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가 중요하냐고? 고개를 들어 김호령을 보라

KBO리그 최고의 수비수에서 타석을 즐기는 타자로 거듭난 KIA 타이거즈 외야수 김호령. /김여울 기자

야구는 진짜 모른다.

3월 28일 SSG와의 개막전, 9회초까지는 KIA의 잘 준비된 2026시즌 예고편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충격의 9회말을 보낸 뒤 KIA는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분명히 새 시즌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고, 전력 재정비도 했었다.

어긋난 출발에 준비했던 것들을 의심하면서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올 시즌 KBO 첫 선발 전원 안타와 전원 득점을 기록한 삼성전 15-5 대승을 시작으로 KIA는 패배를 잊었다.

16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도 선취점은 내줬지만 승리를 내주지 않으면서 7연승을 찍었다.

결과도 결과지만 선수들이 고르게 승리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

누군가 홀로 외롭게, 힘들게 멱살을 잡고 팀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타석에서 고르게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오늘 하루 빈손으로 돌아서도 다른 동료가 역할을 해주면서 부담이 없다. 내일을 다시 준비할 수 있으니까.

동시에 떨어졌던 타격 페이스였는데, 연승 기간 돌아가면서 타석의 수훈 선수가 되고 있다.

마운드에서는 베테랑이 괜히 베테랑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새로 가세한 '신입' 베테랑 이태양과 김범수, 여기에 홍건희도 가세해 묵묵히 이닝을 책임지고 있다.

싸울 준비가 된, 열심히 싸울 이유가 있는 이들의 피칭으로 불펜이 비로소 숨을 돌렸다.

불펜은 흐름을 많이 타는 자리다. 너도 잘하고 나도 잘하면서 깔끔하게 1이닝씩 지워지고 있다.

엇갈리던 투타가 마침내 밸런스를 찾으면서 원팀이 됐다.

또 하나 KIA 연승에는 수비가 있다.

지난 2년 KIA는 실책 1위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1루 고민 속 이런저런 사연 많은 실책이 쌓이고, 실점도 쌓였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이범호 감독과 KIA는 '수비'를 외쳤다.

수비 안정화를 목표로 훈련을 하고 또 했다. 수비는 노력하면 반드시 실력이 는다. 경험과 함께 실력이 비례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단순한 실책 개수로 전체적인 수비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일단 KIA는 7개로 최소 실책 1위에 자리하고 있다.

7번째 실책은 투수 제임스 네일이 기록했다.

16일 키움과의 경기에서 땅볼을 잡은 뒤 1루에 악송구 하는 바람에 더해진 실책이다.

실책이 실점으로 연결되던 지난 시즌과는 다른 흐름으로 수비가 KIA의 전력이 되고 있다.

수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한화와의 시즌 첫 시리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범수의 슈퍼세이브로 첫 연승을 만들었던 11일 경기, 사실상의 '마무리'는 김호령이었다.

8회말 2점 차 박빙의 승부에서 김호령은 외야를 질주하면서 강백호와 하주석의 안타를 플라이로 바꾸는 마법을 보여줬다.

안타를 기대했던 타자들을 당황시킨 수비. 정작 공을 잡은 김호령도 당황했다.

한화와의 시즌 첫 시리즈에서 수비로 스윕을 이끈 김호령. <KIA 타이거즈 제공>

“저도 잡고 좀 놀라기는 했어요”라면서 웃음을 터트린 김호령.

‘이게 잡히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김호령도 놀란 호수비였다.

원래 수비 잘하는 김호령이지만 올 시즌의 모습은 또 다르다.

김호령의 거침 없는 질주에는 '자신감'이 있다.

수비에 비해 부족했던 타격 탓에 지금처럼 매일 스타팅으로 마음껏 경기를 뛸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잘 준비하고 대비해도, 대수비로 들어가서 바로바로 실력을 발휘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김호령도 자신을 의심했다. 떨어진 자신감은 악순환을 불렀다.

김호령다운 과감한 도전도 부족했고, 실수도 나왔다. 수비로 버텼던 김호령에게 닥친 타자로서의 위기.

그만큼 지난 시즌 김호령의 반전은 놀랍고 반갑다.

