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에 만든 '김일성 암살부대'가 있었습니다. 작전 실행도 못 한 채, 3년 뒤 부대원들이 서울에서 자폭하면서 끝났어요.
실미도 684부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5가지 사실을, 위키·나무위키·국가기록원·뉴스1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1.21 사태 직후 — 김일성 암살을 위한 신생 북파부대
1968년 1월 1·21 사태(김신조 청와대 침투)가 발생한 직후, 김형욱 중정부장은 김일성 등 북한 수뇌부를 암살하는 보복 임무를 위해 신생 북파공작 부대를 만들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공군 2325부대 209파견대, 통칭 684부대였습니다.

1968년 4월 창설 — 인천 실미도, 31명 규모
684부대는 1968년 4월부터 인천 무의도 인근 실미도에서 본격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31명의 부대원들이 가혹한 훈련을 받으며 김일성 암살을 목표로 준비했습니다.

미·북 데탕트 분위기 속 임무 보류 — 부대원 처우 악화
1969~1971년 사이 미·북 관계가 데탕트 국면으로 풀리면서, 정부는 684부대의 작전 투입을 사실상 보류했습니다. 임무는 사라졌지만 부대는 그대로, 부대원에 대한 처우와 가혹 행위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1971년 8월 23일 — 무장 탈영, 교관 살해 후 서울 진입
1971년 8월 23일, 가혹한 대우를 견디지 못한 684부대원들이 무장 탈영했습니다. 실미도에서 교관·기간병들을 살해하고 인천을 거쳐 서울 영등포까지 진입, 군·경과 총격전을 벌였습니다.

23명 자폭, 4명 생포 후 사형 — 민간인 6명 사망
서울 한복판에서 버스를 탈취하고 총격전 끝에 부대원 23명은 수류탄으로 자폭했습니다. 부상으로 생포된 4명은 사형에 처해졌고, 총격전으로 경찰 2명과 민간인 6명이 사망했습니다.
왜 우리는 실미도를 잊지 못할까요?
실미도는 '국가가 만든 비밀 부대를, 국가가 직접 끝낸' 사건입니다. 정부가 만든 임무는 사라졌고, 부대원은 살해돼야 했고, 진실은 30년 넘게 묻혔습니다.
김일성을 향한 칼이었지만, 결국 한국 자신을 향해 휘둘러진 그 칼끝이 1971년 서울에 새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