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전기로 더 조용해진 파워풀 스포츠 유틸리티, 포르쉐 마칸

자동차 제조사에서 전기차를 내놓는 이유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전기차를 내놓지 않으면 엄청난 벌금으로 문을 닫게 될 수 있기 때문. 자동차 제조사는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에 대한 제한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유럽연합, EU의 경우 2025년부터 신제품의 배출량을 2021년 수치 대비 25% 감축할 것을 제조사에 요구하고 있다. 즉 판매차량의 CO2 배출량을 기준으로 판매 대수를 곱해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전 차량에 이를 적용해 모두 더한 값이 21년 수치보다 25% 줄어야 한다는 것.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판매한 자동차 한 대당 CO2 1g 당 95유로, 현재 기준 약 15만 원의 벌금을 매기는데, 최대 150억 유로, 약 23조 6,800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게 될 수도 있다. 이 정도로 강력한 제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제조사들은 기존의 내연기관의 숫자를 서서히 줄이는 대신, 전기차의 판매를 늘려 배출 규제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곳이 스포츠카 브랜드들이다. 스포츠카는 높은 성능 뿐 아니라 배기음, 진동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주행의 즐거움을 높이는데, 이러한 배출가스 규제로 인해 다운사이징의 길을 지나 하이브리드의 길에 들어서 전기차라는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방향성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 성능 면에서만큼은 기존 내연기관보다 더 쉽고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전기 모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정 회전수까지 올려야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차는 회전하는 순간부터 모든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라지는 배기음이나 진동과 같은 요소들은 더 조용하고 편안해지지만 뭔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허나 앞선 이유들로 이러한 흐름이 강제되는 만큼 브랜드 역시 이에 발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포르쉐 역시 마찬가지다. 강력한 파워와 멋진 배기음으로 이름난 스포츠카 브랜드지만, 2019년 타이칸으로 본격적인 전기차 판매를 시작했다. 확실히 그 전에 선보였던 전기차들과 달리 포르쉐만의 노하우를 녹여낸 덕분에 전기 스포츠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이렇게 성공적으로 전기차를 데뷔시킨 포르쉐가 2024년 다음 타자를 공개했다. 바로 중형 SUV인 마칸이다. 이젠 전기차로만 만날 수 있는 마칸의 시승회가 마련되어 지난 13일 포르쉐 스튜디오 한남을 찾았다.

외관은 마칸이 이렇게 날씬했나 싶은 모습이다. 전기차라 엔진이 없어져 보닛 주변을 훨씬 슬림하게 디자인했는데, 타이칸을 위아래와 앞뒤로 잡아늘린 살찐 타이칸 같달까. 재밌는 건 이번 신형 출시와 함께 기존 헤드라이트를 주간주행등(DRL)으로 변경하고, 실제 헤드라이트는 아래 범퍼에 배치했다. 또 하나 달라진 건 이전 모델에선 루프 끝단에 다운포스를 위한 스포일러를 배치했는데, 이를 파나메라처럼 트렁크 리드 끝단에 가변형으로 탑재해 공기 저항을 낮췄다. 덕분에 쿠페형 SUV의 느낌이 덜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신형은 확실한 쿠페형 SUV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실내도 많은 변화가 있는데, 기어 레버는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사이에 상하 스위치 방식으로 변경했고, 기존 레버 자리에는 공조장치 제어부를 배치해놓았다. 각 조작 버튼들은 햅틱 기능을 더해 조작에 대한 확실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볼륨 조절 다이얼 역시 공조 제어부 하단 가운데 배치해 주행 중에도 편하게 조작 가능하다.

오늘은 마칸 4S와 마칸 터보가 각각 5대씩 총 10대가 시승차로 마련됐다. 오전에는 마칸 4S를, 오후에는 마칸 터보를 타는데, 오전부터 오후까지 총 350km의 거리를 2명이 번갈아가며 운전하는 만만치 않은 코스에서 시승을 하게 된다. 긴 시간 차를 타는 것이 쉽진 않지만, 그래도 서킷에서 타는 것보단 덜 힘드니 즐거운 마음으로 도로로 나섰다.

