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에서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급습해 한국인 약 300명을 포함한 475명이 현장에서 무더기로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단일 사업장 기준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단속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곧바로 대통령실과 외교경로를 통해 체포된 한국인들의 석방 협상에 나섰고 미국이 구금을 해제하기로 결정하면서 급한 불은 잡힌 상태다. 하지만 그간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 공장에서 관행적으로 활용해온 '단기비자 파견'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터질 게 터졌다" 공공연한 관행 민낯
체포된 한국인들은 대부분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방문비자(B1)를 소지한 상태로 입국해 현장 작업에 투입돼온 것으로 파악됐다. 서류상으로는 출장자나 방문객 신분이지만 실제로는 공장 건설과 가동을 돕는 근로를 해온 것이다. 이런 편법파견 관행은 그동안 업계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이례적으로 강경한 미 당국의 단속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사실 미국 단기비자를 이용한 한국 기업 인력의 불법근로 문제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20년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도 협력 업체를 통해 파견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된 전례가 있었다. 당시에도 미 당국은 ESTA로 입국해 근무한 한국인 13명을 체포했다. 직전에는 입국하려던 한국인 기술자 33명을 공항에서 강제 송환하기도 했다. 미 당국의 수사 결과 SK 측 하청 업체들이 정식 취업비자 없이 한국 인력을 불법 고용해온 정황이 드러나자 미국 정치권에서도 '현지 일자리 창출 약속을 저버렸다'는 거센 비판이 일었다.
당시 SK는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라 하청 직원"이라며 책임을 부인했지만 미 의회 인사들은 한국인 용접공들이 단체로 불법 근무 교육을 받았다는 제보까지 공개하며 수사를 압박했다. 결국 이들은 모두 추방됐고, SK는 현장출입 통제 강화와 미국인 우선고용 방침을 약속했다.
SK 사례 이후에도 현대차·LG엔솔 공장 등 여러 한국 기업들은 유사한 방법으로 현지에서 인력을 운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가 "미국에 새로 투자한 기업들은 대부분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증언할 정도로 본사 직원을 단기비자로 급파하는 편법이 업계의 공공연한 관행이었다. 실제로 수많은 기업들은 최근까지 출장직원의 ESTA 활용에 의존해왔으며 'ESTA 출장 시 2주 이내 체류' 등 내부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을 정도다.
90일 출장 인력, 왜 일상이 됐나?
한국 기업들은 왜 이러한 편법을 반복해왔을까.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미국 비자 제도의 경직성이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비자면제프로그램(VWP) 가입국의 90일 이내 관광·단기출장에는 ESTA를 이용한 입국을 허용하지만 정식 취업에는 별도의 워크비자를 받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필수 기술인력을 위한 취업비자 발급이 매우 까다롭고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L1·E2 등 주재원·투자비자 승인에는 복잡한 요건과 함께 최소 수개월의 처리기간이 소요된다. 전문직 비자인 H-1B는 매년 연초의 신청·추첨을 거쳐야 해 긴급한 인력 투입에는 쓸 수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기 상용비자인 B1조차 발급에 한 달 이상 걸리는 상황이라 급하게 현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대기업 직원들이 ESTA만 받아 출장을 가는 일이 잦았다"며 "90일 안에 문제만 해결하고 복귀하면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밝혔다.

공정 지연에 대한 압박과 숙련인력 부족도 중요한 배경이다. 대규모 투자가 집행되는 첨단산업 공장의 경우 예정된 공사기한과 가동일정 준수가 사업의 성패와 직결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장에 문제가 생기면 본사의 숙련된 엔지니어를 즉시 투입해 일정 지연을 막는 것이 우선과제다. 하지만 미국 지방의 공장에서는 숙련공이나 기술자를 구하기 어려워 한국 본사 인력을 단기 파견하는 관행이 굳어졌다.
문화와 제도 간의 간극도 존재한다. 한국은 발주자가 지시하면 시공사가 즉각 이행하는 문화지만, 미국 건설업은 철저히 계약과 문서 중심으로 움직인다. 설계가 달라지면 변경요구서와 비용 검토, 정식 승인이 필요하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재원 담당자들은 의사결정에 혼선을 빚으며 그사이에 공기가 늘어나고 비용도 불어난다. 미국 시공사들은 이런 허점을 간파해 합법적인 절차로 청구 비용을 늘린다. 결국 한국 기업에서 짠 예산과 일정이 현실과 괴리를 보이고 이를 메우기 위해 본사 인력을 더 많이 쓰는 구조가 된다.
현대차와 LG엔솔은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동시에 책임 당사자로 거론된다. 수조원대의 투자를 앞세워 미국 지역사회에 기여한다고 강조해왔지만, 정작 기본적인 인력관리와 법적 리스크 통제에 허술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다. 이미 과거 사례가 있었음에도 똑같은 편법을 되풀이했고 그 과정에서 협력 업체에 책임을 전가하려 한 흔적도 보인다. 결국 현대차와 LG엔솔은 투자 명분만큼이나 무거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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