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보다 맛에 가치 한 끼에 수십만원도… 셰프들의 꿈 미슐랭 ★★★ 국내 단 1곳[10문10답]

안진용 기자 2024. 10. 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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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흑백요리사’로 본 파인 다이닝의 세계
요리예능 열풍에 미식 재조명
흑백셰프 100명 식당 유명세
웨이팅만 최소 한달 걸리기도
미슐랭 1년 5, 6회 방문 평가
‘여행가 먹을 가치’가 3스타
안성재 ‘모수’가 국내선 유일

내로라하는 셰프들의 요리 대결을 그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흑백요리사)이 꺼져가던 ‘먹방’ 열풍에 다시 불을 댕겼다. 이 예능에 참여한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은 매진 세례를 이어가고 있고 비싸지만 가치 있는 한 끼, 즉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이 화두로 떠올랐다.

1. 파인 다이닝이란?

쉽게 말해 ‘질 좋은 식사’를 뜻한다. 주로 실력이 빼어난 셰프가 좋은 재료로 조리한 후 예쁘게 플레이팅(plating·음식을 그릇에 담는 행위)한 음식을 대접하는 고급 식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프랑스식 최고급 요리를 뜻하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이 그 뿌리라 할 수 있으며, 오트 퀴진은 1900년경 조르주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라는 전설적인 요리사가 확립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국내에서는 2016년 ‘2017 미슐랭 가이드 서울’이 처음 출간되고 별점을 받는 식당의 명단이 공개되면서 파인 다이닝에 대한 인식이 확대됐다. 다만, 파인 다이닝을 추구하는 식당은 대부분 상당히 고가의 음식 가격을 책정한다.

2. 미슐랭 가이드란 무엇인가?

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 회사인 ‘미쉐린’이 매년 봄 발간하는 식당 및 여행 시리즈다. 미쉐린을 프랑스어로 ‘미슐랭’이라고 읽는다. 1889년 앙드레와 에두아르 미슐랭 형제가 자신들의 이름을 딴 타이어 회사를 설립했다. 그들은 자동차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면 자동차와 타이어 판매도 늘 거라고 예상하며 여행 안내 책자를 제작했다. 이 안에는 지도와 타이어 교체 방법 외에 먹을 곳, 잘 곳의 목록 등 실용적인 정보를 실었다. 당초 20년간 무료로 제공됐으나, 앙드레가 한 타이어 가게에 방문했을 때 이 가이드북이 고작 작업대 받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본 후 “사람들은 돈을 내고 산 물건만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을 깨닫고 1920년부터 새로운 미슐랭 가이드를 발행, 7프랑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 세계 3개 대륙, 30여 지역에서 레스토랑과 호텔 3만여 곳을 평가하고 있으며, 누적 3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3. 어떤 방식을 거쳐 선정하나?

미슐랭 가이드가 소개하는 레스토랑 섹션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자, 형제는 ‘미스터리 다이너’ 또는 ‘레스토랑 인스펙터’로 불리는 비밀 평가단을 모집했다. 이들은 신분을 숨긴 채 오늘날의 평가원처럼 레스토랑을 방문해 음식을 평가했다. 평가단원은 요식업이나 호텔 등 관련 업계 종사 경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각 식당이 편차 없는 맛을 꾸준히 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1년에 걸쳐 5∼6차례 방문한 후 평가가 진행된다. 평가단원은 절대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며, 당연히 음식값을 지불한다. 몇몇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식 맛을 본 평가단원들이 그 자리에서 극찬한 후 별점을 줬다는 건 허구다. 이렇게 훌륭한 식당을 선정하여 별점을 주는 평가 방식은 1926년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처음에는 별 1개를 주는 것으로 시작해 5년 후에는 등급에 따라 0부터 3개까지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4. 별 1, 2, 3개를 나누는 기준은?

미슐랭 가이드는 여러 보완 과정을 거쳐 1936년부터 현재의 별점 평가 등급의 기준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1스타는 ‘요리가 훌륭한 레스토랑’(High-quality cooking, worth a stop)을 의미하며, 2스타는 ‘요리가 훌륭해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Excellent cooking, worth a detour)을 뜻한다.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는 3스타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특별히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Exceptional cuisine, worth a special journey)을 의미한다. 부여된 등급은 1년간 유지된다.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에 대한 완벽성, 요리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 등을 복합적으로 평가한다. 별점을 받는 스타 레스토랑 외에 가성비 좋은 식당들은 ‘빕 구르망’으로 분류한다.

