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경계를 여전히 못 지운 사람들 [전쟁과 문학]
베를린 봉쇄로 굳어진 독일 분단
냉전 전개되며 스파이 모여들어
당시 첩보전 다룬 소설 「이노센트」
1954년 실제 작전 터널 굴착 다뤄
강렬한 냉전 상징물 베를린 장벽
독일 통일 후 장벽 흔적 기념물 돼
이데올로기의 경계 사라진 지 오래
냉전의 상징물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이제 기념물이 됐다. 벽에 막혀 동과 서로 쪼개졌던 베를린 사람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오간다. 이데올로기의 경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에 뚫린 터널과 GOP 진지는 냉전을 떠오르게 한다. 남북만이 아니라 남한 안에서도 이데올로기 싸움이 한창이다.
1945년 5월, 소련군은 30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베를린을 점령했다. 막대한 희생을 치른 소련은 전후 독일 통제에 주역을 맡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는 나치 독일을 저지하려고 공산주의 국가 소련과 마지못해 손을 잡았지만,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두 진영의 반목은 심해졌다.
스탈린은 소련군이 점령한 지역임을 내세워 베를린의 지배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공산주의의 파급을 우려했고 무엇보다 스탈린이 유럽을 지배하는 상황을 경계했다. 결국 소련 점령 지역 한복판에 위치한 베를린은 미ㆍ영ㆍ프ㆍ소 4개국의 분할통치를 받게 됐다. 분할통치가 시작되자 소련에 반감을 지닌 독일 시민들이 미ㆍ영ㆍ프 점령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지식인과 기술자 등 고급 인력이었다.
그러자 소련은 1948년 6월 베를린의 육상 통로를 봉쇄했다. 이어 점령지역에서 새로운 마르크화를 발행했다. 봉쇄에 맞서 미국과 영국은 공중으로 물자를 수송했고, 소련군의 대공포가 수송기들을 겨냥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이어졌다.
소련은 베를린 봉쇄를 통해 서방세계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서방세계는 베를린 문제를 유럽의 문제로 확대하면서 소련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독일 주둔 미군 사령관 클레이 장군은 베를린을 넘겨주면 미국이 서유럽으로부터 신뢰를 잃는다고 주장하면서 공수작전을 지지했다.
봉쇄는 10개월 만에 풀렸지만 베를린 봉쇄를 계기로 독일의 분단은 굳어졌다. 미국과 소련의 갈등도 고조됐다. 냉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베를린은 첨예한 첩보전의 무대가 됐고 수많은 스파이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상대 국가에 관한 상세한 정보였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 「이노센트」는 치열하게 전개된 당시의 첩보전을 다룬 작품이다. 영국의 체신국 기사 '레너드 마넘'은 영국 정보부의 요청으로 베를린으로 파견된다. 미군 부대에 배속된 마넘은 '작전명 골드'에 동원된다.
마넘의 임무는 도청용 녹음 장비를 개조하고 설치하는 것이다. 미군 장교 '밥 글래스'는 이 임무가 극비이며 영국인 민간인 기사인 마넘을 투입한 것은 미국과 영국 사이의 특별한 정치적 관계를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마넘은 곧 거대한 터널을 굴착하는 현장을 마주한다. 창고로 위장한 미군 레이더 기지 지하에서 소련 통신국 지하까지 길이 600m에 달하는 터널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25살 영국 청년에게 도청 작업은 지루한 반복에 불과했다.
마넘은 한 독일 여성과 사랑에 빠지지만 운명적이라고 굳게 믿은 그 사랑도 정보국이 사전에 계획한 시나리오의 일부였다. 양 진영의 스파이들이 암약하는 베를린에서는 술집에서 나누는 말 한마디조차도 경계 대상이 됐고, 사소한 의심이 누적될수록 작전에 투입된 자들은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소설 「이노센트」에 그려진 터널 굴착은 미국 정보부(CIA)와 영국 정보부(MI6)가 1954년 1월 20일부터 감행한 실제 작전이었다. "필요하다면 하나님까지 도청하라"는 암묵적 구호 아래 CIA와 MI6는 터널을 파고 들어가 동베를린을 거치는 모든 전화 라인을 도청시스템에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녹음한 통화량은 엄청났다. 하루 도청한 메시지를 문자로 전환해 프린트하면 그 양이 4000피트(약 1.2㎞)에 달했다고 한다.
순조롭던 도청 작업은 우연한 계기로 중단됐다. 폭우로 망가진 동베를린 공중경보 시스템을 소련군 통신부대가 수리하는 과정에서 터널이 발각되자 작전은 중단됐다. 작전 종료 후 CIA와 MI6는 대량의 정보를 수집한 성공한 작전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1961년 영국 MI6에서 활동했던 소련의 이중간첩 '블레이크'가 체포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블레이크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MI6 비밀요원 400명의 신상기록을 소련 정보기관인 KGB에 넘겼고 MI6 요원 42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에 파견된 영국의 첩보망은 한순간에 붕괴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영국 정보부 출신 작가 존 르 카레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1964년)」의 소재가 됐다. 블레이크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는 '작전명 골드'의 입안 단계부터 참여했으며 터널을 파기 전 이미 상세한 작전서류를 KGB에 넘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670만 달러나 소요된 '작전명 골드'는 실패가 예정된 작전이었다. 냉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파이 블레이크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전향을 결심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힌 블레이크는 소련에 포섭됐다.
휴전 후 전쟁영웅으로 귀국한 그는 참전 경력을 바탕으로 영국정보부에서 근무했다. 이후 블레이크는 소련 간첩이라는 점이 발각돼 교도소에 수감됐다. 수감 중이던 블레이크는 동료 죄수들의 도움을 받아 1966년에 탈옥했고 동독을 거쳐 소련으로 도주했다.
'작전명 골드'가 종료되고 5년 후 소련은 서베를린 주위를 장벽으로 에워싸는 공사를 시작했다. 악명 높은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것이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9일 붕괴될 때까지 냉전의 강렬한 상징물이 됐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독일이 통일된 후 베를린 장벽의 흔적은 기념물이 됐고 이제 사람들은 자유롭게 베를린 거리를 오간다. 「이노센트」의 주인공 '마넘'과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주인공 '리머스'의 운명을 바꿔놓은 이데올로기의 경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대담하게 굴착한 '작전명 골드' 터널(베를린 터널)도 관광명소가 됐다. 그 풍경을 보면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에 뚫린 무수한 '터널'들이 떠오른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에 뚫린 터널들과 GOP 진지가 '과거 분단의 기념물'이 될 날을 염원한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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