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무명에서 키움의 반전카드로… "배동현의 야구, 지금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김진주 2026. 4. 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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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선발 투수 배동현 인터뷰]
2021년 한화 입단 후 5년간 1군 무대는 단 한 시즌
"낙담할 시간조차 없어... 매일 뭐라도 배우려 했다"
지난해 한화 소속 형들과 어울리며 '야구 밖' 세상 배워
대졸 6년차에 프로 첫 선발승 올리며 '커리어 하이'
"친정팀 에이스 류현진과 선발로 만나 이기고 싶어"
배동현이 2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경석 기자

"한화에서의 5년은 지금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오랜 준비 끝에 이제 겨우 한 달을 잘했을 뿐이라 크게 들뜨진 않습니다. 앞으로 더 잘해야죠. 저는 이제 시작이니까요."

2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배동현(28·키움)은 인터뷰 내내 '시작'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2021년 한화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후 좀처럼 꽃피우지 못했던 자신의 야구 인생을 다시 써 내려가는 중요한 출발점이란 의미다.

올해로 벌써 대졸 6년 차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2021년 2차 5라운드 42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뒤 5년 동안 1군 무대를 밟은 건 단 한 시즌(2021년)에 불과했다. 그는 "야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 채 그저 공을 던지기 바빴던 시절이었다"며 "항상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했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더해져 제대로 된 야구를 할 수 없었다"고 돌아봤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군 복무를 선택했지만, 제대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팔꿈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돌아가면 반드시 팀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휴가까지 반납하며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인 결과였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맞은 2024시즌. 그는 2군에서 29경기 평균자책점 0.30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냈지만, 1군 기회는 끝내 주어지지 않았다. "낙담할 시간조차 없었어요. 여기서 멈추면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다고 흘러가는 대로 휩쓸려 가고 싶진 않아서 매일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어요. 그게 제 생존 방법이었죠."

배동현이 2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경석 기자

나를 일으켜 세운 건 '형들'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뜻밖에도 '야구 밖의 시간' 그리고 든든한 같은 팀 선배들이었다. 평소 야구 외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그는 훈련이 끝나면 주로 방에 틀어박혀 혼자 휴식을 취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랬던 그가 2025시즌 이민우, 엄상백(이상 한화), 이태양, 김범수(이상 KIA)를 만나고 180도 달라졌다. 훈련 후 형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게임도 하며 난생처음으로 '삶의 균형'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야구 스트레스도 풀렸고,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이 한층 즐거워졌다고 한다. "형들에게 운동 방법뿐 아니라, 멘털 관리, 일상생활에서의 태도까지 많은 걸 배웠어요. 혼자 끙끙 앓던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많았는데, 생각보다 '냉정한 피드백'이 돌아와 정신이 번쩍 들곤 했죠."

특히 엄상백의 존재는 각별했다. "당시 (엄)상백 형도 1·2군을 자주 오가며 많이 힘들었을 텐데, (2군에 올 때마다) 전혀 내색하지 않고 후배들을 먼저 챙겼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짐했죠. '나도 나중에 잘되면, 상백이 형처럼 주변을 돌아보고 돕는 사람이 돼야겠다'고요."

배동현이 2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경석 기자

'마지막'이라 여겼던 순간, 다시 시작

마음을 추스르고 재기를 준비하던 그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맞았다. 지난해 11월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키움으로 둥지를 옮기게 된 것이다. 그는 "그땐 이적이 기회가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나를 믿고 도와준 분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죄책감에 그저 눈물만 흘렸다"고 털어놨다.

그의 시선을 돌린 건 정우람 투수코치의 한마디였다. "이건 네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후 배동현은 고영표(KT) 등과 함께 사비를 들여 제주도로 개인 훈련을 떠났다. 그는 "(고)영표 형으로부터 마운드에서의 자세부터 하체 메커니즘까지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그걸 바탕으로 키움 스프링캠프에서 코치진과 함께 '나만의 것'을 찾아갈 수 있었죠."

숨은 노력은 금세 숫자로 나타났다. 22일 현재 올 시즌 5경기에서 3승(선발 2승·구원 1승)을 거둬 다승 공동 2위에 올라 있고, 평균자책점 2.61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제구가 상당히 안정되면서 9이닝당 볼넷 허용이 1.7개에 그쳤다. 1일 SSG전에선 1,767일 만에 선발 등판해 데뷔 첫 선발승을 거두며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그동안 힘들게 버텨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어요. 스스로 품어왔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배동현이 2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경석 기자

배동현은 그러나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키움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며 "올해 풀타임으로 뛰며 팀 승리를 이끌고, 순위를 끌어올리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키움은 현재 10위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더불어 친정 팀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과의 선발 맞대결도 그가 올 시즌 기대하는 장면 중 하나다. 공교롭게도 배동현은 이적 후 첫 경기에서 한화를 상대로 8회말 2사 1·2루에 구원 등판해 스리런 홈런을 맞으며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그라운드에서 만난 류현진은 "다음에 선발로 맞대결 해보자"며 의욕을 불어넣었다. 배동현은 "까마득한 후배인 나를 상대 팀 선수로서 동등하게 대해준 그 한마디에 큰 용기를 얻었다"면서도 "꼭 선발로 만나 이겨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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