인스트럭터의 안내를 따라 시내를 빠져나가는데, 정체구간이 제법 길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우려되는 건 전기차 특유의 울컥거림이나 회생제동으로 인한 동승자의 멀미인데, 마칸은 그런 점에선 조금 안심해도 좋겠다. 노멀 모드 상태에서는 운전자가 부드럽게 가속 페달을 조작하면 울컥거리지 않고 속도가 서서히 오르고, 회생 제동은 과연 제대로 되는게 맞나 싶을만큼 강도가 약한데, 내연기관 차량의 엔진 브레이크 수준이다. 여기에 대해 포르쉐 관계자는 “운전자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의 회생제동이어야 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자동차에 전동화가 이뤄진다면 마칸 역시 구성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아직은 전기차에 새로 입문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신규 입문자를 위한 포르쉐의 배려인 것이다. 물론 원하면 회생제동 기능을 끄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최대한의 타력주행이 가능해지는데, 구름저항이 완전히 0이 될 수는 없으니 켜고 운전하는 게 전력 효율성을 높일 수 있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워낙 교통 흐름이 많아 오전 시승은 일상적인 주행 수준에서 끝났는데, 불편함이나 어색함이라고 할만한 부분은 없었다. 승차감의 경우 워낙 스포츠성이 강한 포르쉐인 만큼 너무 단단하게 세팅되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을 탑재해 주행 모드에 따라, 혹은 운전자 선택에 따라 감쇠력을 조절할 수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노멀 모드에서는 서스펜션이 부드럽게 작동하기 때문에 노면의 충격이나 진동은 잘 걸러내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다.

오후 시승은 타이칸 터보로 바꿔탔다. 타자마자 와인딩부터 내달리게 되는 상황이라 긴장하며 주행모드를 스포츠 플러스로 바꾼다. 방지턱이 있다는 안내에 적당히 속도를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제법 큰 충격이 몸으로 전해진다. 서스펜션 감쇠력이 노멀 모드와는 상당히 달라져 속도를 더 낮췄어야 했는데 이를 간과한 벌이다.

춘천에서 홍천으로 이어지는 느랏재와 가락재를 연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속도를 낮춘 상황이었지만, 신기한 건 SUV로 와인딩을 달리면 흔히 느끼게 되는 좌우로의 쏠림이 생각보다 크게 억제돼있다는 점이다. 노멀 모드로도 코너를 돌아봤는데, 스포츠나 스포츠 플러스에 비해 코너를 도는 중에는 쏠림이 약간 나타나긴 하나 과하지 않고, 코너를 빠져나온 후에는 차체가 요동치는 일 없이 착 자세를 바로잡아 준다. 역시 스포츠카의 명가다운 모습이다.

고개를 넘어가며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회생제동의 에너지 회수량. 대단히 높은 고개는 아니지만, 내리막길에서 10km 이상 주행거리가 늘어날 만큼 무시못할 회수량을 보여준다. 굳이 회생 제동에 너무 신경쓰지 않고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을 정도인데도 이 정도라니. 여기에 마칸의 전비는 가장 낮은 마칸 터보가 4.0km/kWh이고, 가장 높은 마칸 기본형이 4.3km/kWh(모두 복합 기준)로 우수한데다, 오전 주행에서는 6km/kWh 넘는 전비를 달성했을 정도여서 전비와 회생제동량 등을 감안하면 실제 주행가능거리는 인증받은 것보다 훨씬 길겠다.

다음으로 고속도로를 올랐다. 아까에 비해 교통 흐름이 적어 앞차량들이 속도를 높여 별 생각 없이 앞 차량만 보고 거리를 유지하며 달리다 계기판의 속도를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체감했던 것 이상으로 속도가 꽤 높아져 있었기 때문. 보통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요소가 여러 가지 있는데, 외부 소음, 특히 풍절음 같은 것으로 속도를 파악할 수도 있지만, 마칸은 의외로 풍절음이 작아 속도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기존 루프 스포일러 대신 새로 추가된 어댑티브 리어 스포일러, 전면 흡기구의 액티브 쿨링 플랩, 차체 하부의 밀폐형 커버 등 여러 요소들을 공기역학을 고려해 디자인을 다듬어 이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공기저항계수를 0.25Cd로 줄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타이칸의 공기저항 계수가 0.22Cd고 911은 0.29Cd니, 포르쉐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감이 올 것이다.

성능 수치에 대해선 말이 필요 없지 않을까. 가장 낮은 마칸 기본형의 성능이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57.4kg·m이고, 오전에 시승한 마칸 4S는 448마력에 83.6kg·m, 오후에 시승한 마칸 터보는 무려 584마력에 115.2kg·m에 달하니 말이다. 여기에 최고출력의 경우 런치 컨트롤로 오버부스트 기능을 사용하면 모델에 따라 적게는 20마력에서 많게는 55마력까지 향상된다. 그 덕에 가장 강력한 마칸 터보의 제로백(0-100km/h)이 무려 3.3초고, 가장 약한 마칸 기본형도 5.7초면 100km/h에 도달한다.

강력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면 된다. 새로운 마칸이라면 어떤 걸 선택해도 충분히 강력함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강력함은 주말에 서킷 같은 안전한 곳에서만 경험하는 것이고, 평소에는 경제적이면서도 편안하게 가족들과 함께 이동하는 패밀리카 역할도 문제없다. 달리는 재미? 포르쉐의 노하우가 녹아든 운동 성능에 전기차 특유의 강력함, 여기에 속도에 반응하는 사운드까지 더해지면 내연기관차와는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워, 재미, 실용성까지, ‘Sport Utility Vehicle’이라는 말은 신형 마칸에 정말 딱 들어맞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