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에 열광한 로마…'하는' 스포츠 멸종, '보는' 것만 남아

2024. 10. 5. 00: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허진석의 스포츠 라운지
로마의 콜로세움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서기 393년, 고대올림픽이 폐지됐다. 올림픽 경기장 스타디온(Stadion)도 주경기장의 지위를 내놓았다. 그 자리를 콜로세움이 차지했다. 콜로세움은 첨단을 자랑한 로마 건축 테크놀로지의 결정판이다. 로마에 가서 콜로세움 앞에 서 본 사람은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는 괴테의 선언을 이해한다.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아치들을 1층은 토스카나 양식, 2층은 이오니아 양식, 3층은 코린트 양식의 둥근 기둥으로 떠받든 거대하고도 유려한 선율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콜로세움과 같은 대규모 원형경기장이 로마에만 있지는 않았다. 로마는 지중해를 호수로 만들어버린 제국이었다. 프랑스의 님과 아를, 이탈리아의 베로나와 카푸아, 유대 땅 예루살렘에도 경기장을 지었다. 북아프리카에도 많다. 튀니지 엘젬의 원형경기장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그러나 콜로세움은 유일한 존재다. 콜로세움이란 명칭은 경기장 앞에 세운 네로 황제의 동상 ‘콜로소’에서 비롯됐다. 콜로소는 ‘거대하다’는 뜻의 라틴어 콜로수스(Colossus)에서 나온 말이다.

“20번 싸워 6번 졌다”는 검투사 기록도
로마는 왜 콜로세움을 지었을까. 왜 도시마다 경기장이 필요했을까. ‘팍스 로마나’로 집약되는 제국의 정책 중에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가 있다.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가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 놀거리를 만들어 거기 몰두하게 만들면 국민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민정책이다. 제5공화국 정권이 선택한 ‘3S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스포츠(Sports), 섹스(Sex), 스크린(Screen).

미국 로마 문화 연구소의 다리우스 아리야 교수는 콜로세움에서 로마의 민주주의와 개방성을 본다. 밖으로 황제의 권력을 과시하고, 안으로는 시민들과 만나 소통하는 정치 무대로 본 것이다. 콜로세움은 황제가 민중의 지지를 구하고 민중은 자신들의 요구를 드러내는 정치적 공간이었다. 절대 권력의 상징인 로마의 황제조차 민중과 소통했다는 사실을 2000년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로마 검투사의 세계를 다룬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는 로마 황제 콤모두스(호아킨 피닉스). [중앙포토]
콜로세움의 이미지는 피와 죽음이다. 맹수와 인간의 싸움, 굶주린 맹수가 집행한 기독교도들의 처형…. 강렬하기로는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검투사들의 대결과 비교할 것이 없다. 황제의 엄지손가락이 하늘을 향하는지, 땅을 향하는지에 따라 패자의 목숨이 오갔을 장면을 떠올리면 숨이 가빠진다. 상상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 콜로세움은 투기(鬪技) 경기장이다. 공사를 마쳤을 땐 기념 삼아 100일에 걸쳐 투기 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현대인이 보기에 ‘콜로세움+검투사=죽음’이다. 그러나 검투사들은 ‘파리 목숨’이 아니었다. “스무 번 싸워 여섯 번 졌다”는 한 검투사의 기록이 로마에 남아 있다. 검투사 양성에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로마 시민을 만족시킬 만큼 뛰어난 검투사는 귀했다. 콜로세움에서 죽은 검투사들은 대개 경기 중 사고를 당했거나 반칙을 한 대가를 치렀다. 경기에 진 다음 죽은 경우는 10% 안팎으로 추정된다. 사망률 10%는 물론 낮지 않다.

일류 검투사는 아이돌 못잖았다.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재에 덮인 폼페이의 건물 벽에는 트라키아 출신의 검투사 셀라두스를 ‘여인의 한숨과 영광(suspirum et decus puellarum)’이라고 표현한 낙서가 선명하다. 검투사 되기를 열망한 황제도 있다. ‘로마의 헤라클레스’를 자처한 사나이, 콤모두스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가 황제일 때 로마엔 망조가 들었다’고 했다. 콤모두스가 검투사의 인기를 시샘했는지, 영웅적인 이미지를 선망했는지 알 수 없다.

로마 검투사의 세계를 다룬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는 검투사 막시무스 데시무스(러셀 크로우). [중앙포토]
콜로세움을 장식한 피의 잔치는 흔히 로마 멸망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에드워드 기번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쓴 『로마제국쇠망사』는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부터 서로마제국의 멸망, 동로마제국의 건설과 멸망까지 2세기에서 1453년에 이르는 약 1300년간의 역사를 다뤘다. 런던에서 태어난 기번은 1763년에 유럽 대륙 여행을 시작했는데, 로마에서 카피톨리움의 폐허를 답사한 뒤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1776년 첫 권을 냈고, 1788년까지 여섯 권을 썼다.

