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실패와 이혼 후 전재산 30만원.. 9살 딸과 차에서 노숙 생활한 무명배우

독고영재는 배우 독고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대 충무로를 주름잡던 악역 전문 배우의 이름은 곧 후광이자, 넘을 수 없는 그림자였다.

1973년 영화 <빗방울>로 데뷔했지만, ‘독고영재’라는 이름이 알려지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영화가 아닌 연극 무대에서 시간을 보냈고, 생계를 위해 무역업에 손을 댄 적도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피해 본명인 ‘전영재’로 활동했지만, 결국 자막에 올라간 ‘독고영재’라는 이름을 받아들이며 다시 출발했다.

한때 사업병에 걸린 독고영재.
사업 실패로 생활은 한없이 무너졌다. 수중에는 30만 원이 전부였고, 자녀들은 부모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딸을 만나던 어느 날, 주말을 함께 보내고 다시 돌려보내려 했지만 집이 없었다.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딸을 돌려보내려 했지만 딸은 아빠와 함께있고 싶다고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둘은 남산 식물원 앞 차 안에서 노숙 생활을 이어간다.

아침이면 공용 화장실에서 딸을 씻기고, 빵과 우유로 아침을 때운 뒤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 시절을 딸은 잊지 않았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딸은 “아빠, 남산 한 번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차 안에서 조용히 꺼낸 한 마디. “지금까지 살면서, 아빠랑 차 안에서 잤던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 독고영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혼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던 시기, 삶은 더 버거워졌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날, 춘천으로 가는 길에 차를 낭떠러지로 굴려버렸다. 유리는 깨졌고, 손에는 파편이 박혔다. 차는 9미터 아래로 떨어졌고, 죽음을 예감했지만 그는 살아 있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뜻밖에도 “이 차를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나”였다.

죽겠다고 굴렸는데, 살아남은 자신이 이제는 현실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날 밤,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그는 스스로를 ‘나쁜 아빠’라 자책했다. 그 이후로 단 한 잔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의 곁에 지금까지 함께하는 사람은 16살 연하의 아내다.

처음 만났을 땐 의상실에서 일하던 평범한 여성이었고, 독고영재는 이미 이혼한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나 같은 남자랑 결혼하면 불행할 거야”라며 거리를 두었지만, 그녀는 다가왔다.

생활이 어려워 전기가 끊겼던 어느 날, 그는 초를 켜두고 “오늘은 촛불 잔치야”라며 체면을 지키려 했다.

그러자 그녀는 초 20개를 사다주며 아무렇지 않게 불을 밝혔다.그날 그는 생각했다. ‘내 자존심까지 걱정해줄 여자라면, 결혼해도 되겠다.’

무명 시절이 길었지만, 그는 꾸준히 활동 중이다. <엄마의 바다>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하얀 전쟁>, <코리아게이트>, <영웅시대> 등 굵직한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색을 지켜냈다.

“경험이 없는 배우는 좋은 연기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 삶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며 얻은 감정들은 그 어떤 기술보다 진하다.

그렇게 버텨낸 시간은 결국, 지금의 그를 만든 가장 큰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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