미슐랭 가이드는 지난 2월 ‘서울 & 부산 2024’를 발표했다. 서울 177곳, 부산 43곳 등 총 220곳의 레스토랑이 포함됐다. 2016년 서울 가이드를 발매한 이후 8년 만에 부산을 추가했다. 3스타는 여전히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으로 나선 안성재(42) 셰프가 운영하는 ‘모수 서울’이 유일하다.

5. 모수는 어떤 곳이며, 현재는 왜 운영하지 않나?

모수를 이끄는 안성재 셰프는 12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 교포다. 미국 육군 출신으로 당초 차량 정비사를 꿈꿨으나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며 캘리포니아의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루’를 졸업한 후 베벌리힐스 스시 전문점인 ‘우라사와’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이동민 셰프가 미국에서 운영하는 ‘베누’의 오픈 멤버였으며, 2016년 미국에서 모수를 열고 1스타를 획득했다. 이듬해인 2017년 한국으로 돌아온 안 셰프는 CJ그룹에서 투자받아 2017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모수 서울을 열었고, 2019년 미슐랭 1스타로 시작해 2020∼2022년 2스타, 2023∼2024년 3스타를 받았다. CJ그룹과의 투자 및 계약 문제로 현재는 휴업 중이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재오픈을 준비 중이다. ‘모수’라는 이름은 안 셰프가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 집 앞에 피어있던 코스모스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가게명으로 쓰기에 ‘모스’가 다소 어색하다고 생각해 다듬은 후 ‘모수’로 재탄생했다. 한편 취미로 복싱을 하는 안 셰프는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서 우승한 이력도 있다. 그는 “미슐랭 3스타라는 압박감 때문에 복싱을 시작했다”면서 “에너지를 분출하고 머리를 비울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는 글로벌 TV부문 흥행 순위 1위(비영어권)를 차지했다.

6. ‘흑백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 예약, 하늘의 별따기?

‘흑백요리사’의 최종 우승자는 1명이지만, 여기에 참여한 100명의 요리사 모두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명의 백수저 요리사 외에도 80명의 흑수저 요리사들도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흑백요리사’ 출연 전에도 ‘줄 서는 식당’으로 유명했는데, 요즘은 예약을 하더라도 한 달 이후에야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돼버렸다.

이런 흐름에 맞춰 예약 플랫폼 업체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흑백요리사’ 출연자들의 식당이 80% 이상 입점해 있는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흑백요리사’ 방송 한 주 만에 파인 다이닝으로 분류되는 식당 예약은 직전 주보다 150%가량 증가했다. 캐치테이블에 참여한 요리사들의 섹션을 아예 따로 마련했다. 친절하게 백수저와 흑수저 셰프의 식당도 구분해놨다. 당근은 자체 쇼트폼 서비스 ‘당근 스토리’에서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을 보여주는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중식당 홍보각을 운영하는 여경래 셰프는 문화일보와 나눈 인터뷰에서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100명의 셰프가 운영하는 업장의 예약이 꽉 찼다고 하더라. 우리 식당도 ‘한번 먹고 싶다’고 하는데, 예약이 안 잡힌다고 한다. 보통 이렇게 인기를 얻으면 3개월 정도 간다”고 말했다.

7. ‘흑백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 맛보려면 얼마면 돼?

파인 다이닝으로 분류되는 식당에 가려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가격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재오픈을 앞둔 안성재 셰프의 ‘모수’의 경우, 점심 코스 21만 원, 저녁 코스 37만 원이다. 물론 1인당이다. 최현석 셰프가 운영하는 ‘쵸이닷’은 점심 9만8000원, 저녁 19만8000원이다. 단품 메뉴도 있다. 중식으로 가보자. 여경래 셰프의 ‘홍보각’은 점심 10만∼25만 원, 저녁 12만∼45만 원 수준이고 단품의 경우 불도장 13만 원, 칠리새우 6만∼9만 원, 탕수육 4만8000∼7만 원이다. 여성 중식 요리사의 대가로 불리는 정지선 셰프의 ‘티엔미미 홍대점’은 세트가 4만∼15만 원대로 구성된다. 그는 ‘딤섬의 여왕’이라 불리는데 샤오룽바오(4P) 9000원, 바질쇼마이(4P) 1만1000원으로 합리적이다.