기번은 로마 멸망의 원인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이혼의 증가로 인한 가정 파괴, 둘째 과다한 세금과 지나친 소비 풍조, 셋째 쾌락에의 탐닉과 스포츠의 잔혹화, 넷째 군비를 확장했으나 내부의 적을 방치, 다섯째 종교의 타락과 쇠퇴 등이다. 이 가운데 셋째 원인으로 지목된 쾌락에의 탐닉과 스포츠의 잔혹화는 타락하고 나약해진 로마인들의 내면세계로부터 제국의 뿌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로마는 에트루리아와 카르타고, 갈리아 등 강적들을 제압하고 제국을 건설했다. 병사들은 로마인이라는 자부심에 충만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는 한니발의 침입으로 시작된 제2차 포에니 전쟁 초반 주요 회전(會戰)에서 로마군이 전멸한 이유를 적에게 등을 보이는 행위를 불명예로 생각한 그들의 정신에서 찾았다. 로마 정신은 김나지움에서 성장했다. 청소년들이 공부와 운동을 한 장소다. 달리기·창던지기·검술과 같은 ‘국방체육’은 중요한 교과 과정이었다.

학교 체육 현실, 검투사 시대보다 엄혹
로마의 체육은 당시로서는 세계의 대부분으로 인식된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근동을 제패한 이후 쇠퇴하였다. 후기 로마의 체육은 직업군인이나 직업 경기자의 몫이 되었다. ‘하는 스포츠’는 멸종되고 ‘보는 스포츠’만 남았다. 검투사 경기를 보라. 한때 제국의 명운을 갈랐던 전투가 시민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김나지움에서 싹트고 자란 로마 정신은 사라졌다. 정신의 소멸은 공동체의 소멸로 이어지고, 나아가 한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다.

김나지움은 독일에서 학교,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체육관을 뜻한다. 필자는 한국체대에서 매학기 첫 시간에 신입생을 상대로 같은 이야기를 한다. “체육은 교육의 한 체계다. 교육의 목표를 지덕체(智德體)의 함양에 두지만 이 순서가 서열은 아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처럼 본질이 같다.” 여기엔 함정이 있다. 운동만 잘하면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오해. 운동하는 학생의 학습권과 최저학력제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도 뿌리는 같다.

“운동하면 공부와는 벽을 쌓는다는 인식 때문에 부모가 운동하겠다는 자녀를 말리는 상황이다. 학습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학교 체육을 정상화하고 인권침해 등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학습권이 보장돼야 한다.”(정용철 서강대 교수)

“운동을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이 진입단계에서부터 운동과 학업 중 선택의 기로에 선다. 저출산이 심각한데다 스포츠의 저변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인 초등학생들부터 학습권 보장이 안 되면서 스포츠 저변은 엉망이 됐다.”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

“‘학습권=최저학력제’는 합의되지 않은 정의다. ‘최저학력’이라는, 있지도 않은 용어를 사용하며 학습권을 보호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학생 선수들이 어느 정도 학습해야 최저학력에 도달하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박재현 한국체대 교수)

문제는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다. 한국체대만 해도 계절학기·집중수업·이동수업 등 학생 선수들을 위한 제도가 완벽하다. 그러나 제도가 학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연중 합숙, 새벽부터 시작되는 고강도 훈련, 전지훈련과 대회…. 학생 선수들은 무쇠가 아니다. 교수들은 강의실에서 그들의 고통을 목격한다. 체육대학을 지금처럼 운영하려면, 학생 선수를 위한 강좌와 과정이 따로 있어야 한다. 공부선수와 운동선수에게 같은 강의를 해서는 안 된다.

학생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운동에 전념했다. 그 결과 얻어낸 기량과 성과가 진학과 취업의 밑천이 된다. 학교는 검투사훈련소, 경기장은 콜로세움일 수밖에 없다. 현실은 검투사의 시대보다 엄혹하다. 경기에 진 콜로세움의 검투사도 목숨은 지켰다. 현대의 검투사들에게 패배는 일시적으로라도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낙오’ ‘도태’ ‘방출’…. 운동을 포기하고 합숙소를 떠난 학생들의 방황은 길고 위태롭다. 학교에서라도 패배는 또 다른 기회여야 한다. 학교가 지켜야 할 것이 많다.

허진석 한국체육대 교수. 스포츠 기자로 30여 년간 경기장 안팎을 누볐으며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지냈다. 2023년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하고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