상상만 했던 완벽한 김호령이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모습에 팬들은 감격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타격 기복은 있었지만 김호령은 '반짝 시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타석에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의 김호령. 그는 이제 찬스를 기다린다.

"루상에 주자가 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서는 타자가 됐다. .

'이게 김호령이야 김도영이야'라고 외치게 만든 시원한 마수걸이 홈런도 날렸지만, 어찌 됐든 김호령하면 일단 수비다.

처음 KIA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이들에게 김호령은 놀라움과 편안함의 이름이다.

김연훈 외야 수비 코치는 "순간적인 반응이 빠른 것 같다. 호령이가 발만 빠르고 수비 범위가 넓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격이 이뤄졌을 때 '공이 이쯤에 오겠다'라는 판단이 좋다. 또 길 선택이 엄청 좋다. 돌아가지도 않고 교과서적으로 움직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수비를 기본적으로 해야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수비를 잘한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라며 "선수들이 자신감을 찾으면 좋겠다. 외부에서 봤을 때 2년 연속 수비 최하위라고 하면 선수 스스로 위축된다. 잘했을 때 그 분위기 타서 자신감 있게 수비를 하면 좋겠다"라고 수비 자신감을 이야기했다.

동료가 된 김호령의 수비에 감탄사를 쏟아낸 KIA 투수 김범수. /김여울 기자

김범수는 긴장감 가득한 경기에서도 김호령 덕분에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김범수는 "그냥 편하다. 한화 있을 때 (심)우준이가 숏에 있으면 그런 느낌이었다. 호령이 형이 센터에 서 있으면 다 잡을 것 같다. 박해민 선배가 그런 느낌인가를 KIA와서 생각하게 됐다. 진짜 깜짝 놀랐다"고 감탄했다.

마운드는 외로운 자리다. 하지만 김호령 덕분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투수들이다.

수비가 이래서 중요하다.

김연훈 코치의 말처럼 수비가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승리 확률을 높인다.

수비에서 희비가 엇갈렸던 한화와의 주말 3연전을 생각하면 수비의 가치는 명확하다.

팀에게도 중요한 수비지만, 개인에게도 수비는 중요하다.

김호령이 수비로 팀을 살렸고, 수비가 김호령을 살렸다.

냉정하게 따지면 수비가 아니었다면 김호령의 지금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매년 기대를 키우는 타격 순간은 있었지만 그 흐름은 길게 가지 않았다. 평범한 타격의 소유자였다면 1군에서의 기회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수비로 스스로 기회를 만든 김호령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드디어 타격에서도 답을 찾았다.

"버티니 이런 순간이 왔다"는 김호령은 다음 시즌을 걱정하던 선수에서 눈길 끄는 예비 FA가 됐다.

수비의 힘은 박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야 어느 자리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2차 1라운드 선수. 하지만 타격이 박민의 걸음을 더디게 했다.

그러나 수비를 바탕으로 1군 경험을 더한 박민은 올 시즌 타격에서도 성장세를 보이면서 입지를 넓혔다.

김호령은 박민에게는 희망이고, 길이다.

김호령의 수비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타고난 게 중요하겠지만 김호령도 많은 노력을 했다.

수비도 데이터가 중요하다.

타석에 있는 타자는 물론, 공을 던지고 있는 우리 투수가 누구인지도 잘아야 한다.

그런 데이터를 쌓고 외우면서 김호령은 누구보다 더 빠르게 순간 순간 반응하면서 먼저 가서 공을 기다릴 수 있게 됐다.

김호령의 성실함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훈련은 김호령의 바탕이다.

사실 수비 훈련은 지루하고, 귀찮다. 간과하기 쉬운 훈련이기도 하다.

수비 자체가 그렇다.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타격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단순히 기록만으로는 수비 보다 타격이 더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아마추어 선수가 당장 프로에서 통할 수 있는 독보적인 타격 실력을 갖추는 건 쉽지 않다.

프로의 벽을 넘고 힘을 키우고 실력을 쌓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수비라는 자산이 있어야 한다.

일단 수비로 버텨야 타격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김호령이 보여주는 수비의 힘. 그라운드에서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