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안전한 일상 위해”…이태원서 생존 외친 ‘변희수들’

박고은 2022. 11. 2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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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이태원 참사]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 마련된 추모공간에 참가자들이 준비해 온 꽃다발이 놓여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일 오후 3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광장에 ‘검은 옷’을 입은 시민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광장 곳곳에는 흰색, 분홍색, 하늘색으로 된 깃발을 들거나 어깨에 두른 이가 많았다. 트랜스젠더 인권과 자긍심을 나타내는 ‘트랜스 프라이드’ 색의 깃발이다. 광장 한쪽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군복을 입은 고 변희수 하사 등 고인이 된 이들의 사진과 국화꽃, 안개꽃 등이 놓였다. 시민들은 추모와 연대의 마음을 메모지에 눌러 담았다. “계신 곳에선 부디 원하는 모습으로 편안하길 기원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함께 기억하자. 우리의 애도와 연대와 행동으로” “같이 오래 살아가자고 하기도 무서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난 우리가 같이 오래 살아갔으면 좋겠어” 등의 글이 메모지에 담겼다.

트랜스해방전선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등 14개 단체는 이날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의 안전한 일상을 위하여’ 행사를 열었다. 이들 단체는 “지난달 29일 트랜스젠더의 삶의 터전이자 안식처였던 이태원 거리에서 크나큰 참사가 일어났다. 성소수자의 삶터에서 축제의 거리로, 축제의 거리에서 재난의 공간으로 변해버린 이태원에서 어디에서나, 누구나 안전한 일상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를 위해 이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가 안전한 일상을 누릴 권리 보장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성별정정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트랜스젠더가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법·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발언에 나선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트랜스젠더가 안전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큰 원인 중 하나는 법적 성별이 외관 등 사회적 성별과 다르기 때문”이라며 “더 이상 국가가, 법 제도가 트랜스젠더의 삶을 무시한 채 불합리한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답게 살 수 있는, 누구나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 성별 정정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소리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는 “사회가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 배제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안전함을 느낄 수 없다. 사회가 변하려면 최소한의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의 차별 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지는 우리의 동료들을 계속 마주할 것”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꼬꼬(활동명·30대)는 “기사화되지 않은 수많은 트랜스젠더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차별금지법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죽음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다.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성소수자 당사자인 김아무개(18)씨는 “고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학교 친구들이 혐오의 발언을 쏟아내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며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최소한 혐오와 차별이 잘못된 일이란 인식이 조금씩 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연대의 목소리를 보태는 이들도 있었다. 여성 시민 차아무개(27)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로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는 데 있어서 어떤 마음으로 애도하고 길을 모색해야 할지 고민이 있었다”며 “트랜스젠더의 죽음도 사회적 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이라는 생각에 연대의 마음을 보태고자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본인을 앨라이(성소수자 인권 지지자)라고 소개한 정아무개(31)씨는 “여기 모이는 사람들이 꿈꾸는 건 아마 평범한 삶일 것”이라며 “그 삶을 응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 지난해 고 변희수 하사 등 트랜스젠더의 죽음이 잇따랐는데 당사자분들에게 ‘어떻게든 살아내자’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추모 행사 뒤 단체와 시민들은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22일 이들 단체에 대통령실 방향 행진을 금지한다고 밝혔으나, 이런 처분에 반발해 이들 단체가 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지난 14일 받아들이면서 행진이 가능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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