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구일구(一球一球).
1987년 8월 25일 청보 임호균은 해태와의 경기에서 1회부터 9회까지 마운드를 지키면서 5-0 완봉승 주인공이 됐다.
승리를 위해 그가 던진 공은 73개.
1경기를 끝내는 데 가장 적은 공이 소요된 경기지만 어찌 됐든 73개의 공이 필요했다.
요즘 선발들의 기준은 보통 ‘100구’다.
100구를 안팎으로 선발이 교체된다. 모든 공이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99개의 완벽한 공을 던지고도 1개의 실투로 패전투수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공 하나는 그냥 공 하나가 아니다.
공 하나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하나의 공을 던지고, 하나의 공을 치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 KIA 좌완 이준영과 좌타 고종욱에게는 ‘일구일구(一球一球)’의 의미가 그럴 것 같다.
이준영에게는 ‘좌완스페셜리스트’, ‘슬라이더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준영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갈고 닦은 슬라이더 하나로 기복 많은 KIA 좌완 불펜진을 굳게 지키고 있다.
177㎝로 투수로서는 그렇게 크지 않은 키, 상대를 윽박지르는 무시무시한 강속구는 없다.
다양한 변화구로 상대를 현혹하는 투수도 아니다. 타자들도 안다. 슬라이더가 올 것이라는 것을.
이런 벽을 넘어서 이준영은 올 시즌 FA 선수라는 꿈을 이뤘다.
모든 야구 선수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를 꿈꾸고, FA라는 목표를 위해 달린다.
아프지 않고 꾸준한 결과를 내야 이룰 수 있는, 불펜 투수에게는 더 쉽지 않은 목표다.
언제 나갈지 모르는 기다림 속에 하루를 준비하고, 때로는 쉬지 않고 연달아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
부상 없이 짧은 순간의 대결에서 승자가 돼야 하는 만큼 화려하지 않은 불펜투수 이준영의 FA는 더 특별하다.
강렬함이 떠오르는 불펜에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이준영은 보여줬다.
이준영은 “꿈이었다. 아프지 않고, 퍼포먼스도 나와야 한다. 견디고 견뎌서 FA라는 꿈은 이뤘는데 더 잘해서 더 오래 있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역할이다. ‘좌완스페셜리스트’라는 애칭에 맞게 어느 정도 자신이 출격할 타이밍을 예상할 수 있다. 많은 공을 던지는 것도 아니다. 공 하나만 던지고 등판을 완료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공 하나’라서 더 어렵다.
이준영은 “다른 사람들은 쉬운 줄 아는데 진짜 부담되고, 힘들다. 경기 수도 많이 나가고 한 타자 상대하러 나가는 것인데, 볼넷 주면 바로 교체된다. 그럴 때 마음이 너무 안 좋다”며 “볼넷을 줄이려고 하고 안 맞으려고 한다. 멘털적으로 잘 잡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다음 타자, 다음 이닝이 있는 다른 투수들과 비교하면 이준영에게는 다음이 없다. 이준영에게 실수는 곧 실패다. 만회할 수 있는 다음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준영은 ‘공 하나’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베테랑이자 FA선수이기도 한 만큼 이준영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그래도 이준영은 희망으로 또 다른 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이준영은 “잘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는 팀 상황이 좋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다. ‘지면 어떻게 해야 되나’이런 부담이 많았다. 올해는 많이 이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간 투수 후배들이 잘 준비했다. 좋은 성과 나올 것이다. 불펜에서 역할을 해왔던 애들이라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이야기했다.

외야수 고종욱도 올 시즌 더 간절한 마음으로 ‘공 하나’를 기다리고 있다.
2024시즌 28경기에서 0.250의 타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 지난 시즌 뜨거운 여름을 보낸 뒤 몸이 좋지 않아 일찍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고종욱은 여전히 ‘통산 3할 타자’다.
그는 타고난 타격과 빠른 발로 ‘호랑이 킬러’로 통했다. KIA 팬들에게는 악몽 같은 선수였던 고종욱이 타이거즈 일원으로 5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
어느새 대졸 15년 차 베테랑이 된 그의 역할은 예전처럼 많은 시간 그라운드를 휘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결정적인 순간 우선 떠오르는 타자다.
뭔가를 해 줄 것 같은, 어떻게든 공을 때려낼 것 같은 기대감으로 보게 되는 타자 고종욱.
누구나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타고난 타격 실력의 고종욱은 “조금 타고난 것은 있다(웃음). 공을 맞히는 것에 대한 것은 있다. 일단 공을 맞혀야 결과가 나온다. 공을 안 맞히면 삼진밖에 없다”고 말했다.
타격 센스에 타석의 누적된 경험도 그의 힘이다.
고종욱은 “했던 게 많으니까 누적된 게 많으니까 투수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다. 저 투수한테는 이렇게 치면 잘될 것 같다, 저 투수는 짧게 방망이를 잡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센스와 경험이라는 강점은 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세월의 흐름과 팀 상황으로 그에게 많은 타석이 약속되지는 않는다. 결정적일 때 고종욱은 고종욱답게 역할을 해줘야 한다.
고종욱은 “그런 기대감이 있으니까 더 잘해야 한다. 잘 준비하고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 더는 유망주도 아니고 이제는 나이 많은 아이 아빠다”라고 웃었다.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 한 순간을 위해 고종욱은 노력을 이야기한다. 타고난 실력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프로 무대다.
고종욱은 “후배들이 타격적인 부분을 인정해 주지만 가만히 있어서 치는 것은 아니다. 계속 노력을 해야 한다. (최)형우 형도 매일 야구장에서 나와서 노력을 했다”며 “아무리 타고난 게 있다고 해도 비시즌 때 잘 만들고, 시즌 때 잘하려고 해야 한다. 못 치고 있는데, 준비도 제대로 안 되어있으면 타석에 나가서 불안해진다. 그런 걸 없애려고 미리미리 비시즌 때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감으로 들어가느냐, 불안감으로 들어가느냐의 차이다”라고 말했다.
자신감의 바탕이 노력인 만큼 고종욱은 이번 겨울 부지런히 땀을 흘렸다.
그에게는 또 다른 책임감도 주어진 시즌이다.
최형우가 아쉽게 삼성으로 떠나면서 고종욱은 야수 최고참이다. 그는 또 얼마 전에 아빠가 됐다.
또래 선수들에 비해 늦게 아빠가 된 고종욱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안고 2026년을 준비하고 있다.
고종욱은 “내가 못 치면 후배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더 부담되기는 하다. 나이 먹을 수록 더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다”며 “애가 생겨서 그런지 마음이 다르다. 열심히 잘해서 아이에게 내가 야구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 언제까지 야구할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내가 잘하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몸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염증 때문에 시즌을 그렇게 마친 게 아쉬웠다. 야구장에서 다치는 것 말고, 다른 걸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준비를 잘하겠다”며 “감독님의 구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안 쓰면 안 되는 그런 선수가 돼야 한다. 안 쓸 수 없는 선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잘 준비해서 시즌 때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