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라셈이라는 이름 앞에는 유난히 많은 수식어가 붙어왔다. ‘미녀 스타’, ‘화제의 외국인 선수’, 그리고 한동안은 ‘방출됐던 선수’라는 말까지 따라다녔다. 하지만 2025~2026시즌 V리그 4라운드가 끝난 지금, 그 모든 설명을 지워도 남는 단어는 하나다. 라운드 MVP. 그것도 흥국생명이라는 팀의 현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받은 첫 MVP다.

이번 4라운드 MVP 선정은 단순한 개인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레베카 라셈에게는 커리어의 방향을 바꾼 상징적인 순간이고, 흥국생명에게는 ‘외국인 선수 선택이 팀의 판도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다. 기자단 투표에서 34표 중 13표를 얻었다는 숫자보다 중요한 건, 그가 이 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이다.
레베카는 4라운드 내내 흥국생명 공격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세터 이나연과의 호흡은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안정됐고, 공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선택되는 선수였다. 공격 점유율 35%가 넘는 상황에서도 효율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오픈 공격 성공률 40%를 훌쩍 넘겼고, 총 141점을 올리며 라운드 내내 꾸준한 득점력을 유지했다. 단순히 많이 때리는 공격수가 아니라, 팀 공격 흐름을 버텨주는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흥국생명의 4라운드 성적은 5승 1패였다. 전반기를 2위로 마무리하는 데 결정적인 동력이 됐다. 시즌 시작 전만 해도 흥국생명은 하위권 후보로 분류됐다. 김연경의 은퇴 이후 전력 공백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레베카 라셈이 중심을 잡았고, 이나연을 비롯한 국내 선수들이 그를 중심으로 역할을 나눴다. 팀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안정감을 찾았다.
이 장면이 더 특별한 이유는 레베카의 과거 때문이다. 그는 한때 V리그에서 실패한 외국인 선수로 분류됐다. IBK기업은행 시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 속에 시즌을 끝까지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이후 재도전의 기회조차 쉽게 오지 않았다. 다시 트라이아웃에 나섰지만 선택받지 못했고, 해외 여러 리그를 떠돌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선수들이 한국 무대에 대한 미련을 접는다. 하지만 레베카는 포기하지 않았다.

흥국생명은 그의 변화를 읽었다. 몇 년 전의 레베카가 아니라, 지금의 레베카를 선택했다. 결과는 명확하다. 공격에서의 결정력뿐 아니라, 경기 흐름이 어려울 때 버텨주는 힘이 생겼다. 단순히 점수를 올리는 역할을 넘어, 팀이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축이 됐다. 4라운드 MVP는 그 변화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이번 수상은 흥국생명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외국인 선수는 ‘당장 잘하는 선수’를 뽑는 것이 아니라, ‘지금 팀에 필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를 뽑아야 한다는 점이다. 레베카는 팀 사정에 맞게 자신의 역할을 조정했고, 세터와의 호흡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 기록과 팀 성적이 동시에 올라왔다.

레베카의 첫 라운드 MVP는 끝이 아니라 시작에 가깝다. 이제 그는 흥국생명의 에이스로 분명히 자리 잡았다. 동시에 상대 팀의 집중 견제를 받는 위치에 올라섰다. 다음 라운드부터는 더 어려운 공을 더 많은 수비 속에서 처리해야 한다.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다.
그럼에도 이번 수상이 의미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레베카 라셈은 더 이상 과거의 실패로 설명되는 선수가 아니다. 그는 흥국생명의 현재를 이끄는 선수이고, 리그가 인정한 4라운드 최고의 선수다. ‘미녀 스타’라는 가벼운 수식어를 넘어, 실력으로 증명한 MVP라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오래 기억될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이제 흥국생명은 레베카를 중심으로 후반기를 준비한다. 봄배구를 넘어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의 한가운데에 레베카 라셈이 서 있다. 방출의 기억을 지나 MVP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지금,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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