흑수저 셰프는 어떨까? 나폴리맛피아가 운영하는 ‘비아톨레도 파스타바’의 가을 7코스 메뉴는 8만9000원이다. 철가방요리사의 ‘도량’은 훠궈 1인분이 3만5000∼5만5000원이고, 동파육 4만 원, 차돌 짬뽕 1만5000원에 판매한다. 이 외에 트리플스타의 ‘트리드’의 경우 점심 코스 12만 원, 저녁 코스 20만 원이며, 이모카세의 ‘즐거운술상’은 저녁 한 상이 5만 원이다. 점심은 영업하지 않는다. 단, 언급된 모든 식당의 향후 한 달 예약이 이미 꽉 찼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단연 심사위원 백종원의 ‘홍콩반점’이다. 짜장면 6500원, 탕수육 대(大)가 2만2000원이다. 군만두는 반접시(3500원)도 판다. 지점이 많아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

8. 특수 누리는 서점가, 왜?

지난달 30일 서점업계에 따르면 요리 분야 도서는 ‘흑백요리사’의 첫 화가 공개되기 전주(9월 8∼15일) 대비 현재 판매량이 1.5배 증가했다. 특히 지난 8월부터 요리 분야 도서 전반에서 판매량이 한 달여 간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인 만큼 ‘흑백요리사’가 관련 도서의 판매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

서점가에서 ‘흑백요리사’의 최대 수혜자는 백수저 셰프로 출연 중인 최강록이다. 지난해 8월 출간됐던 ‘최강록의 요리 노트’는 방영 전주에 일주일간 10권도 팔리지 않던 책이 방영 후 1000부 이상이 판매되는 등 가장 극적인 역주행을 기록했다. 9월 첫 주 요리 분야 127위였던 책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해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요리 분야 전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책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간 다양한 요리 관련 저서를 출간한 백 대표의 책 가운데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시리즈의 합본 한정판인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애장판’은 그간 지속적으로 판매가 됐지만 최근 판매가 1.6배 늘면서 요리 분야 10위권에 올랐다.

9. 센스 있게 대화하려면 ‘흑백요리사’를 봐야 한다?

사실이다. ‘흑백요리사’ 출연자들의 몇몇 발언은 이미 유행어가 됐다. 그룹 방탄소년단 제이홉은 지난 2일 자신의 SNS에 “10월입니다. 굉장히 이븐(even)한 사진들로 구성해 봤거든요”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이미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다. 안성재 셰프는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와 같이 ‘이븐’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골고루, 균일하게 조리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또 다른 유행어는 ‘익힘’이다. 안 셰프는 “저는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 외에도 특유의 충청도 억양이 섞인 백종원의 “준비되셨어요?”, 합불을 결정하는 안 셰프의 “생존입니다”, 최강록 셰프의 “나야, 들기름” 등의 표현도 이미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고 대중이 SNS에서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재미의 익힘 정도’가 완벽한 ‘흑백요리사’에 심취해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 앞에서 “밥이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라고 했다가는 얻어맞기 십상이다.

10. ‘흑백요리사’ 우승자 스포일러 논란, 넷플릭스는 어떻게 관리하나?

‘흑백요리사’는 지난 1월 촬영을 마쳤다. 9월 공개하기까지 8개월간 편집 등 후반 작업을 거쳤다. 완성도를 기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미 우승자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우승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주로 해외 시청자들이 각 출연진을 담당하는 성우의 인지도를 통해 최종 우승자를 예측하고 있다. ‘흑백요리사’는 영어와 일본어, 스페인어 등으로 더빙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상황에 비유하자면, 미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유명 성우인 양지운, 배한성 등이 맡았다. 같은 맥락으로 각 나라의 주요 성우가 배정된 인물이 ‘더 오래 살아남는 출연자’로 손꼽힌다.

제작진은 함구령을 내리고 보안 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촬영에 참여하는 스태프들도 보안 유지 서약서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파기할 경우 상금은 지급되지 않고, 책임을 묻는다. 일례로 앞서 공개됐던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의 우승자 오킹이 방송 전 자신의 우승 사실을 외부에 알렸고, 그 결과 넷플릭스는 우승 상금 3억 원을 가질 권리를 박탈했다. 넷플릭스는 “프로그램의 신뢰도와 출연자 간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출연 계약상의 비밀 유지 의무를 저버려 상금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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