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럴 줄 꿈에도 몰랐다"…오세훈의 이유 있는 고집 [이호기의 서울공화국]

이호기 2024. 9. 1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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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반대에도 서울시는 노인요양시설 드라이브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구로구의 한 재건축 단지를 방문해 주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서울시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서울 구로구의 한 재건축 대상 지역을 방문해 향후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 시장은 이날 "사업성이 낮은 지역에 분양주택을 늘려 주민 부담을 경감시키고 통합 심의 등 정비 사업 전 과정을 지원해 사업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겠다"고 약속했는데요.

그러면서도 "이곳은 장애인 복지 시설을 공공 기여할 예정으로 시민이 어우러져 사는 도시를 지향하는 바람직한 사업 추진 사례"라고 강조했지요. 실제 이곳은 2014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오 시장 취임 이후인 2022년말 시가 장애인 복지관 건립을 전제로 용적률을 상한까지 늘려주면서(988가구→1148가구) 진행 속도가 빨라졌지요.

재개발·재건축에 부정적이었던 전임 시장과 달리 오 시장은 보궐선거에 당선된 2021년부터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이라는 제도를 도입하며 시장과 업계의 기대감을 크게 높였습니다.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시가 직접 참여해 용적률 상향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신 임대주택, 복지시설 등을 기부채납받아 사업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오 시장의 생각은 또다른 벽에 부딪쳤습니다. 시에서 공공기여분으로 장애인·노인요양시설 등을 요구하자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신통치 못한 신통기획'으로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대표 단지로는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꼽힙니다. 1971년 준공된 지 50년이 넘은 이곳은 2021년 신통기획을 신청해 최고 65층으로 재건축하는 사업안이 지난해 마련됐지만 시가 이곳에 노인요양시설의 일종인 데이케어 센터를 넣겠다고 하자 거센 주민 반발이 일면서 1년 넘게 진통을 겪고 있지요. 오 시장이 첫 임기 중인 2009년 도입한 데이케어 센터는 초기 치매 등 질병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을 낮 시간 돌봐주는 시설로, 매일 등하원하는 유치원에 빗대 '노(老)치원'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오 시장은 데이케어 센터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데이케어 센터를 지을 수 없다면 신통기획도 할 수 없다"며 "재건축의 속도를 높이고자 하면서도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의무는 외면하는 이기적인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요.

오 시장의 이 같은 입장 고수에는 그의 개인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바로 자신의 노모가 중증 치매를 앓고 있기 때문인데요. 오 시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예전에 데이케어 센터를 처음 만들 때만 해도 내가 그 수혜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아내도 일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광진구 자택 인근) 센터로 모셨고 시설은 물론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잘돼 있어서 크게 만족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오 시장은 지난 4월 여의도에서 열린 서울시 한마음 치매극복 걷기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도 자신의 노모를 언급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요.

오 시장의 이유 있는 고집에 백기를 드는 단지들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서초동 서초진흥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최근 대의원회를 열고 시 측이 요구한 데이케어 센터 설치를 수용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앞서 여의도 대교아파트 역시 데이케어 센터를 짓기로 하면서 조합 설립 7개월 만인 지난달 정비계획이 확정됐지요.

현재 서울 시내 노인요양시설은 241곳(3월말 기준)으로 경기(1629곳·작년 12월말)나 인천(412곳)에 비해 크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오 시장이 과연 앞으로도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면서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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