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퓨처엠이 광양에서 한국형 배터리 공급망 독립의 첫발을 내디뎠다. 중국 의존도가 높던 전구체를 국내에서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원료부터 양극재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했다.
고순도 황산니켈부터 전구체, 양극재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 이곳. 이달 10일 전남 광양 율촌산업단지에 위치한 포스코퓨처엠의 전구체 공장 현장을 직접 찾았다.
이제까지 중국에 의존해왔던 핵심 소재 생산이 국내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공장 내부로 발을 들였다. 가장 먼저 마주한 공간은 운전실이다. 일렬로 배치된 수십 개의 스크린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각 화면 앞에서 너댓 명의 작업자가 공정 데이터를 주시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은 포스코퓨처엠 전구체 공장의 중앙 관제실이자 생산을 총괄하는 두뇌다. 노수진 전구체 1공장 공장장은 "오퍼레이터들이 각 라인의 자동화 공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즉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운전실에서는 총 10개 라인, 20기의 반응기를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연결해 실시간 제어한다. 각 모니터에는 라인별 공정 흐름도, 반응 스케줄, 품질 지표 등이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숫자 하나의 진폭 변화도 반응 온도나 이온 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동화된 공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람의 눈과 판단이 끊임없이 작동하는 지능형 감시 체계가 있었다. 각 공정은 파이프라인으로 매끄럽게 연결돼 원료가 한 차례도 공정을 이탈하지 않고 흐르도록 설계돼 있다.
운전실을 지나 본격적인 공정 구역으로 들어서면 회색 금속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실린더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전구체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인 반응기 구역이다. 광양 공장에 설치된 총 20기의 반응기에서는 니켈, 코발트, 망간이 고순도 이온 상태로 녹아들며 결정화 과정을 거친다.

배터리의 성능을 결정짓는 전구체의 입자 구조는 이 반응기 단계에서 정해진다. 얼마나 균일한 입자를 만들어내느냐가 품질의 핵심이다. 현장의 한 기술자는 "이 반응기 단계가 전체 제품 품질의 80%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공정"이라고 설명했다. 설탕물처럼 이온화된 금속염에 포스코퓨처엠만의 레시피를 가미하면 입자 씨앗(seed)이 형성되고 이 씨앗이 균일한 형태로 성장해 전구체를 이룬다. 이 결정구조는 양극재의 전기화학적 특성과 직결된다.
원료공정 구역에서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주요 원재료들이 용해돼 액상 이온 상태로 전환된다. 이후 파이프라인을 따라 반응기로 자동 이송되는데 모든 공정은 단 한 차례의 외부 노출 없이 폐쇄형으로 연결돼 있다.
전구체는 반응기에서 결정화 과정을 거친 뒤 이어지는 탈수·건조·분체 공정을 통해 파우더 형태로 가공된다. 특히 분체 설비 구간은 양극재 품질을 최종적으로 판가름하는 고정밀 공정으로 이물질을 최대한 배제하는 철저한 정제 과정을 거친다.
이 모든 공정을 통과한 전구체만이 실제 배터리셀로 들어갈 수 있다. 한 입자가 흐름을 벗어나지 않고 설계된 루트를 따라 흘러가는 이 체계는 공정 기술 이상의 전략적 통제력을 짐작케 했다. 이렇게 생산된 전구체 전량은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북미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에 공급될 예정이다.

광양 전구체 공장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IRA)과 외국 우려 기업(FEOC)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북미향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단순한 생산 기지를 넘어 국내에서 생산된 소재를 북미 시장에 직접 공급하는 구조를 통해 글로벌 밸류체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양적 확대를 넘어선 이 공장은 국내 배터리 산업의 전략적 전환을 상징하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포스코퓨처엠의 전구체 자립은 단순한 기술적 성과가 아닌 고객사의 요청에서 출발한 구조적 요구였다. 중국산 전구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공급망 리스크로 인식되면서 한국만의 독립된 밸류체인 구축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것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이 같은 수요 변화에 대응해 자체 연구개발에 매진했고 그 결과 광양 전구체 공장의 문을 열 수 있었다. IRA 규제를 고려해 중국산 원재료를 최대한 배제한 것도 특징이다.
이와 함께 포스코퓨처엠은 기존 얼티엄셀즈 외에도 추가 수요 확대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소영 에너지소재기획그룹장은 "캐즘이라는 배터리 시장 정체기 속에서도 OEM, 셀 제조사를 포함한 다양한 글로벌 고객들과 활발히 논의 중"이라며 "공급망과 정책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수요가 커지면서 여러 고객사들과의 물밑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광양(전남)=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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