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경사… 한국 현대사 다룬 소설로 톨스토이상
첫 장편 ‘작은 땅의 야수들’
“어릴적 외조부 독립운동 들어
일제때 힘겨운 삶 쓰는데 영감
우리 역사의 긍지 높여 영광”
심사위원“놀라운 젊은 작가”
“이 작품을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갈보리로 가는 길’에 비교하겠다.”
10일(현지시간) 2024 러시아 톨스토이 문학상(야스나야 폴랴나상) 해외문학상을 수상한 한국계 미국인 김주혜(사진) 작가의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에 대해 심사위원은 이렇게 평했다.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열린 톨스토이 문학상 시상식에서 김 작가는 ‘작은 땅의 야수들’로 해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어 한국문학계에 전해진 낭보이다.
톨스토이 문학상은 톨스토이 탄생 175주년인 2003년 삼성전자 러시아법인이 ‘레프 톨스토이 박물관’과 함께 제정한 상으로 러시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평가받는다. 김 작가는 해외문학 부문 최종 후보 10개 작품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 등을 제치고 영예를 안았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과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가 후보에 오른 적이 있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김 작가의 장편 데뷔작인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부터 해방 이후 1965년까지 약 50년간 한반도를 배경으로 독립 투쟁과 격동의 세월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0세에 기생집에 팔려 가 기생이 된 ‘옥희’를 중심으로 옥희에게 마음을 품은 정호와 한철, 일본군 소령인 야마다와 이토, 경성에서 기생집을 운영하며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예단, 독립군을 결성하는 명보 등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국내에는 2022년 다산북스를 통해 출간됐고, 러시아에서는 키릴 바티긴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수상 발표 전 김 작가는 “영광스럽다”며 “우리의 유산인 호랑이를 한국 독립의 상징이라고 세계적으로 알린 기회가 된 것 같고, 더 넓게는 우리 문화와 역사의 긍지를 높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후보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심사위원 파벨 바신스키는 이 소설에 대해 “정말 잘 쓰였고, 투명하고 성숙한, 젊은 작가로는 놀라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김 작가는 1987년 인천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이주해 프린스턴대학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이민자 가정에서 어렵게 자라 월급쟁이를 꿈꾸었던 그는 2011년부터 3년간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인종차별에 부딪혔고, 이때 프리랜서로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2022년 국내 출간을 기념해 열린 온라인 화상 간담회에서 그는 6년간 책을 집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생활고를 꼽았다. “배고픔이 문제였어요. 대학 졸업하고 9개월 즈음엔 통장에 딱 50달러가 있었거든요.”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만 해도 돈이 없어 캔으로 된 99센트짜리 콩과 오트밀을 가장 많이 사 먹었다”며 “책을 쓰러 카페에 갔는데 배가 고파도 4달러짜리 빵을 사 먹을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힘겨운 시간 끝에 2021년 미국에서 영문판으로 출간한 ‘작은 땅의 야수들(Beasts of a Little Land)’은 아마존 ‘이달의 책’에 올랐고, 더타임스를 비롯해 미국 40여 개 매체에 추천 도서로 소개됐다. 김 작가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에 둔 데 대해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에 관여한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랐다고 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역사 관련 서적과 한국의 근대 소설도 즐겨 읽어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했다.
김 작가는 당시 한국어 출간에 대해 “제가 정말 사랑하는 한국어로 책이 출간돼 가슴이 뭉클하다”며 “언어가 사람의 사고방식을 형성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영혼·가치관을 형성한 한국어로 이 책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니 예술가로서 행복한 순간”이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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