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부흥 기조가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콕 집어 미국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최근 두 회사가 발표한 800조 원대 국내 투자 계획에 대해 미국 정부가 노골적인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자국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의 대규모 투자를 발판 삼아 한국 기업들을 압박한다.
마이크론이 미국 내 생산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하자, 상무장관은 한국 기업들이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미국으로 와야 할 것이라며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
이는 글로벌 메모리 패권을 쥐고 있는 한국 기업의 전공정 시설까지 미국으로 끌어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55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 단지를 조성 중이며, SK하이닉스 역시 인디애나에 5조 원 규모의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HBM 등 핵심 전공정 생산 시설의 현지화다.
이미 충분한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추가적인 현지 생산을 요구받는 상황이라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 미국에 메모리 전공정 공장을 짓는 것은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
높은 인건비와 건설비는 물론, 국가핵심기술인 HBM 관련 공정의 해외 유출 우려와 규제 문제도 걸림돌이다.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하게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과 SK의 800조 원대 국내 투자 발표 직후 이런 요구가 나온 것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한층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한국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자국 중심의 제조업 육성 정책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다.
앞으로 보조금 지원과 관세를 무기로 한 미국 정부의 추가적인 투자 요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기업은 미국의 압박 속에서 외교적 해법과 경제적 실리를 동시에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았다.
기술적 우위를 지키면서도 미국 정부의 요구를 어떻게 적절히 조율할지가 향후 반도체 산업의 명운을 가를 핵심 변수다.
기업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대응과 세밀한 협상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