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흙 기와 아래 '존중' 주고 받는 책방

경남도립남해대학 후문에서 100여 m 걸어가니 주택가 한가운데 흙 기와로 된 집이 보인다. 꽃이 심어진 마당을 건너 안을 들여다보니 마주 보는 벽면 가득 책들이 꽂혀있다. 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 구비된 실내화로 갈아 신는다. 나머지 한 개 문을 열고 마저 들어섰다. 공간 정중앙 기다란 책상에 책이 놓여 있다. 중앙 천장은 움푹 들어간 박공널 천장이다. 오른쪽엔 'ㄱ' 자 모양으로 만들어진 작은 바테이블이 있다. 그 안쪽으론 커피를 내리는 도구들이 나열돼 있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6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큰 책상이 있다. 책과 진한 나무 색의 가구들, 노란 조명과 가사 없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진 이곳은 올해 3월 1일에 문을 연 책방 '흙기와'다.

남해군 남해읍에 새로 생긴 책방 흙기와. /백솔빈 기자
책방 흙기와를 운영하는 최창혁(오른쪽)·신지영 부부. /백솔빈 기자

책방은 최창혁(43)·신지영(42) 부부가 열었다. 둘은 원래 서울에서 살았다. 딱히 도시에서 사는 게 힘들진 않았지만, 온전한 자기 소유 공간을 가지기 어려웠다. 더불어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강원도 원주·강릉 경기도 양평·파주, 제주도 등을 돌며 살만한 지역을 물색했다. 그런 중에 남해에 마음이 끌렸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책방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남편 최 씨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보다 의미를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공간에 어떤 의미를 더하고 싶은지를 찬찬히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의미를 찾는다면 행동과 구색은 저절로 따라온다. 어떤 공간을 운영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하고, 치열히 고민했다.

최 씨는 인간은 의미 없이 태어났으니, 내일 당장 죽어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 역시 물질대사를 하며 살아가는 생명체이므로 그냥 무의미하게 살 순 없다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그는 매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는 윤리와 아름다움이다. 책방은 이 중 윤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달리 말해, 그에게 '흙기와'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 것인지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사람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에 윤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흙기와'의 의미는 책과 책방을 매개로 상대와 대화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 관계 맺을 때 선명해진다.

책방 흙기와 한쪽 벽면에 가득 꽂혀 있는 책들. 책들은 손님들을 배려하고자 비스듬히 꽂혀 있다./백솔빈 기자
최창혁·신지영 부부가 책방 흙기와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백솔빈 기자

이 과정에서 전제돼야 할 것은 바로 존중이다. 각자의 현실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게 대화의 기본이자 관계 맺기의 첫 시작이다. 그래서 최 씨는 책방에서 '존중을 팔기'로 결심했다. 그는 특정 책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고자 책장에 책을 비스듬히 꽂았다. 천장의 높낮이를 달리 한 것도 책방 속 특정 공간에서 머물길 선택한 손님들이 그 순간에 최대한 집중하도록 한 배려다. 커피도 기계가 아닌 손으로 내리며 커피 한잔을 예쁘게 상차림 한 후 낸다. 휴지를 대신해 직접 만들고 세탁한 손수건을 건넨다.

그렇게 5년간 존중을 담은 공간으로 꾸미다 보니 올해에야 겨우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책방을 만든 의도가 잘 작동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방 곳곳에서 대화를 나누며 웅성거릴 때,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대접받는 것 같다'고 말하는 손님을 만났을 때, 책방을 다시 찾는 이들이 많아질 때 등이 그렇다.

책방 문을 처음 열었을 즈음 최 씨가 노트에 쓴 글귀가 있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존엄할 수 있는 공간.'

최 씨는 책방 '흙기와'가 이 글귀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계속 애쓸 예정이다. 누구보다 그를 존중하며 묵묵하고도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아내 신 씨에게 늘 감사하면서 말이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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