 선두를 빼앗아 가며 스프린트 포인트를 쌓는 유형이 아니라, 마지막 결승 바퀴에 맞춰 속도와 체력을 조절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종소리와 계기판 오류로 인해 ‘결승 바퀴’ 자체가 사라져버린 셈이니, 애써 준비해온 전략은 시작도 못 해보고 무력화됐다. 이건 ‘폼이 아쉬웠다’거나 ‘운이 나빴다’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기 운영의 기초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선수들을 배신한 사례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월드컵 시리즈에는 내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출전권이 직결되는 랭킹 포인트가 걸려 있다. 매스스타트의 경우 월드컵에서 한 번이라도 우승하면 랭킹 포인트 60점을 얻어 사실상 올림픽 티켓을 예약하는 구조다. 박지우는 이번 판정 하나로 사실상 ‘한 번에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메달과 60점이 사라진 자리엔 15바퀴 기준 10위라는 초라한 숫자만 남았다. 경쟁국 입장에서 보면 ‘종이 잘못 울렸던 한 번의 실수’로 경쟁자 하나를 효과적으로 제쳤다고도 볼 수 있는, 지나치게 큰 불균형이다.

한국 빙상계의 대응도 속전속결이었다. 현장에서 지도자진이 즉각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하루 뒤 대한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ISU)에 공식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다만 ISU 관계자들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논리는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종이 울린 상황을 우선했다”, “과거 사례상 판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식의 반응은, 자신들의 명백한 실수를 규칙의 일부로 포장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특히 “그게 규칙”이라는 식의 태도는 선수들의 희생과 준비 과정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매스스타트는 그동안도 ‘판정’과 ‘운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종목이었다. 집단으로 출발해 몸싸움과 라인 경쟁을 벌이는 특성상 반칙과 파울, 페이스 조절, 추월 등에서 심판의 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그래서 더더욱 랩 카운트와 종소리 같은 기계적 요소는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된다. 선수들은 자신이 세운 전략과 순간 판단으로 승부를 보고 싶어하지, 심판의 실수 여부를 눈치 보며 레이스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가 더 잘 탔다’가 아니라 ‘누가 심판의 실수를 잘 읽었나’로 결과가 갈리는 종목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서 ISU가 했어야 할 최소한의 조치는 무엇일까. 첫째, 심판진의 명백한 실수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선수들에게 사과하는 것. 둘째, 규칙과 경기운영 세부지침을 다시 검토해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것인지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번처럼 종을 잘못 쳐놓고도 “종이 울린 시점이 기준”이라는 논리를 고집한다면,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마지막 두 바퀴를 남겨놓고 종이 울려도 그 시점 통과 순서가 순위가 되는, ‘룰이 뒤집힌 경기’를 또 보게 될지도 모른다.
셋째, 기술 시스템에 대한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 매스스타트는 전광판, 랩 카운트 보드, 오디오 신호가 정교하게 연동돼야 하는 종목이다. 단순히 사람 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전자 계측과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사람이 실수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월드컵 대회에서조차 이렇게 허술한 운영이 이어진다면, 향후 올림픽 본선에서는 더 큰 논란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가장 안타까운 건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선수들이다. 박지우는 청소년올림픽 때부터 1500m와 매스스타트를 제패하며 한국 여자 중장거리의 미래로 주목받았고, 삿포로·하얼빈 아시안게임 팀추월 메달로 꾸준히 성장해 온 ‘대표 얼굴’이다. 누구보다 올림픽 무대를 향해 성실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던 그에게 돌아온 선물은 세계를 상대로 보여준 경기력에 대한 박수나 존중이 아니라 “종이 잘못 울렸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냉담한 판정이었다. 선수 입장에서는 허탈함을 넘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 때문에 커리어의 중요한 갈림길이 좌우되는 경험을 한 셈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어차피 월드컵은 여러 차례 열리고, 다음 기회도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 포인트는 누적 싸움이다. 하나의 금메달, 하나의 60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시즌 전체를 설계하고, 대회를 배분하고, 훈련과 컨디션 조절을 짜 맞춰온 선수들에게 ‘플랜 A’를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퍼즐 조각이다. 이 한 조각이 빠졌다는 건 이후 대회 일정이 꼬이고, 컨디션 관리가 달라지고,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판정 하나가 선수 커리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안다면, 심판과 연맹은 지금보다 훨씬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결국 이 사건은 한 경기, 한 선수의 억울함을 넘어 국제연맹과 심판 시스템의 신뢰 문제로 이어진다. 팬들이 스포츠를 보는 이유는 ‘공정한 룰 안에서 최고의 실력을 겨루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룰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조차 실수가 반복되고, 그 실수를 덮기 위해 애매한 규칙 해석이 동원된다면, 누구도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욱이 이번 월드컵은 올림픽 예선전의 일환이다. 올림픽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엄격하고 공정해야 할 무대를 향한 여정에서 이런 수준의 오심과 운영은 결코 용납되기 어렵다.
대한빙상연맹이 ISU에 보낸 항의 공문이 당장 판정을 뒤집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국제무대에서 이런 황당한 장면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만드는 출발점이 되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일을 겪은 박지우와 한국 선수들이 억울함과 허탈감을 털어내고 다시 빙판 위에서 자신의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도록, 국내 팬들의 응원과 지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규칙을 지킨 선수가 손해 보지 않는 경기, 준비한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는 무대. 우리가 스포츠에서 기대하는 건 결국 그 단순한 정의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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